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도 온기도 없는…色다른 박물관
시간도 온기도 없는…色다른 박물관
  • 황인옥
  • 승인 2020.02.0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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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창청춘맨숀 ‘실재와 가상’展
참여 아티스트 변카카 작품 조명
인류 생활상 파악에 한계 있는
박물관의 시대별 분류법 지적
3D프린터로 ‘온기 없는’ 유물 제작
서구화된 지식체계·문명 비판
작가 변카카 작품
변카카 작 ‘타임랩스’

박물관 속 유물들이 전시장에 떴다. 고대나 중세 선조들이 사용했던  생활도구나 장신구 등의 유물들이 박물관 진열장과 흡사한 공간에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살짝 야릇하다. 유물에서 온기가 배어나오지 않는다. 유물이 되기까지의 중첩된 시간이나 수 억만년 전 도구의 주인이었던 인간의 흔적이 배어있지 않아 공산품처럼 매끈하다. 현대의 누군가 솜씨를 발휘해 잘 만든 공예품과 흡사하다. 실 같은 재료로 얽기 설기 엮어 모양만 대충 잡아 놓아 종잇장처럼 가볍다. 작가 변카카의 작품 ‘타임 랩스’다. 작가가 “박물관을 좀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려고 했다”며 작품 에 담겨진 의미를 전했다.

흔히 박물관의 전시 구성은 시대별로 분류된다. 고대인류부터 근대인류까지, 유물들을 시대별로 나열해 전시한다. 그런데 변 작가는 박물관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이 분류법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각 문명마다 진화의 속도가 그야말로 각양각색인데, 서구식 분류법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비논리적으로 다가온다.  

그가 “서구 인간 사회의 가설과 가치관의 상호관계를 적극적 반영한 분류법을 인류 공통의 역사분류 방식으로 받아들이기에 한계가 있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억겁의 시간을 견디고 유물로 전해졌다는 것도 기적인데, 그 기적과 현대인이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은 더 큰 경이로움이다. 시간이 봉인된 타임캡슐을 열고 시간여행자가 되는 순간인 것이다. 그런데 "짜릿한 감성으로 박물관 전시장을 샅샅이 훑고 나온 후에도 그런 감동이 유지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는 회의적이 된다. 돌도끼나 토기, 청동칼, 철기무기 등의 유물들의 이미지는 파편적으로 머릿속을 떠돌지만, 물질이 가진 고유의 물성이나 아주 오랜 선조들의 삶의 체취까지 가슴 깊이 호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작가가 “우리가 만나는 유물들이 내용이 빠지고 껍데기만 남은 쭉정이여서 그렇다”며 심각한 얼굴로 설명을 이어갔다. “인류학자들이 한정된 수집과 분류로 고대 인류의 시간을 정의해 놓았잖아요? 제게 그런 방식은 인간이 감히 도달할 수 없는 시간의 망각 속에서 제어장치가 고장난 타임머신을 타고 간헐적으로 고대 인류의 생활상을 훔쳐보는 현상처럼 보였어요.”

인간이 수집해 놓은 고대유물은 고대 삶의 극히 작은 파편에 불과하다. 현대인이 고대 유물 몇 점으로 그들의 삶 전체를 공감하기에 한계가 따른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유물을 관람하고 박물관을 나왔을 때 머릿속에 흐릿한 이미지만 남게 되는 현상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 비롯됨이다. 작가가 이번 전시에 출품한 작품 ‘타임랩스’ 연작에서 던지고 싶은 이야기도 그런 것이다.
 

작가는 유물에서 느끼는 불편한 심기를 작품에서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3D 프린팅 기법으로 유물을 재현하고 조명으로 유물의 물성을 모호하게 흐리는 식이다.  현대기술을 통해 이른바 복제되고 재생산된 유물에서 고대인의 삶을 어렴풋하게라도 느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조명을 흐리는 기법으로 처리한다. “서구인의 잣대로 만들어 놓은 인류의 문명과 야만의 분류법을 재해석하고자 했어요. 이러한 과정 속에 제도적 지식에 대한 비판이 들어가죠.”

작가는 서구를 시각과 기준으로 인류의 지식을 개념화한 것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면서 또 하나의 문제의식도 발동시킨다. 인간의 오만함이다.  그는 3D 프린팅이라는 기술의 개발로 물질은 알고리즘 정보로 치환되고 웹상에 공유되며 물질의 대체 가능한 환경, 즉 탈물질화를 진전시켜 가고 있지만 그것 역시 허상일 수 있다며 단호하게 말한다. “3D 프린팅으로 인간의 장기까지 재생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지만 그것은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인간의 오만함이 아닐 수 없어요.”

이번 전시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작가의 작업실 한켠에는 밀가루, 설탕, 효모, 계란이 놓여져 있다. 재료에서 어렵잖게 빵이 연상된다. 실제로 작가는 이 재료들로 얼굴 형태의 빵을 만들어 가면으로 쓴다. 어떤 때는 매트리스 빵을 만들기도 한다. 작가는 빵으로 만든 탈을 쓰고 공원에 앉아 있는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한다.

“새들이 날아와 빵으로 만들어진 탈을 쓴 저의 주변에 날아와 앉았고, 저의 상상과는 달리 머리 위에 직접 쪼아먹지 않고, 제가 직접 빵탈의 일부를 떼어 주었을 때 쪼아 먹기 시작했어요.”

그가 빵으로 만든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분명하다. 인간도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이라는 자연 생태계의 한 구성원이라는 것. “언제부턴가 인간은 먹이사슬의 최상층을 차지했고, 더 이상 인간이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는 일은 사라졌어요.”

작가는 “자연계의 먹이사슬로부터 이탈한 인간이 정상이냐고 반문”한다. 이 비정상이 결국 인간을 향할 것이라는 의미였다. “인간 역시 자연계의 일원인데 그것에 역행하는 삶을 살고 있죠. 교만하게 자연을 대할 때 결국 자연의 일부인 인간까지 다치게 될 겁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냉철하게 다루거나 서구 중심으로 굳어진 지식체계나 이를 무분별하게 수용하는 비서구의 태도를 비판하는 변카카를 비롯한 20 여명이 참여하는 수창청춘맨숀 ‘실재와 가상’전은 4 월 30 일까지. 053-252-2566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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