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봄날은 간다 3
[문화칼럼] 봄날은 간다 3
  • 승인 2020.04.15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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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수성아트피아 관장
꽃들은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봄날에 피는 꽃은 대부분 연약하다. 바람만 불어도, 때로는 내리는 비에도 속절없이 져 버린다. 특히나 벚꽃은 더 그렇다. 아름답지만 잠시 왔다 금방 가버리기에 애달프다. 어쩌면 그런 마음으로 바라보니 더 아름다운지도 모르겠다. 해마다 벚꽃이 필 무렵이면 비바람이 심술을 부린다. 기억하기론 작년에는 주말마다 비가 내린 것 같다. 그래서 화사한 그 기운을 즐기지도 못하고 봄날을 보내고야 말았다. 반면에 이번 봄은 비가 너무 안 온다. 온 천지가 가물다.

꽃을 바라볼 마음도 내지 못하는 지금같이 엄혹한(?) 시절에, 오히려 봄꽃들은 보란 듯 오래 펴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저 멀리서, 스치듯 바라볼 뿐이다. 여러해 전 이른 봄날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도 꽃을 좋아하셨다. 거동이 불편해져 당신 스스로 다니기 힘들 때, 꽃을 보러 휠체어로 가까운 곳으로 모셔가곤 했다. 아름답게 만개한 꽃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표정은 반대로 쓸쓸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그 마음을 왜 모르겠는가. 그래서 이런 봄날에는 어머님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이 더 애달프다.

어머니가 나에게 남긴 유산(재물이 아니다)은 결코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당신께서 남긴 촌철살인의 말은 이제 내가 잘 써먹는다. 배움이 많지는 않았지만 살면서 깨달은 생활의 지혜와 관련된 어머니의 말들은 무릎을 탁 칠만큼 명쾌하고 유쾌하다. 그리고 경이롭다고 할 만큼의 근검절약으로 어려운 시절을 지내온 당신의 자세는 나에게 언제나 자극이 된다. 당신은 가고 없지만 그 말과 정신은 내 마음속에 살아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나마 위안이 된다. 어머니의 흔적이 내게 조금은 남아 있는 것 같아. 하지만 어머니의 손맛, 그것을 하나라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은 못내 안타깝다.

어머니의 손맛은 한마디로 ‘짭질받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짭질받다는 짭짤하다는 경상도 사투리다. 이 단어는 야무지다 그리고 거기에 맛이 꽉 들어찼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어머니의 된장찌개, 소고기 국은 이것에 딱 들어맞는 맛이다. 이제 이런 맛은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다. 내 입맛이 변한 탓일 수도 있겠지만 찾을 수 없는 그 맛은 그리움이다. 지금은 다들 건강을 위해 저염식을 선호한다. 물론 일각에서는 싱겁게 먹는 것이 오히려 건강에 해롭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가정은 싱겁게 먹는 추세이고 나 역시 내가 직접 만드는 음식은 심심하니 간을 한다. 그래서 가끔씩 어머니 손맛이 못내 생각난다.

나는 강원도 전방에서 군대 생활을 했다. 집안의 막내가 멀리 강원도까지 가서 군 생활 하는 것이 마음 아팠던지 대구에서 그 먼 곳까지 수시로(깜짝 놀랄 만큼 자주) 면회를 오곤 하셨다. 냉이가 제철인 봄날에는, 집에서 냉이랑 불고기거리를 잔뜩 해서 이고 들고 오셨다. 어머니가 오시면 함께 군 생활 하는 동기들까지 서너 명 같이 나가 냉이가 듬뿍 든 불고기를 함께 배불리 먹곤 했다. 짭조름한 양념이 일품인 그 불고기 탓인지 어머니 면회 오신 날이면 동기들은 서로 따라 나가고 싶어 했다.(딱히 불고기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어머니 손맛의 비밀은 간장, 된장이었다. 장을 담글 때면 나도 손을 많이 거든 기억이 난다. 가장 좋은 메주콩을 사오면 그 때부터 일은 시작된다. 깨끗한 물에 콩을 잘 일구어 씻어내고 큰 솥에 안쳐 삶는다. 잘 삶아낸 메주콩을 깨끗한 천으로 감싼 뒤 발로 매매(꼭꼭) 밟아 모양을 만든 뒤 새끼줄로 묶어 설겅(시렁)에 매 달아 놓으면 일차 작업이 끝난다. 잘 말린 이 메주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맛있는 간장, 된장이 된다. 발로 밟아 모양을 만들고, 메주를 매달아 놓는 일 그리고 간장을 달일 때는 나도 한 몫을 했다. 아무튼 이렇게 담아놓은 간장, 된장은 맛이 좋아 이웃에서 많이들 얻으러 오곤 했다.

마당 담벼락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큰 단지 가득 가득 담긴 간장, 된장은 마음의 풍요이며 우리의 큰 양식이었다. 머리가 좀 굵어서까지 이일을 돕던 나는 간장, 된장 담는 방법을 제대로 배워두고 싶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자리에 눕고 만 어머니는 더 이상 그런 일을 할 수 없게 되었고 나는 그 유산을 물려받지 못하고 말았다. 물론 인터넷에 장 담그는 법에 대한 정보는 넘치지만 언제나 맛있게 익어가던 어머니 장맛의 비결은 이제 알 수가 없다. 이런 단절이 어머니의 삶을 가치 없게 만드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언제나처럼 어머니에 대한 회한과 미안함 속에 또 그렇게 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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