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가 지닌 심오한 세계를 찾아 ‘마음의 밭’을 가는 것
글씨가 지닌 심오한 세계를 찾아 ‘마음의 밭’을 가는 것
  • 김영태
  • 승인 2020.02.17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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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헌 김만호의 예술세계를 찾아서 (39) 만년기(晩年期) 4. 서도관
좋은 글씨를 위한 五合
조용하고 통일된 정신
감동이 일어난 마음
좋은 날씨, 윤택한 기운
마음과 잘 맞는 필구
쓰고 싶다는 충동감
무궁천지일통산하
소헌 선생의 대련 작품 「無窮天地 一統山河(무궁천지 일통산하)」, 125.0x34.0cm(x2), 1981
 
다시-법천칙지
소헌 선생이 무오년(戊午,1978)에 휘호한 작품 「法天則地(법천칙지)」, 33.0x133.5cm, 1978

◇심정필정(心正筆正), 구도(求道)의 길

소헌(素軒) 선생은 어릴 때부터 글씨를 쓰면서 서예에 대한 지론(持論)을 갖고 중년 이후부터 철저하게 서예이론을 체계화하고 실행하는데 적용했다. 그는 글씨의 예술성을 중요시하면서도 그보다는 마음의 밭을 가는 경건함으로 글씨가 지닌 심오한 길을 찾아 나서는 자세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했다. 서도의 요체는 심정서정(心正書正)이요 심정필정(心正筆正)의 마음 자세라는 것이다.

선생이 평소에 주장했던 서도(書道)의 단계와 그의 서도관(書道觀)을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정신수양(情神修養)이 그 첫 단계이며, 다문다견(多聞多見)이 둘째 단계이고, 수완연마(手腕硏磨)가 세 번째 단계이며, 신운(神韻)의 경지가 마지막 단계이다. 서도의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 서도에는 인간의 바람인 심성(心性)이 밑거름이 되어야 하는 구도(求道)의 길이다. 남이 잘 모르는 고뇌를 혼자 삭일 수 있고 그 속에서 희열을 찾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묵묵히 걸을 수 없으면 서도는 고난의 길이 되어 뜻도 이해하기 전에 붓을 놓아 버리기 일쑤이다.

선생은 서(書)는 드러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 사람의 학문이 그대로 드러나고, 그 사람의 재능을 그대로 드러내며, 그 사람의 의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서(書)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드러내는 것이므로 그 사람 자체(自體)이다. 소헌 선생이 중시했던 서여기인론(書如其人論)이다.

서도에는 지조(志操)가 따라야 하고 체험이 수반되어야 한다. 지조가 없는 서도는 생명력 없는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더구나 지조 없이 자기 특유의 서체를 만들어서는 안 되고 또 그렇게 될 수도 없다고 하였다. 선생의 지조론(志操論)이다.

지조(志操)는 ‘중용(中庸)’에서 일컫는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그런 상태’를 말한다. ‘중(中)’은 옳은 일(正義)과 바른 길(正道)의 상태를 말하며 욕심(慾心)을 버리는 일이다. 허욕은 부리면 화(禍)를 자초하기 때문이다. 이는 소헌 선생의 중화이론(中化理論)이다.

선생은 서도는 “신운(神韻)과 연결되어야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신(神)으로서의 격(格)을 이기고 운치(韻致)로서 글줄을 빛나게 하는 것이 신운(神韻)이다. 그렇지만 신운(神韻)으로 서도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늘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그것은 점(點)과 획(劃) 가운데 잠겨 있고 운필(運筆)하는 과정 속에서 살아 있다”라고 하면서 꾸준하게 나아가면 유현(幽玄)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그의 신운론(神韻論)이다.

다음은 임자년(壬子,1972) 정월 15일에 김추사(金秋史), 한석봉(韓石峯) 양선생이 현몽하여 꿈속에서 그에게 계시(啓示)한 문구(文句)이다.(소헌비망록에서 발췌)

「… 腕接神 書驚人久(주완접신 서경인구)/ 毫不齊力 劃不免巧(호불제력 획불면교)/ 筆不接神 書不驚人(필불접신 서불경인)」

“…팔꿈치와 팔둑에 신운(神韻)이 내려오면 글씨가 사람을 경탄하게 하지만 붓자락에 힘이 들어가지 못하면 획의 교졸(巧拙)로 머물고 만다. 붓에 신운(神韻)이 접하지 못한 글씨는 사람을 감동케 할 수 없느니라.”라고 일러준 계시(啓示)를 소헌 선생은 평생 가슴에 안고 있었다.

실제에 있어서 선생은 글씨를 쓸 때 반드시 오합(五合)이 따르고 오괴(五乖)가 배제되어야 올바른 글씨가 된다고 하였다. 오합(五合)은 1)신이무한(神怡務閑), 2)감혜순지(感惠徇知), 3)시화기윤(時和氣潤), 4)지묵상발(紙墨相發), 5)우연욕서(偶然欲書)를 일컸고, 오괴(五乖)는 1)심거체유(心遽體留), 2)헌위세굴(憲違勢屈), 3)풍조일염(風燥日炎), 4)지묵불칭(紙墨不稱), 5)정태수한(情怠手閑)을 말한다. 즉 정신이 통일되고 조용해야하며, 내적 감동이 아주 흐뭇하고 순진해야 하며, 일기가 좋고 기운이 윤택하며, 종이와 먹 등 필구(筆具)가 마음이 맞아야 하고, 우연히 쓰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야 한다는 5합(五合)이 있어야 하고, 5괴(五乖)는 마음과 몸이 부자유스럽고, 정신이 위축되며, 기후가 순조롭지 못하고, 종이나 먹이 자기 기분에 맞지 않고, 권태증이 남을 뜻한다. 이같이 글씨를 쓸 때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순탄한 조건(五合)을 갖추어야 하고, 5괴(五乖)가 배제된 상태여야 이상적이라는 것이다. 선생의 오합오괴론(五合五乖論)이다.

작품 창작에 들어갈 때는 명제(命題)를 먼저 연구하고 규격을 정한 다음 배자(配字)를 하되 바른 마음으로 오합(五合)을 택해야 하고 오괴(五乖)가 배제된 연후에 운필을 해야 바른 글씨가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구상에 있어서도 종·횡(從·橫) 또는 해·행·초·예·전서(楷·行·草·隸·篆書) 중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를 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글씨가 되지 않는다. 글씨에는 교졸(巧拙)이 끼어들거나 탈속(脫俗)하지 못하면 필력(筆力)을 잃게 되고 생동감(生動感)이 떨어진다. 호흡을 가다듬고 정신을 한 곳에 모아 신운이 붓 끝에 응축되어 무아(無我)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을 때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 그런 경지에 든다는 것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랜 수련과 정신수양을 거쳐야만 다다를 수 있다. 서도는 이 같이 자신이 소재와 혼연일체가 돼야만 어떤 경지에 이를 수 있는 예술이다.

운필과정(運筆過程)에서는 음악적 요소를 가지게도 된다. 점(點) 하나 획(劃) 하나를 찍고 긋는데도 정신의 율동(律動)이 표현되는 것이다. 이 정신의 율동은 자기의 호흡, 자기의 맥박(脈搏), 혈(血)의 순환이 자기의 리듬과 맞아야 한다. 음악요소인 멜로디와 함께 하모니와 리듬이 있다는 것이다. 심정필정(心正筆正)이라 한 것이나 동이양신(動以養神), 정이양신(靜以養神)이라 한 것은 합리적인 동작(動作)과 적절한 정지(靜止)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고요함과 움직임이 합리적으로 조화가 이루어져야 정신이 길러진다는 것이다. 이 정신의 율동은 바로 생명의 모습이다.

◇소헌의 정서(正書)

앞서 말한 소헌 서도관의 기반은 어디까지나 정서(正書)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소헌 선생의 정서(正書)는 자연귀의(自然歸依)에 중점을 둔 것으로 서예의 첫걸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글씨공부의 요체라 할 수 있다. 문하생들에게 일관되게 잊지 말라고 한 것이 심정필정(心正筆正)의 정신과 더불어 바로 정서(正書)에 대한 필법이었다. 운필(運筆)의 바탕은 정서(正書)를 기본으로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자연회귀(自然回歸)에 바탕을 둔 소헌의 정서(正書) 삼법(三法)이라 함은 먼저 역입(逆入)은 양(陽), 다음 도출(導出)은 음(陰), 마지막 삼절(三折)은 천·지·인(天·地·人)을 의미한다. 정서는 영자팔법(永字八法)을 삼법(三法)으로 함축하여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쓸 수 있으며 삼법(三法)을 사방(四方) 확산(擴散) 용필(用筆)하면 전·예·해·행·초(篆·隸·楷·行·草)의 모든 글자를 다 쓸 수 있는 서법(書法)이다. 또한 정서는 신축성을 포용하고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의 예로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로 정서는 자형(字形)을 종장변형(從長變形)으로 쓰는 것이다, 예서(隸書)는 정서자형(正書字形)을 횡장형(橫長形)으로 쓰는 것이며, 해서(楷書)는 정서자형을 정교 방정형(方正形)으로 쓰는 것이다. 그리고 행서(行書)는 연맥유현형(連脈柔軟形)으로 쓰는 것, 초서(草書)는 정서자형을 유연활기(柔軟活氣) 자연감축(自然減縮) 형태로 쓰는 것이다. 그 대의(大義)는 육서(六書)에서 나온 것임을 밝혀 둔다. 육서는 바로 상형(象形), 지사(指事), 해성(諧聲), 회의(會意), 전주(轉註), 가차(假借)를 일컫고 있다고 하였다.

돌이켜 보면 소헌 선생의 서예에 대한 인식에는 몇 가지 분명한 철학(哲學)이 있었다. 첫째, 한학(漢學)에 대한 소양이 없는 서예는 사상누각(砂上樓閣)과 같기 때문에 문자의 내용과 뜻을 깊이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둘째 서예는 단순한 기예(藝)가 아닌 도(道)의 개념이며 마음의 그림(心畵)이기 때문에 인격을 수양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다. 그리고 셋째, 서도는 법(法)으로 들어가서 무법(無法)으로 나와야 법고창신(法古創新)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넷째, 운필과정에서 좋은 글씨가 나올려면 정신과 육체가 건강한 5합(五合)을 갖추고 5괴(五乖)에서 배제된 상태에서 운필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와 같은 선생이 생각하는 서(書)의 본령은 기예(技藝)로서만 그치지 않고 인격 수양에 있음을 몸소 보여 주었고, 구도(求道)의 길에서 유현(幽玄)의 경지를 향해 심혈을 기울이는 자세는 후학들의 귀감(龜鑑)이 되어야 할 것이다.

김영태 영남대 명예교수(공학박사,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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