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유언
아버지의 유언
  • 승인 2019.11.1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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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경 다문화사회 연구소 소장·교육학 박사
베트남 북부 하롱베이의 11월 날씨는 고추잠자리가 맴도는 한국의 가을 하늘처럼 맑고 청아하다. 코발트빛 바다는 햇빛에 반사되어 보석처럼 반짝인다. 특급호텔의 베란다에서 대나무 의자에 깊숙이 몸을 맡긴 채 따스한 햇살을 온몸으로 느끼며 나른한 오후를 즐긴다. 새벽 산책길에 다정하게 손을 잡고 해변을 거닐던 신혼 커플의 행복해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남녀 사이에는 처음 봤을 때 3초 간의 느낌이 평생 간다고 한다. 문화와 언어가 다른 국제결혼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사전에 서로 프로필을 주고 받은 만남이지만, 예전부터 알아왔던 사람처럼 두 사람은 다정한 눈빛 교환을 하며 미소를 잃지 않았다. 신부의 아버지까지 사윗감을 보고는 흡족해하시며 적극 찬성하셨으니 신랑에게는 천군만마였다.

신랑은 오십 대 초반의 노총각으로 안정적인 직장에 반듯한 용모를 지닌 노총각이었다. 한국에서 수없이 맞선을 보았으나 인연을 찾지 못했다. 올 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유언으로 베트남 처녀와 결혼해서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하나 낳아라 했다 한다. 신부는 삼십 대 중반의 여덟살짜리 아들을 둔 재혼 여성이다. 남편의 도박과 외도로 이혼한 여성이다. 친권이 아빠에게 있는 아들에게 능력 있는 신부는 한 달에 베트남 돈 200만 동(한국돈 십만 원)을 양육비로 매월 주고 있었다. 베트남 여성으로서 석사과정까지 공부한 재원으로 회사 경리를 하면서 행정업무 대행 프리랜서로 투잡을 갖고 있는 능력 있는 여성이었다. 본인 소유의 아파트 두 채에 월세를 받고 자가용까지 있었다. 그녀의 첫인상은 갈색 정장 차림에 안경을 낀 차분한 모습이었는데 눈웃음이 해맑았고, 보통의 한국 여성들과 많이 닮아 있었다. 통역을 통해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가면서 탐색했다. 일반적인 베트남의 식사문화는 주로 아침밥을 시장에서 쌀국수나 간단한 음식을 사 먹는다. 그녀는 시장음식이 청결하지 않아서 아침에 집밥을 해 먹고 도시락을 싸서 직장에 출근한다고 했다. 신랑은 한국 사람들과 비슷한 문화와 생각을 가진 그녀의 말에 흡족해 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국제결혼에 대해 말도 많고 탈도 많다. 하물며 말과 문화가 통하는 한국사람끼리도 소통의 부재로 힘들어하는데, 낯선 이방인들의 만남인데 서로 노력하지 않으면 깨어지기 쉬운 유리잔이 되고 만다. 하지만, 남녀 간의 사랑은 국적을 초월한다. 베트남은 조혼의 영향으로 일찍 결혼을 하기 때문에 사회구조상 이혼율이 높다. 수많은 외세의 침입으로 남성들이 전쟁에 나가면 여성들이 일을 하고 가장 역할을 했다. 예전의 여성들은 참고 살았지만, 신세대의 여성들은 그렇지 않다. 베트남의 경제 성장률이 높아지고, 여성들도 공부도 많이 하면서 의식수준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현재보다 나은 미래와 자아실현의 가치를 삶의 우선에 두는 여성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국제결혼의 판도가 변화하고 있는 것도 이런 기류와 무관치 않다.

한국엔 지금, 만혼·비혼으로 여성들이 결혼을 꺼려한다. 특히 능력 있는 여성들은 결혼이라는 제도의 구속을 원하지 않고 나 홀로의 이상적인 삶을 추구하는 소위 욜로족(YOLO:You Only Live Once)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현상으로 인해 우리나라 만혼 남성들의 결혼에 대한 기대치와 베트남의 젊은 재혼 여성들의 욕구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녀는 상대가 공무원이고 경제적 능력도 있는데 왜 베트남 여성과의 결혼을 원했는지 의아하게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나이가 많아 가임기의 젊은 여성과 결혼하기가 쉽지 않다고 얘기했더니 다소 수긍이 가는 표정이다. 또 아버지가 유언으로 베트남 여성들이 착하니 꼭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라고 했다 하니 환하게 웃는 모습이 참 따뜻하다.

남녀 간의 만남과 결혼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편향된 잣대로 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아이를 낳고 싶은 노총각과 베트남 재혼녀의 만남에 대해 그들의 생각을 존중할 뿐이다. 떡두꺼비 같은 아들 낳아서 아버지께 효도하고 국가의 인구정책에 일조도 하니 금상첨화가 아닌가 싶다. 자신의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 베트남 재혼녀의 총명한 눈빛이 푸른 바다 위에 클로즈업되어 미소 짓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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