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게 뭣꼬”
“세상에 이게 뭣꼬”
  • 승인 2020.03.17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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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해남 시인, 전 대구시환경녹지국장
코로나19 확산으로 국민들이 공포감에 휩싸여 있다. 한 달 가까이 학교 문을 못 열고, 상가가 문을 닫은 채 거리마다 흰 마스크 행렬이다. 이 와중에 여권의 막말과 자화자찬이 도를 넘고 있다. 코로나 확산 추세가 2자리수로 줄어들자 이 때다 싶어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 핵심부가 일제히 자화자찬에 나섰다. 민주당 박광온 최고위원의 “확진자수 증가가 뛰어난 진단능력 등 국가체제가 잘 작동한 때문”, 추미애 장관의 “중국인 입국제한조치 않은 것에 대한 국제사회의 실효적 평가”,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의 “새로운 방역관리의 모델”, 정세균총리의 “조만간 변곡점을 만날 수 있을 것”, 여기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은 방역관리의 세계적인 모범사례로 평가되고 있다”며 어깨를 으쓱한다.

참말로 머쓱하다. 신천지교인들의 전수조사가 끝나서 증가세가 줄어들었을 뿐인데…. 방역전선의 최고위층의 웃음 띤 얼굴 위로 지역사회 감염이 확산될까봐 노심초사하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의 초췌한 모습이 오버랩 된다. 자랑을 해도 정본부장이 해야 한다. 여권은 방역대응을 잘했다고 호들갑 떨기에 앞서 방역에 지쳐있는 수많은 의료진을 격려하고, 병상이 부족해서 병원에 가보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국민들에 대해 사과부터 하는 게 순서다. 그리고 이해와 협조를 부탁해야 한다. 그런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대통령이 직접 국민 앞에 서서 진정한 사과 한번 없었다. 기껏 비서관 회의에서 ‘마스크 문제’로 송구하다는 정도다.

역설적으로 한 번 따져보자. 세계적인 방역 모범사례로 평가된다면 왜 일본, 호주 등 방역 선진국을 포함한 130개 이상의 국가가 한국인 입국제한 조치를 할까? 더구나 코로나 확진자가 8천명이 넘고, 80명이 넘는 무고한 국민의 사망은 어떻게 설명할까? 2천개 이상의 병실을 확보 못해 ‘자가격리’ 상태에 있다면, 한 아파트 전체가 코호트로 봉쇄되고 있다면, 세계적인 방역 모범사례로 자랑하기에는 염치가 없어도 너무 없는 게 아닌가. 병원에도 가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남편이나 부모를 구환할 수 없는 가족들의 아픈 눈물이 보이지 않는가? 이것이 문재인 대통령이 말하던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인가?

더 기가 찬 것은 상처 받은 지역민의 등에 비수를 꽂는 막말이다. 전국의 코로나19 확진자의 80% 이상이 대구경북이다. 도심 전체가 커튼을 내려놓은 채 침울해 있는데 친여 성향의 인사들의 막말이 줄을 잇고 있다. 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의 ‘대구 봉쇄’ 발언, 공지영 작가의 코로나 창궐이 마치 이 두 곳만 한국당 단체장을 선출한 것과 관련짓는 망언, 민주당 한 청년위원의 “지금 문재인 대통령 덕분에 다른 지역은 안전하다. 대구는 어차피 미래통합당 지역이니 ‘손절’해도 된다”는 해괴한 언행, 서울교통방송 김어준의 “대구사태이자 신천지사태” 운운…, 민주당 부산시당 이모씨의 “코로나19의 위협이 대구·경북에서만 심각한 이유는 미래통합당과 광신하는 지역민들의 엄청난 무능도 큰 몫“ 등등. 사정이 이러한데도 여권 누구도 사죄하지 않는다. 대구·경북 시민을 핫바지로 보는 것인가?

중요한 것은 아직 코로나 감염이 종식된 것은 아니다. 어디로 번져갈지 모른다. 박장관의 자화자찬 직후에 ‘구로 콜센터’에서 100명 가까운 확진자가 발생한 점을 보아도 그렇다. 바이러스는 귀가 밝다. 자만의 소리가 새어나오면 그 틈새를 어김없이 파고든다. 며칠 전 TV를 함께 보던 아내가 불쑥 “울고 싶다”는 말을 해서 깜짝 놀랐다. 40년 넘도록 살면서 이런 말을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 기네스북에 올려도 될 긴 뱀의 모양을 한 줄서기. 80이 넘은 노인, 아이를 업은 어머니….

“세상에 이게 뭣꼬.”

필자의 가난했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 눈물이 핑 돌았다. 60년대 이전에는 도회지에 수돗물 공급이 잘되지 않았다. 작은 도시만 해도 동네 복판에 공동수도가 있었고, 이 물을 받아야 식수를 사용할 수 있었다. 서민들은 집집마다 먼동이 트기 무섭게 뛰어나와 양동이를 들고 줄을 서야 했다. 하루 한 양동이의 수돗물이 전부다. 길게 늘어 선 양동이 줄과 지금의 마스크 줄이 흡사하다. 가족의 생명줄인 것도 같다. 소득 300불 시대와 3만불이 넘는 시대가 같아졌다는 점에서 너무 슬프다. 우리가 아프리카 오지나라인가? 외교문제를 접하면 분통이 터진다. 일본을 입국제한하려면 감염원인 중국의 입국제한도 함께 했어야 했다. 아직도 한일관계 악화가 총선에 도움이 된다는 정치적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일까? 전 국민이 코로나우울증으로 고통에 시달리는데 자화자찬하는 정부의 경솔함과 여권성향 인사들의 막말로 민심이 달아난다. 문재인대통령이 취임선서를 다시 읽어 보기를 권한다. 자화자찬보다 더 귀한 것이 국민의 생명이고 안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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