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과 먼지
햇살과 먼지
  • 승인 2020.04.30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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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바른 집으로 이사를 했더니 참 성가시네
옷만 갈아입어도
돌아서면 부옇게 설치는 먼지
부스러진 터럭과 살비듬이
모두 내게서 떨어지고 있는 걸 까맣게 몰랐었네

썩었어, 세상이 미쳤나봐, 개탄하는
내 모든 숨구멍에서 냄새가 나는 것을
시시각각 나도 썩고 있는 것을 꿈에도 몰랐었네

햇살이 밝을수록 먼지는
함께 죽자, 함께 죽자 목매다는 시늉으로
일제히 일어나서 고자질을 하네
한낱 먼지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 나를

삼대를 적선해야 남향집에 산다지만
컴컴한 골방이 차라리 속은 편했네
그늘에 숨는다고 먼지가 없었겠나
나하나 없어진다고 세상이 달라지겠나
먼지를 고발하는 햇살의 저 부신 눈
사방으로 터진 난장에서
나를 판결하는 저 맑고 지엄한 눈
아직 망하지 않고 하루하루 지탱하는 것이 요술 같네
다 덕분인 줄은 알지만
나 자꾸만 햇살이 두렵네

◇이향아= 1938년 충남 서천 출생으로 1963년 경희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66년에 현대문학에 찻길, 가을은, 설경으로 등단을 하면서 시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서울 서대문중학교(1972), 성동여자고등학교(1976), 영등포여자고등학교(1981) 교사로 교단에 섰다. 1983년에는 본교인 경희대학교로 돌아가 강사로 활동한 뒤에 1987년 동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해설> 어쩌면 햇살에 먼지가 존재를 드러내어 우리에게 다행스러운 일이지도 모른다. 통상적으로 돌아가던 천편일률적인 일상생활에서 그동안 무신경하게 누려왔던 많은 것들을 다시 한편 돌아보고 고마워할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햇살과 먼지를 눈여겨보면서 몸과 마음을 재정립하면 우리가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는데 필요한 새로운 일들을 반드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에너지와 열정을 가지고 더 온전한 삶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을 것으로 믿어본다. -성군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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