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러브리스' 아들이 사라졌다…사랑없는 가족의 비극
영화 '러브리스' 아들이 사라졌다…사랑없는 가족의 비극
  • 배수경
  • 승인 2019.05.02 21:3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이가 실종된 후에도
서로 비난만 퍼붓는 부모
무너져가는 한 가족 빗대
러시아 현시대 상황 은유
러브리스
부모가 서로 자신을 맡지 않겠다고 싸우는 것을 들은 알로샤는 화장실 문 뒤에서 숨죽여 오열한다.

영화가 시작되면 황량한 숲이 나타난다. 학교에서 나온 한 소년이 그 숲길을 걸어간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카메라는 그저 아이만 따라갈 뿐이다.

영화 ‘러브리스’는 제목 그대로 사랑이 사라진 한 가정을 그리고 있다. 이혼을 앞둔 제냐(마리아나 스피바크)와 보리스(알렉세이 로진) 부부는 집만 팔리면 언제든 헤어질 준비가 되어 있다. 두 사람에겐 각각의 연인들도 있다. 그들 사이에 걸림돌은 12살이 된 아들 알리샤(마트베이 노비코프)다. 어느날 밤, 서로를 향한 날선 비난과 함께 아이를 누가 맡을지에 대한 말다툼이 벌어진다. ‘아이가 들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 따위는 그들의 안중엔 없다. 그저 어떻게 하면 서로에게 더 상처를 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만 있을 뿐.

안타깝게도 그 시간에 깨어있던 아들은 화장실 문 뒤에 숨어 그 모든 이야기를 듣고 숨죽여 오열한다. 부모는 모르고 관객만 아는 그 장면은 마음을 무너져 내리게 한다. 그리고 다음날, 소년이 사라졌다. 준비되지 않은 부모가 낳은 아이, 그렇게 무관심 속에 방치된 아이는 상처입고 사라져 버린다. 그가 어디로 갔는지, 그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소년이 등장하는 분량은 얼마되지 않지만 그가 영화 초반 보여준 공허한 눈빛과 표정은 내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아이가 사라진 날 밤, 부모는 각각의 연인과 시간을 보내느라 아이의 부재 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아이의 실종 소식에도 아이를 잃은 대부분의 부모들의 행동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아이를 찾는 것보다 서로를 향한 비난을 퍼붓기 바쁘다. 영안실에서 혹시 자신의 아이인지 모를 사체 앞에서 오열하는 부부를 보고도 ‘아. 그래도 부모인데 저러는게 정상이지.’ 하는 안도감과 함께 ‘저 모습이 과연 진심일까?’ 하는 의심도 동시에 생겨난다.

영화는 아이로 대변되는 무엇인가를 상실한 사회를 그리고 있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내내 어둡고 차갑고 황량하다. 등장 인물들의 표정도 무미건조하다. 사랑만 없는 것이 아니라 감정도 없고 부끄러움도 없고 희망은 더더욱 없어보인다.

 

아들이 사라져도 부부는 서로에게 날선 비난만을 퍼붓는다.
아들이 사라져도 부부는 서로에게 날선 비난만을 퍼붓는다.

 

이혼은 절대 허용되지 않는 회사, 아이의 실종에도 경찰보다는 민간 수색대가 더 큰 역할을 담당하는 상황 등을 통해 러시아의 현 상황을 엿볼 수도 있다. 게다가 영화 중간중간 흘러나오는 라디오나 TV의 뉴스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러시아의 부조리에 대한 것들 뿐이다.

영화의 마지막, 알로샤의 행방은 여전히 알 수 없는 상태로 시간은 흘러가고 제냐와 보리스는 각각의 연인들과 가정을 꾸린 듯 보인다. 사랑없는 결혼생활에 대해 얘기하며 당신만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이야기하던 그들이 새로 꾸린 가정도 예전의 그들의 삶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서로의 상대방만 달라졌을뿐 여전히 무미건조하다.

그들이 잃어버린 것은 과연 무엇일까? 영화 ‘러브리스’는 ‘리바이어던’으로 거대한 국가권력과 이로 인한 개인의 시련을 다뤘던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의 작품으로 제 70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과 제 43회 LA비평가 협회상을 수상했다. 대구,경북에서는 동성아트홀과 안동중앙시네마에서 만날 수 있다.

배수경기자 micbae@idaegu.co.kr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