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색의 美, 단색의 멋
원색의 美, 단색의 멋
  • 황인옥
  • 승인 2019.04.01 2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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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까지 을갤러리 김승현展
4원색 중첩 다양한 발색 연출
일상의 익숙함 예술로 발현
내면의 정서 色으로 치환
을갤러리_김승현
김승현 作.

창밖은 형형색색 봄꽃 색채들의 향연으로 요란한데 전시장은 지극한 고요로 넘실댄다. 단색이 거대한 화폭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색 뿐만 아니라 물감이라는 ‘물성’이 행위의 반복이라는 ‘몸성’을 만나 마침내 ‘정신성’으로 치환한 작업 방식도 단색화 범주로 끌어들이는 요소다. 서양화가 김승현의 을갤러리 전시 작품들이다.

평론가 윤진섭은 작가의 작품을 ‘침묵의 바다’라고 명명하고 ‘붓의 맛과 색의 늬앙스’라고 극찬했다. 단색화라는 간단치 않은 작품임에도 작가는 “누가 봐도 불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야무진 바람을 피력했다.

단색, 반복성, 수행성, 정신성으로 함축되는 단색화의 요건이 제대로 위용을 갖췄다고 해서 작가의 작품을 단색화로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빨강 노랑 파랑 녹색이라는 화려한 4원색이 적어도 10여회 내외로 중첩해 드러난 완결점이 단색이기 때문이다. 작가 역시도 이 견해를 부정하지 않았다. “마지막에 드러나는 단색은 발색의 결과죠. 원하는 발색을 위해 4원색이 치열하게 중첩됐죠.”

핵심 요소는 색의 중첩이다. 어떤 색을 어떤 횟수로 중첩하느냐에 따라 발색이 드러난다.

작품마다 색의 종류와 중첩 횟수가 제각각이어서 발색의 결과 또한 다양하다. 요리로 따지면 재료는 단순한데 레시피의 순서와 양에서 각양각색이어서 맛의 톤과 밀도가 다양한 것과 같다. 여기에는 ‘사의(寫意)’라는 정신성의 개입이 있다.

“화폭 속 색은 몸과 정신이 일치한 결과지만 그런 추상적인 여정은 드러나지 않아요. 단지 색만 보이죠.”

갸날프고 자잘한 것이 일상이다. 그러나 일상에서 모든 것이 일어나고, 일상이 모여 인생이 된다는 점에서 일상은 위대하다. 작가가 예술적 철학을 펼쳐내며 바라보는 지점 역시도 일상이다. 거대 담론이나 영웅주의보다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사의(寫意)들을 예술적 감수성으로 현현(顯現)해 낸다. 이때 색은 매파 역할을 한다. 그런데 왜 일상이었을까? 그가 ‘익숙함’을 언급했다. “누가 봐도 불편하지 않을 정서를 따져보았을 때 ‘익숙함’이 제격이었어요.”

작가가 익숙함을 색으로 풀어내는 재료로 일상에만 주목한 것은 아니었다. 색 자체에 더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익숙함의 기원을 훨씬 더 오랜 과거로 거슬러 가는 것. 그에 따르면 태고 때부터 인간은 4원색에 길들여졌다. 지금도 우리 DNA 속에는 색에 대한 익숙함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 그 익숙함까지 담아내고 싶었던 것.

“우리에게 아주 오랫동안 내재돼 있는 그 익숙함을 담아내려 했어요.”

사의(寫意)가 전제되는 작업은 기운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기운이 흔들리면 작품이 중심을 잃게 되고 색의 깊이감도 보장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이 경지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몸’과 ‘정신’을 매개로 ‘익숙함’이라는 서정을 색으로 치환하는 작가에게도 균형 유지는 과제였다. 그도 속인인지라 끊임없이 흔들리고 유혹에 빠졌고, 그때마다 단호하게 빠져나와 평상심을 유지해야 하는데 간단치가 않았다.

균형이 흐트러질 경우 작업은 실패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작가가 또 다시 “균형”을 강조했다.

“균형유지가 힘들기 때문에 작품 실패율이 높아요. 한 인간으로서 제 몫이 있는데, 그것이 균형인 것 같아요.”

1997년부터 단색으로 바탕칠을 한 캔버스 위에 걸쭉한 단색의 물감을 얹고 이를 다양한 크기의 쇠 주걱으로 미는 작업을 했다. 그러다 2007년부터 단색으로 색을 중첩했다. 단순한 단색에서 집적된 노동과 정신성을 더하면서 깊이감은 훨씬 강화됐다.

절정의 완성을 이룬 지금, 변화에 대한 카드를 만지작거릴 만한데 그는 의외로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했다. 전시도 10여년 만이고 이번 작품을 세상과 소통하는 것도 처음이라는 것.

“지금까지가 하나의 토대를 구축하는 시간이었다면 앞으로는 매진하는 시간으로 채워질 것 같아요. 내 안에서 웅얼거리는 생각들이 이 토대 안에서 드러나지 않을까 싶어요. 앞으로는 열심히 세상과 소통도 할 계획이에요.” 전시는 13일까지. 053-474-4888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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