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과 현상
원인과 현상
  • 승인 2020.01.2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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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사람향기 라이프디자인 연구소장


자녀 문제로 상담을 하는 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비슷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100% 모든 부모가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거의 대다수의 부모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비슷한 말을 하는 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비슷할까? 그것은 부모들 대부분이 문제 행동의 원인을 자녀들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이다. 즉, 자녀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고, 문제 행동의 원인이 자녀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명확하게 얘기하고 싶은 점은 아이들의 문제 행동은 원인이 아니라 현상이라는 점이다. 어떤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현상.

그렇다면 원인은 무엇일까? 특별한 경우(사건 사고, 뇌 손상 등)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부모다. 인정하고 싶지 않을지 모르나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원인은 현상 전에 있다. 그래서 원인을 찾을 때는 시작에서 찾으면 쉽다. 현상은 원인에 의한 것이다.

10여 년 전으로 기억된다. 한 여성분이 전화가 왔다. 자녀의 문제로 상담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의 딸이 요즘 화가 나면 가위로 옷을 다 잘라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방에 들어가서 울고불고하면서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착하고, 순하던 딸이 이런 행동을 보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는 것이다. 너무 당황스럽고 걱정이 되어서 자녀를 상담해 줬으면 하는 내용이었다. 우선 상담실을 방문하여 상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였다. 아이를 데려오려는 부모에게 필자가 해준 말은 “처음에는 부모님부터 먼저 뵙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말이었다. 아이가 문제행동을 보이는데 왜 자신들을 보자고 하는지 의아해하는 부모를 잘 설득하여 부모 중 전화를 준 엄마 먼저 첫 상담이 시작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가족 안에 문제가 있었다. 먼저 부부관계가 말 그대로 엉망이었다. 서류상으로는 부부였지만 관계적으로는 남남과 마찬가지였다. 아니 원수라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그런 부부 사이였다. 대화도 없었고, 활동이며 경제적인 부분 어느 것 하나 공유하고 있지 않았다. 2시간가량 남편의 잘못과 흉 같은 하소연을 다 듣고 난 뒤, 다음 상담에서는 남편도 함께 보자고 하였다. 아이가 문제가 있는데 왜 자꾸 우리를 보자고 하냐고 귀찮아하는 눈빛과 함께 불신의 눈빛을 나에게 보였다. 남편도 바쁘고, 자기도 바쁘다는 이유였다. 그래도 나는 굽히지 않았다. “다음 시간 남편과 함께 뵈었으면 합니다. 아이는 그 후에 보는 거로 하겠습니다” 사실 나는 그 때 이미 방향을 설정했다. 상담은 부부 상담으로 이어갈 것이고, 자녀는 볼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자녀의 문제 행동은 원인에 의한 현상일 뿐이고, 원인은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부모 둘에게 있다는 것을.

드디어 부부 상담이 10회기 진행되었다. 그리고 10주간의 상담이 종료되었다. 10회기 상담을 진행하는 동안에 이미 아이의 문제행동은 사라지고 안정이 되었다고 부부가 얘기해주었다. 위와 같은 유사한 사례가 많다. 모두 시작은 아이의 문제행동으로 상담실을 찾고 진행은 부부 상담과 부모교육으로 끝을 맺었다. 모두 공통된 것은 아이는 한 번도 상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부부 상담이 끝날 때 아이의 문제행동은 이미 사라졌다는 것이다. 거짓말 같겠지만 본인이 모두 경험한 사실이다.

자동차의 오일이 바닥을 보일 때쯤 계기판에는 빨간 신호가 들어온다. 그때 오일만 채워주면 된다. 그러면 더 이상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 그런데 신호가 보기 싫다고 깜빡이는 경고등 위에 테이프를 붙이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그는 바보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원인이 있고, 현상이 있다. 대부분 자녀의 문제 행동은 가족 안에 문제가 생겼다는 경고 신호, 즉 현상이다. 원인은 대부분이 시작점에 있다. 바로 힘을 가진 부모들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인정해야 한다. 인정하고 나면 속도 편하고 해결방법도 의외로 쉽다.

나무의 기둥을 붙들고 흔들면 나뭇가지도 흔들린다. 그런데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보기 싫다고 나뭇가지를 줄로 고정하거나 나뭇가지 보고 멈추라고 윽박질러서는 안 된다. 시간 낭비고, 에너지 낭비다. 원인이 멈추면 현상도 멈추는 법. 나뭇가지를 흔들고 있는 행위를 멈추면 나뭇가지도 자연스럽게 멈추는 법이다. 현상과 원인을 잘 구분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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