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소나무…우리 가슴 속 뿌리는 영원하길
사라져가는 소나무…우리 가슴 속 뿌리는 영원하길
  • 임종택
  • 승인 2020.02.0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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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숲 그리고 자연이야기 - (19) 소나무의 미래
누구나 다 아는 ‘민족수’
푸른 절개와 충절·기상의 상징
우리 민족과 더불어 살아와
아기 태어나면 솔가지 매달고
죽으면 소나무 관서 일생 마감
나무로 집 짓고 가지로 불 지펴
우리의 과제
지구 온난화에 개체수 급감
2090년엔 한국서 멸종 위기
소나무의위용
간섭받지 않은 소나무는 오랜 세월을 버틸 수 있다.

“더우면 꽃이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는가/ 구천(땅 속)에 뿌리 곧은 줄을 글로 하여 아노라.”

조선후기 시인 고산 윤선도의 산중신곡에 수록된 오우가의 한 대목은 알다시피 소나무에 대한 변함없는 충절을 노래한 시다. 모든 것은 변해도 끝까지 변치않고 시종(始終) 푸른 절개와 기상을 간직하고 있는 소나무는 우리 국민이면 누구나 다 아는 민족수(民族樹)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로 인해 2090년 쯤이면 강원도의 일부 지역만 남기고 우리나라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국립산림과학원은 예측하고 있다. 아기가 태어나면 금줄을 쳐서 솔가지를 매달아 사악한 기운을 막고,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살며, 소나무 가지나 솔잎으로 불을 지피고, 소나무 껍질에서 송화가루에 이르기까지 수 없이 많은 먹거리를 얻기도 했으며 죽으면 소나무 관에 넣어 소나무가 있는 뒷산에 묻혀 일생을 마감했다.

이렇듯 우리 민족과 더불어 운명을 같이해온 소나무의 불안정한 미래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사색해 보고자 한다. 식물분류학상으로 소나무속은 잣나무 눈잣나무 섬잣나무 스트로브잣나무 백송 리기다소나무 곰솔 그리고 소나무를 포함 모두 여덟 가지 종으로 분류한다. 겉씨식물인 소나무는 학명이 Pinus densiflora Siebold & Zucc로 산에서 사는 나무라는 뜻의 ‘피누스’와 켈트어 ‘핀’에서 유래했다. 영명으로는 ‘Japanese red pine’ 즉 일본 붉은 소나무라고 하는데 이는 일제 강점기때 우에키라는 식물학자에 의해 붙여진 이름으로 우리나라와 중국을 제외하고 소나무가 일본을 대표하는 나무라고 알려지게 된 이유다.

당시 우에키는 기후와 지형에 따라 우리나라 소나무를 여섯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였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금강형이다. 금강소나무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 후 우리나라는 학명은 어찌할 수 없더라도 한국의 소나무라는 뜻으로 ‘Korea red pine’으로 개명해서 부르고 있다. 일제 침탈기에 이루어진 우리네 슬픈 역사의 단면이라는 사실이 가슴 아플 뿐이다.

소나무는 한자로는 松(송)자를 쓰는데 그 유래는 중국의 진시황이 길을 가다 소나무 밑에서 비를 피할 수 있게 해준 고마움의 표시로 벼슬을 내려 ‘木公’이라 하였다. 그 후 두 글자를 합쳐 현재의 松(송)으로 되었다 한다. 우리말에도 소나무의 솔은 수리라는 뜻으로 최고라는 의미가 있다. 즉 나무 중에서 최고의 나무라는 뜻으로 솔나무에서 소나무로 변형되었다. 키는 35미터까지 자라기도 한다.

소나무는 암·수 한몸이지만 절대로 자신의 꽃가루받이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암꽃은 항상 수꽃 위에 자리하고 있다. 다른 그루의 꽃가루를 받기 쉽도록 위쪽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소나무의 구애 의식으로 오랜 세월 강한 소나무로 자신의 혈통을 지켜올 수 있었다. 봄이면 노란색 가루가 날리는 것이 바로 꽃인 셈이다. 껍질의 외피 색깔은 주로 밑부분은 흑갈색 계통이고 위로 올라갈수록 붉은색을 띈다.

소나무의 가치를 껍질의 모양이 거북등을 닮았을 때 좋은 소나무로 평가하는 것은 후세 우리들의 잣대다. 소나무의 생태적 수명은 대략 140년 정도로 세계 산림식생의 우점종(dominant species, 優占種)의 수명이 100~1,000년이고, 온대지역의 낙엽 활엽수의 평균 수명이 300년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는 소나무가 천이(succession, 遷移)의 초기단계 식물로 시간이 경과됨에 따라 활엽수에 그 자리를 내주기 때문이다. 천이는 자연상태의 식물 군상(群像)의 시간적 변화를 나타낸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나라 산림중 소나무림이 이렇게까지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역사적으로 강력한 산림정책에 기인한 것이다. 신석기 시대인 4,300여년 전부터 소나무의 역사는 시작되었지만 고려 후기 문신이었던 이인로의 파한집에는 신라 화랑도가 수련의 목적으로 소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신라의 수도였던 계림(경주)에는 아침 저녁으로 소나무로 밥을 짓고 온돌방을 데우기 위해 땔감으로 사용하여 도시가 온통 소나무의 송진이 타는 검은 연기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조정에서는 그 후 소나무 벌목을 금지하는 대신 다른 잡목인 참나무나 낙엽활엽수의 숯으로 밥을 짓도록 하니 검은 연기가 없어졌다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건축보다는 주로 부귀영화를 위해 소나무를 많이 심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소나무가 건축과 조선(造船)에 중요한 자재로 사용되면서 금송(禁松)지역을 선정해 소나무림을 보호하고 조림을 하기도 했다. 안면도 소나무는 병선(兵船) 건조를 위해, 경북 울진 소광리의 소나무(현재는 울진소나무로 불린다)는 왕실의 관곽재(棺槨材) 생산을 위해 특별 관리를 했다. 당시 소나무는 금강송 홍송 적송 황장목 춘양목 등으로 불리었는데 현재 울진 소광리의 금강송 군락은 특별 보호되고 있으며 특히 금강송 산지농업은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고 500년이 넘는 할아버지소나무와 평균 150년이 넘은 금강송 군락이 1,600ha에 걸쳐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금강송은 강송이라고도 하고 금강산을 중심으로 해서 강원도에서 자라는 곧게 뻗은 나무를 의미한다. 춘양목은 삼척이나 봉화, 울진 등지에서 나오는 곧게 뻗은 강송을 일단 춘양역에 모아서 기차로 각지로 실어 나른 데서 생긴 말이다. 그런데 금강송이나 홍송 춘양목은 일제 당시 수탈을 목적으로 붙여진 이름이었다. 얼마전 치악산국립공원에서 금강송숲길 대신 황장목숲길이란 이름으로 아얘 안내판을 바꾸었다고 한다. 황장목(黃腸木)이 원래 바른 이름이다. 조선시대 소나무 벌목을 금지하는 금표의 이름이 황장금표임을 보면 알 수 있다. 황장금표는 전국 각지에 새겨졌는데, 화천, 영월, 평창의 봉산, 인제 등 표석은 현재 산림문화자산으로 등재되어 보호관리 되고 있다.

금강송 100년이면 궁궐이 1000년은 간다라고 해서 조선시대에는 이 소나무의 벌목을 방지하기 위해 엄격히 통제했다. 특히 소나무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던 정조가 솔잎을 갉어먹는 송충이를 삼키면서 자신의 불효한 창자를 갉아먹으라고 원망하자 어디선가 새들이 날아와서 송충이를 다 잡아 먹었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금강송의 재질은 일반 소나무와는 달리 견고하고 절단면이 붉은색을 띄고 있다. 하지만 금강송은 특정 지형에 영향을 받는 관계로 다른 지역에 심었을 경우 형질을 제대로 발현하지 못한다. 이는 목재로서의 가치는 있으나 대량생산의 한계를 시사하는 대목이다.

소나무의 정체성은 확고하다. 하지만 피톤치드라는 방향성 물질은 다른 식물의 접근을 막고 한번 잘려진 가지에는 새로운 움가지를 기대할 수 없다. 사정은 이러한데 우리 민족은 과거부터 제왕수라 불리는 소나무의 숭배로 너도나도 제왕적 기질만 닮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활엽수와의 생존투쟁과 기후변화의 원인으로 현재 우리나라 산림의 22%정도만 소나무림으로 남아있다. 우리나라 기후환경의 변화가 태평양과 시베리아 기단에 의해 주로 일어나지만 최근 인도양의 다이폴로 인한 온난화 현상은 지구의 새로운 환경변화를 예고하고 종잡을 수 없는 지구의 몸살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사라져가는 소나무의 미래는 결코 길지 않다.

이렇듯 소나무와 관련한 과거의 문화와 의식주에 대한 역사는 시간의 기억 속으로 점점 잊혀져가고 있어 아쉽다. 자연적 천이가 소나무림에서 참나무 주림(主林)의 혼효림으로 점점 변이를 겪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지만 소나무의 현대적 의미와 새롭게 부각되는 효용성은 많이 있다. 미세먼지를 가장 많이 흡수하며, 우리의 삶터 곳곳에 심겨져 고고한 경관미를 제공해 주고, 자신의 방어물질인 피톤치드는 오히려 인간에게는 휴양과 정신적 안정을 제공해 주는 물질이라는 것, 따라서 앞으로의 산림정책 100년을 다시금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것은 나무로 인해 영향을 받는 국민성의 문제이자 건전한 임상으로의 전환이 가져다 주는 이점도 잊지 말아야 할 대목이다.

소나무림이 천이가 되듯 우리의 심성도 평화를 추구하고 풍요로운 정신성을 갖기 위해 참나무류와 같은 넉넉하고 포용력 있는 활엽수로 금수강산을 수놓는 것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그와 더불어 사라져가는 이땅의 소나무 유전자원은 물론 친근함 뒤에 감추어진 결연한 정신성, 잎끝에서 풍기는 날카로운 영지와 고절함은 후세가 반드시 보호하고 지켜야 할 책무이자 정신유산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임종택(나무치료사·대구한의대 환경조경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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