<대기자 칼럼>나무를 심어야 할 때
<대기자 칼럼>나무를 심어야 할 때
  • 승인 2010.02.25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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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열 (객원 大記者)

무슨 일을 하든지 때가 있다는 말이 있다. 옳은 말이다. 아직 때가 이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만 앞서 나섰다가 낭패를 보는 수가 흔하다. 충분한 공부를 하지 않은 수험생이 합격을 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응시를 하는 것도 때를 맞추지 못한 일이고, 정치를 하고 싶은 사람이 덕은 쌓지 않고 출마부터 했다가 낙선하는 일도 때를 제대로 선택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나는 일이다.

이처럼 정확하게 때를 맞추는 일은 쉬운 일인 듯 하면서도 사실은 가장 어려운 일에 속한다. 결혼을 하려는 청춘남여가 점쟁이를 찾아가 사주를 대고 날짜를 잡는 것도 모두 `때’의 중요성을 알기에 하는 일이다. 막연히 때라고 하면 상당히 여유가 있고 광범위하게 생각하기 쉽지만 작전개념으로 본다면 1분 1초를 다퉈야 하는 일이 된다. 6.25전쟁 당시 맥아더장군에 의한 인천상륙작전이 전사에 빛나고 있지만 이 작전은 자칫 실패할 뻔 했다.

맥아더는 상륙작전을 감행하기 전에 6명의 특공대를 파견하여 팔미도에 침투시킨다. 미군3명, 한국군 3명으로 구성된 특공대의 임무는 팔미도 등대를 장악한 후 등대에 불을 밝혀 외항 먼 바다에 대기 중인 상륙지휘 본부에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중에 무턱대고 상륙을 감행했다가 자칫 적군의 매복 작전에 걸려들어서는 안 되는 것은 물론이요, 상륙정의 방향을 알려줘야 했기 때문이다.

6명의 특공대가 팔미도 등대를 장악했으나 불을 밝히기 위해서는 점화에 반드시 필요한 나사 못 하나가 있어야 되는데 막상 현장에 그것이 빠져버린 것을 발견했다. 맥아더와 약속한 시간 내에 등대를 밝히지 못하면 거대한 상륙작전은 수포로 돌아간다. 절박한 심정으로 실의에 빠진 특공대들은 어둠 속에 엎드린 채 땅바닥을 더듬어 나사를 찾아봤다. 그 때 특공대원 중 5명은 모두 저 세상으로 떠났지만 지금까지 정정하게 생존한 분이 최규봉 KLO부대장이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한마디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최규봉의 손바닥에 나사못이 만져졌다. 그들은 서둘러 등대에 불을 밝혔고 멀리서 이를 확인한 맥아더는 상륙명령을 내려 전사에 빛나는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때에도 조금만 늦었더라면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인천만의 특성 때문에 상륙작전은 실패하고 작전은 노출되어 전쟁의 양상이 어떻게 전개되었을지 아무도 모른다.

천시지리(天時地利)를 얻어야 세상을 얻을 수 있다는 옛말은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우리 역사상 민중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았고 성공적인 개혁운동을 수행한 동학혁명은 반드시 성공했어야 했다. 그런데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개입으로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패배한 것은 우리들에게 통분을 금치 못하게 한다. 동학혁명을 지휘한 지도자는 전봉준 장군이다. 그는 전라도 고부에서 거병했다.

고부군수 조병갑의 가렴주구에 항의하던 그의 부친 전창혁이 오히려 모진 매를 맞고 절명하기에 이르자 부당한 수세(水稅)에 시달리던 백성들이 죽창을 꼬나 쥐고 관아를 점령함으로서 혁명운동에 불이 붙은 것이다. 전봉준은 사발통문을 돌려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다짐으로 농민봉기를 일으킨 셈인데 수탈당한 민심이 전봉준의 어깨에 매달렸다. 농민군의 발길이 닫는 곳마다 너도나도 합세했다.

이 때 나온 시가 지금까지도 풍미한다. `파랑새’다. `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전주 고부 녹두새야 어서 바삐 날아가라. 댓잎 솔잎 푸르다고 하절인 줄 알았더니 백설이 펄펄 엄동설한 되었구나.’ 여기서 우리는 파랑새를 전봉준으로 본다. 그가 때를 잘못 만나 너무 빨리 세상에 나왔다가 실패하게 됨을 서러워하며 부른 노래다. 전봉준은 이미 13세 때 백구(白鷗)라는 시를 남겼다.

`스스로 모래밭에 마음껏 노닐 적에 흰 날개 가는 다리로 맑은 가을날 홀로 섰네. 부슬부슬 찬비는 꿈결같이 오는데 때때로 고기잡이 돌아가면 언덕에 오르네. 수많은 수석은 낯설지 아니하고 얼마나 많은 풍상을 겪었는지 머리 희었도다. 마시고 쪼는 것이 비록 번거로우나 분수를 아노니 강호의 고기떼들아 너무 근심치 말아라.’ 한 마리 백구는 분수를 알아 고기 잡아 언덕으로 오르는데 탐욕스런 관리들은 더 빼앗지 못하여 안달하는 모습을 비꼬는 것이 이미 혁명아 답지 않은가.

그가 사형이 집행되기 전에 남긴 절명시에서는 `때를 만나니 천하가 뜻을 함께 하더니 시운이 다하니 영웅도 스스로 어쩔 수 없구나. 백성을 사랑하는 정의의 일이 어찌 허물이랴. 나라 위한 참된 마음을 그 누가 알아주리.’ 때를 잘 선택하는 것은 지혜다. 그러나 정해진 때를 놓치는 것은 바보다. 지금 우리는 세종시 때문에 국운이 흔들린다.

안에서 해결할 일을 밖에서만 아옹다옹하고 있으니 일이 안 풀린다. 지금은 물을 줘야 할 때다. 봄기운에 젖어있는 만물이 보이지 않는가. 나무를 심어야 할 때를 놓치면 말라비틀어지는 원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때를 놓치지 말고 나라와 국민을 위한 나무를 심어 울울창창 번성하는 풍성한 내일을 기약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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