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예찬 <禮讚>
몸의 예찬 <禮讚>
  • 승인 2020.06.15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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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윤 SQ힉스아카데미 대표, 경영학 박사
아침의 기운을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은 몸이다. 맑고 신선한 공기, 하늘로부터 내리 비치는 따뜻한 햇살, 깎깎깍 새 소리, 아침이면 집 밖의 이 모든 것이 몸으로 전해져 온다. 그리고 집안에서는 천천히 내린 한 잔의 커피가 식탁 위의 꽃향기와 함께 스며들어 내 몸 안에 좋은 기분으로 침전된다.

그런데 이렇게 매일 아침의 좋은 기운을 방해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건강이다. 건강에 따라 아침 기운은 매우 달라진다. 건강하지 못할 때, 그 기운의 효과는 급격히 떨어진다. 주위의 여러 어르신들이 청각과 시각의 기능이 떨어져서 삶의 불편을 호소하고, 미각을 잃어버려 삶이 재미없다 하소연하시기도 한다.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로 들리는 그 친구의 음성이 술에 취한 듯하여 ‘혹시 술 먹고 전화하느냐?’고 물었더니, 건강이 갑자기 나빠졌다 한다. 우리도 이제 그럴 나이가 된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건강한 몸으로 삶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몸은 오감을 통하여 세상의 찬란한 아름다움을 전해 준다. 손자뻘의 어린아이들의 존재는 그 자체가 보석과 같다. 중·고등학생들의 발랄함에 눈이 부시다. 카페에서 만나는 20대 청년들의 생기는 커피를 한잔 사주고 싶을 만큼 싱싱하다. 반가운 친구들과의 악수, 아내와의 스킨십은 얼마나 포근한 것인가? 평생을 인간의 영혼에만 관심을 가졌던 내가 이제는 인간의 몸을 예찬할 때가 많아졌다.

코로나19로 인하여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이제는 습관적으로 어디가든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닌다. 그런데 거리에서 혹은 모임 장소에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도 친구들이나 지인들은 서로를 쉽게 알아보고 인사를 주고받는다. 어? 자네, 여기 무슨 일인가? 반갑구먼, 반가와. 코로나19로 인하여 자주 만나지 못했던 한 친구는 텔레비전에서 본 듯한 코믹한 인사를 흉내 내어 반가움을 표시하기도 한다.

심지어 어린 시절의 친구를 수십 년 만에 우연히 만나게 되면 서로를 조심스럽게 확인하고 반갑게 포옹하며 인사한다. 야, 하나도 변하지 않았네. 옛날 그대로이네. 그렇게 반갑게 인사하지만 우리는 사실 옛날 그대로가 아니다. 머리는 희어졌고 피부에는 주름이 생겼고, 걸음은 엉기적거리기도 할 만큼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좀 늙어 보이긴 하지만 인간의 몸은 다른 사람과 서로를 구분해 주는 중요한 증빙 수단이다. 이 몸에 내 이름을 붙이고 나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키가 좀 크거나 작은 것, 얼굴이 좀 잘 생기거나 못 생긴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 모든 다름은 나와 다른 사람들을 구별해 주고 나의 고유성을 확보해 주는 중요한 증빙이 된다. 그렇게 ‘몸’은 이 시대 전 세계, 70억 명 이상의 사람들과 나를 구별하여 나의 고유성을 확보해 준다.

아침에 옷장에 걸린 여러 옷 중에서 오늘 아침에 가장 마음에 드는 옷을 신중히 고른다. 그리고 그것을 몸에 걸치고 나름대로 폼을 내고 집을 나선다. 그것은 지구상의 70억 명의 다른 사람들과 나를 구별시켜주는 내 몸에게 대한 내 나름의 예우이기도 한다.

점심때가 되어 지인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 고맙게도 최근 급격하게 달라진 나의 몸에 대한 인식을 간파한 지인이 정성스럽게 차려주는 밥상을 마주하는 호사를 누린다. 식사 전에 감사기도를 한다. 매번 해 온 감사기도이지만 최근에는 그 기도가 형식적이지 않고 제법 진지해졌다. 밥상에 올라온 소와 돼지 등의 동물들과 벼와 콩 등의 식물들이 우리 한 끼 식사를 위해 죽음으로 희생해 주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밥상의 음식 하나하나를 이제 너무 게걸스럽게 먹지 않도록 주의한다. 천천히 그 맛을 음미하며 입 안에 감도는 맛과 식감을 느껴본다. 몸보다 영혼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쳐 온 내가 이렇게 영혼만큼이나 몸이 중요하다고 여기게 되다니 지인들은 살짝 놀라운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내게 일어난 이 변화를 숨길 이유는 전혀 없다.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어느 듯 나의 몸도 활동을 멈추게 될 것이다. 연로하신 모친이 먼저 그 길을 갈 것이고 나도 곧 그 뒤를 따르게 될 것이다. 죽음은 삶의 종말이 아니라 몸이 가진 한계와 유한을 뛰어 넘는 초월적 삶의 의지일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언제가 내 몸이 겪게 될 그 죽음을 준비한다. 그 죽음은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될 것이다. 그 설렘을 경험할 몸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따뜻한 격려를 보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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