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대 도서관·대구한의대 간판 글씨의 주인공
계명대 도서관·대구한의대 간판 글씨의 주인공
  • 김영태
  • 승인 2020.01.20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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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헌 김만호의 예술세계를 찾아서 (36)-만년기(晩年期) 1. 1988(81세)~1989(82세)
영천 운남정·안동 임호서당·안동교육대학·순국 현충비…
전국 사당·서원 현판, 기념관 간판, 비문 등에 친필 휘호
소헌작품
만년(81세)의 소헌 선생이 무진년(戊辰,1988) 겨울에 휘호한 「荀子勸學篇(순자권학편),191.0x69.0cm,1988」. 이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주최 「’89현대미술초대전,1989.8.2~8.31」에 초대 전시되었다.(소헌미술관 소장)
 
소헌서실현판
만년의 소헌 선생은 1987년(80세)에 특별히 문하의 서실 현판 글씨를 많이 써 주었다. 위는 1977년(丁巳)에 소헌 선생이 써 내려준 현판 「약산서실(若山書室),30.0x130.0cm,1977」. (약산 김영훈 소장)

◇소헌자음(素軒自吟)

1988년은 서울에서 ‘제24회 올림픽대회’가 열렸던 해이자 소헌 선생이 81세가 되는 해였다. 세계인의 눈길이 서울에 머물고 서울이 뜨거운 젊음의 함성으로 물들 때 소헌 선생은 자신이 만년기에 접어든 것을 직감했다. 이승에서의 인연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했지만 서도에 대한 열정을 꺾이지 않았다.

1988년(戊辰)은 소헌 선생이 81세를 맞는 해이다. 만년기(晩年期)에 접어 든 것이다. 1988년 초 2월13일(음丁卯.12.26), 선생의 비망록(備忘錄)에는 다음과 같은 ‘소헌자음(素軒自吟)’이 기록돼 있다.

「鳶飛魚躍智覺上下 解脫塵垢永歸靈界/연비어약지각상하 해탈진구영귀영계/ 丁卯寒素軒自吟/정묘한소헌자음」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퍼뜩이니 천지 이치를 깨쳐 알겠노라. 티끌과 때를 벗고 영(靈)의 세계로 영원히 돌아갈까 하노라. 1988년(음,丁卯) 겨울에 소헌 스스로 읊음.”

선생은 만촌(晩村)에서 스스로 만년(晩年)이 왔음을 지각(知覺)한 듯 했다.

제21회 봉강연서회(회장,박선정) 회원전(1988.5.20.~5.24,대구시민회관대전시실)은 회원 47명의 작품 110점을 전시하였다. 소헌 선생의 격려작품 횡액 「崇山海深(숭산해심)」과 「括囊無咎(괄낭무구)」 2점이 출품된 큰 전시회였다. 한편 영호남 교류전은 1988년 10월에 진주에서 제8회 영호남서예교류전(1988.10.22~10.26,경남문화예술회관)이 개최되었다. 영호남(대구,진주,광주)의 서예가 124명이 출품하였다. 소헌 선생은 횡액 「交以道接以禮(교이도접이례)」를 출품하였고, 타계한 송곡(松谷) 안규동(安圭東) 선생의 유작(遺作)이 전시되었다.

1988년 가을에는 서울에서 ‘제24회 올림픽대회’가 열렸다(1988.9.17~10.2). 160개국이 참가한 서울 올림픽에서 한국은 금메달 12개를 획득하여 종합 4위를 기록했다. 올림 역사상 최대규모로 진행된 88올림픽의 개최는 세계만방(世界萬邦)에 ‘코리아’를 확실하게 인식시켰고, 우리 국민들에게 자부심과 자존심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을 상기(想起)케 하는 크나큰 계기가 되었다. 개회식에서는 손기정 선수가 성화 최종 봉송주자로 나서 온 국민을 감동케 했다.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 단 선명한 태극기(太極旗)가 소헌 선생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50여년 전 베를린올림픽(1936)에서 일장기(日章旗) 달고 마라톤을 세계제패한 손기정 선수의 가슴 아팠던 울분이 되살아 났던 것이다.

소헌 선생은 88올림픽을 축하하는 ‘한중일삼국오륜환축전(韓中日三國五輪環祝展)’ 서울전람회에 소강절(邵康節)의 ‘관물음일절구(觀物吟一節句)’ 글귀 하나를 써서 보냈다(1988.6.17)

「萬物備吾身身貪道未貪/만물비오신탐도미탐/ 觀時見物理主敬得天眞/관시견물이주경득천진/ 戊辰林鐘月上澣素軒金萬湖書/무진임종월상한소헌김만호서」

“만물이 우리의 몸(身)을 갖추게 하니, 몸(身)은 자초하여 탐을 내나 도(道)는 이를 탐하지 않는다. 세상을 보고 만물의 이치(理)를 깨닫고, 공경(敬)을 주로 하면 하늘의 진리를 얻을 수 있다. 1988년 음력 6월 초순에 소헌 김만호 쓰다”

이듬해 1989년 8월에는 국립현대미술관(관장,이경성)이 주최한 「’89현대미술초대전(1989.8.2~8.31)」이 있었다. 소헌 선생은 「荀子勸學篇(순자권학편)」을 출품하였다. 봉강(鳳岡)의 김응섭(金應燮), 이성조(李成祚), 류영희(柳永喜), 한영구(韓永久) 제씨도 함께 초대 출품한 이 전람회는 한국화, 서예, 공예의 3개 부문에서 383명의 원로, 기성작가가 초대된 한국 현대미술의 맥락을 짚을 수 있는 국내 최대의 미술전시회였다.

◇소헌의 현판 글씨

만년(晩年)에 접어든 소헌 선생은 1987년(丁卯,80세)에 특별히 문하(門下) 제자들에게 현판(懸板)글씨를 많이 써내려 주었다. 7월달에 자미막(自 幕,1987.7.28), 입산초당(立山艸堂,1987.7.28)을 휘호하여 주었고, 서실 현판으로 남석문묵당(南石文墨堂,1987.8.1), 허암문묵당(虛庵文墨堂,1987.8.1), 소금문묵당(小錦文墨堂,1987.8.10), 벽송문묵당(碧松文墨堂,), 만송서실(晩松書室,1987.8.10), 난정서실(蘭汀書室,1987.8.23), 계림서실(桂林書室,1987.9.7), 남재서실(南齋書室,1987), 석파서실(石坡書室,1987), 혜정서실(蕙汀書室,1987). 경전서실(耕田書室,1987), 서산서실(曙山書99室,1987), 묵당서실( 堂書室,1987), 석은서실(石垠書室,1987), 봉암서실(鳳巖書室,1987), 성제서실(省齊書室,1987), 문강서실(文岡書室,1987)의 현판 글씨를 써 주었다. 이 전 70년대에 약산서실(若山書室,1977)과 90년대 초에 시헌문묵당(是軒文墨堂,1990), 유학재(留鶴齋,1991), 석초문묵당(石楚文墨堂,1991) 등의 현판도 소헌 선생의 친필이다. 80년대 후반의 시기에 쓴 재실(齋室)과 정자(亭子)의 현판으로는 성주 윤동(倫洞)에 소재한 이의당(以宜堂,1987.8.4)과 삼담정(三潭亭, 영천시 소재,1987.9.11), 사봉정(沙峰亭, 1987.9.14), 금암재(錦岩齋, 경주시 국동 소재, 1987.10), 월산재(月山齋, 청송군 현서면 소재, 1987.11.17), 학운재(鶴雲齋,의성군 금성면 소재, 1988.1) 등 재사(齋舍)의 현판 글씨를 썼다.

소헌 선생은 지난 1960년대 이후 전국에 산재해 있는 많은 재사(齋舍)와 서원(書院), 사찰(寺刹)의 현액, 사적비, 유허비, 순국현충비, 묘전비(墓前碑) 비문과 대학교, 기념관 등의 간판 글씨, 각종 문헌의 제자(題字)를 써 주었다.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재실(齋室), 정자(亭子), 사당(祠堂)의 현액으로는 운남정(雲南亭,1960,영천시 고경면 소재)을 비롯해서 첨모당(瞻慕堂,1964,경주시 안강읍 소재), 구봉정사(龜峰精舍,1964, 경주시 안강읍 소재), 추모당(追慕堂,1964,경주시 안강읍 소재), 문산재(汶山齋,1965,달성군 다사면 소재), 숭덕사(崇德祠,1967,안동시 일직면 소재), 아산재(牙山齋,1972,청도군 매전면 소재), 삼우재(三友齋,1973,청도군 각북면 소재), 해강재(海岡齋,1977,영일군 소재), 상현사(尙賢祠,1977,경산시 진량면 소재), 원산재(院山齋,1978,청도군 화양면 소재), 염수재(念修齋,1979,영천시 화룡동 소재), 화원정(花園亭,1979,대구시 화원동산 소재)과 송사정(松仕亭,1979,대구시 화원동산 소재), 남곡정(南谷亭,1980,청송군 현서면 소재), 국포정사(菊圃精舍,1981,대구시 소재) 등과 계명대학교 중앙도서관의 석조(石彫)간판 동산기념도서관(童山紀念圖書館,字當55x55cm,1980,대구시 대명동 소재), 신천기념관(信天紀念館,1990,서울시 원효로 소재)의 현판 글씨를 썼다.

서원의 현액으로 율산서원(栗山書院,1977,경산시 진량면 소재), 임호서당(臨湖書堂,1977,안동시 임하면 소재), 옥계서원(玉溪書院,1984,구미시 인동 소재) 등과 파계사 성전암(聖殿庵)의 주련(柱聯,7개,1968), 편액 관음전(觀音殿,1990), 적묵전(寂 殿,1990) 등 많은 현판 글씨가 있다.

사적비와 순국 현충비의 비문으로는 진민사중건사적비(鎭民祠重建事蹟碑,1965,의성군 사곡면 소재)와 청도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고해병소령이인호현충비(故海兵少領李仁鎬顯忠碑,1967,청도군 화양읍 소재), 목산조현욱선생순국기념비(牧山趙炫郁先生殉國紀念碑,1970,대구시 팔달교), 도동사유허비(道洞社遺墟碑,1977,청송군 현서면 소재) 등이 있다.

묘전비(墓前碑)로는 대사헌김임지묘정부인정씨부(大司憲金恁之墓貞夫人鄭氏?,1965,안동시 소재), 옥산장공지묘(玉山張公之墓,1966,구미시 인동 소재), 승훈낭화밀양박공지묘(承訓郞華密陽朴公之墓,1966,청도군 이서면 소재), 기자전참봉지양김공지묘(箕子殿參奉芝陽金公之墓,1967,청송군 현서면 소재), 예빈사봉사의성김공지묘(禮賓寺奉事義城金公之墓,1968,의성군 현서면 소재), 지당아산장공지묘(止塘牙山蔣公之墓,1971,대구시 욱수동 소재), 처사평해황공지묘(處士平海黃公之墓,1972,상주시 청리면 소재) 등이 있다.

그 외 안동교육대학(한글), 상주농잠전문학교(한글,1974), 대구한의대학(大邱韓醫大學) 외 대학교의 정문간판과 김만재내과의원(金萬在內科醫院,1974), 대구직할시한의사회(大邱直轄市韓醫師會,1987), 세중한의원(世衆韓醫院,1990) 등의 간판 글씨를 써 주었다. 그 외 각종 문헌(文獻)의 제자(題字)를 써준 것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남겨 놓았다.

김영태 영남대 명예교수(공학박사,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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