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거미줄’로 노벨물리학상을 포획하다
‘학문의 거미줄’로 노벨물리학상을 포획하다
  • 김종현
  • 승인 2020.06.17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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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노벨상을 품자 - (19) 노벨물리학상 사냥의 학제간 학문
헝가리 공학자 ‘유진 폴 위그너’
막스 플랑크·아인슈타인 등
수많은 학자들과 학문적 교류
‘원자핵 응용’ 1963년 노벨상
노벨상-거미줄
 

◇ 노벨상 수상은 학문의 거미줄로 공동 포획프로젝트

1963년, 헝가리 태생의 미국 수학자이자 공학자이며 물리학자인 유진 폴 위그너(Eugene Paul Wigner, 1902~1995)는 “원자핵과 기본입자에 관한 이론 및 기본 대칭 응용에 대한 발견의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는 헝가리 부다페스트(Budapest, Austria-Hungary)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1914년에 파소리 루터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20년 부다페스트 기술과학대학(Budapest University of Technical Sciences)에 입학했으나 학업이 즐겁지 않다며 1921년 베를린공과대학(Technische Hochschule Berlin)에 입학해 오전에는 학습하고 오후에는 독일물리학회(German Physical Society)에 참석해 토론을 즐겼다.

이때 막스 플랑크(Max Planck, 1858~1974), 막스 폰 라우에(Max von Laue, 1879~1960), 루돌프 라덴부르그((Rudolf Ladenburg, 1882~1952), 1932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 1901~1976), 월터 네른스트(Walther Nernst, 1864~1941), 1945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볼프강 파울리(Wolfgang Pauli, 1900~1958) 및 1921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 등과 학문적 교류를 했다. 이후 마이클 폴라니(Michael Polanyi, 1891~1976) 교수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베를린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Kaiser Wilhelm Institute in Berlin)에서 카를 바이센베르크(Karl Weissenberg, 1893~1976)와 리처드 벡커(Richard Becker)의 조수로 일하며 연구했으며, 괴팅겐 대학교에서 수학자 다비드 힐베르트(David Hilbert, 1862~1943)와 연구를 했다. 수학자 헤르만 바일(Hermann Weyl, 1885~1955)과 공동으로 물리학에서 집단 이론(group theory)을 도입해 접목했다. 1928년 모교 베를린공과대학(Technische Hochschule Berlin) 강사를 지냈으며, 1930년 도미해 프린스턴대학교(Princeton University) 강사를, 1938년부터 1971년까지 프린스턴대학교(Princeton University) 이론물리학 교수를 역임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땐 시카고대학교 야금 연구소(Institute of Metallurgy, University of Chicago)에서 엔리코 페르미(Enrico Fermi, 1901~1954) 등과 1939년 8월 2일 원자폭탄 제조 연구단(Manhattan Project) 참여와 원자로 건설에 몰두했다.

◇ 노벨물리학상, ‘기획된 우연’의 결실

1965년, 일본 물리학자 도모나가 신이치로(Sin Itiro Tomonaga, 1906~1979)는“기본입자물리학에 심오한 탐구 결과로 양자전기역학의 기반을 정립한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는 일본 도쿄부 도쿄시 고이시카와구(東京府, 東京市, 小石川區)에서 태어났으며 몸이 허약했다. 교토 제1중학교(京都一中)와 제3 고등학교(第三高等學校)를 졸업하고, 1913년 아버지(朝永 三十)가 교토제국 대학교 교수로 취임하여 교토로 이사했다. 1926년 교토제국 대학(Kyoto Imperial University, Japan)에 입학해서 1931년에 졸업했다. 니시나 그룹( Nishina‘s group)의 이화학연구소(理化學硏究所, RIKEN)에서 연구 생활을 하다가, 1937년에 첨단 물리학을 배우고자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Leipzig University)에서 1932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 1901~1976) 교수와 2년간 연구를 하고 1939년에 돌아왔다. 이후 동경제국 대학(Imperial University of Tokyo)에 독일에서 했던 핵물질 연구에 관한 논문을 제출했다. 1938년 일본 최초로 원자핵 연구와 인공 파괴 활용을 위한 사이클로트론(cyclotron) 제작했던 니시나 요시오(仁科芳雄, にしなよしお, 1890~1951) 교수의 지도 아래 “핵물질의 내부마찰과 열전도도”학위논문으로 1939년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41년 도쿄 문리과 대학교(이 대학을 기반으로 쓰쿠바 대학 설립) 물리학 교수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마크네트론, 중간자 이론 및 슈퍼 타임 이론(超多時間理論)에 매달렸고, 1940년 프린스턴대학교 고등 연구소(Institute for Advanced Study, Princeton University) 로버트 오펜하이머(Robert Oppenheimer, 1904~1967)의 초청으로 “양자역학적 시스템의 집단진동(collective oscillations)”에 관한 연구를 했다. 1942년 토모나가-루팅거(Tomonaga-Luttinger)라고 불리는 액체 운동을 발견했으며 1955년 도쿄 핵 연구소(Institute for Nuclear Study, Tokyo University)를 설립해 연구를 추진했다.

◇ 마법의 돌(magic stone) 반도체가 발명되기까지

1956년 수상자는 오늘날 지식정보화 세계를 개막하게 한 황금열쇠인 반도체를 발명한 영국 출생 미국 물리학자 윌리엄 브래드퍼드 쇼클리(William Bradford Shockley, 1910~1989)로 “반도체에 대한 연구와 트랜지스터 효과 발견”에 대한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1940년대 “고양이 수염(cat’s whisker)”이라고 했던 전파탐지기와 라디오 다이오드(diode), 1947년 라디오 트랜지스터(transistor), 1950년 집적회로(integrated circuit)가 발명됨으로써 오늘날 우리에게 컴퓨터 하드디스크(hard disk), 메모리(memory), 신용카드의 아이 씨 칩(integrated circuit chip), LED(light emitting diode) 등이 연차적으로 발명되었다. 우리는 너무 흔해 반도체(semiconductor)라는 용어조차 잊고 있다. “국속에 빠져 있는 국자가 오히려 국 맛을 모른다. 아무리 오랫동안 가까이 있다고 해도 오히려 참된 모습을 알지 못한다(愚人盡形壽, 承事明知人. 亦不知眞法, 如杓斟酌食)”라는 법구경 구절이 연상된다.

반도체 발견은 1821년 독일의 물리학자 요한 제베크(Thomas Johann Seebeck, 1779~1831)에 의해 최초 발견되었고, 1833년 영국의 화학자이며 물리학자인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에 의해 황화은 시료를 가열하면 저항이 감소한다는 도핑(doping) 기법이 발견되었다. 1839년에 알렉산더 베크렐(Alexandre Edmond Becquerel, 1820~1891)은 고체와 액체의 전해질 전압(광전지 효과)을 찾아내었다. 1873년 윌러프비 스미스(Willoughby Smith, 1828~1891)는 셀레늄 광전도성을 발견하고 광전지를 발명했다. 1878년 에드윈 홀(Edwin Herbert Hal, 1855~1938)의 홀효과(Hall effect), 1897년 조지프 존 톰슨(Joseph John Thomson, 1856~1940)의 고체 전도 이론 등으로 지속적인 연구와 발명이 이어졌다. 이런 선행연구가 반도체라는 결과물을 낳았다.

윌리엄 브래드퍼드 쇼클리(William Bradford Shockley, 1910~1989)는 영국 런던(Greater London, England)에 태어나 3살 때에 광산 기사인 아버지를 따라 도미해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매사추세츠공과대학으로 진학해, 1936년 존 클라크 슬레이터(John Clarke Slater, 1900~1976) 교수의 지도로 “염화나트륨 결정에서 전자 파동함수의 계산(Calculation of Electron Wave Functions in Sodium Chloride Crystals)”학위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36년 해군에 입대해 벨연구소(Bell Laboratory)에 파견되었고, 데이비슨(C. J. Davidson)의 연구단에 참여했다. 그의 주요 연구는 고체의 에너지띠, 합금의 질서와 무질서(order & disorder in alloy), 진공관의 이론(theory of vacuum tubes), 구리의 자기확산(Self-Diffusion of Copper), 전위의 이론, 강자성체의 자기구역, 염화 은의 광전자 등에 관해 연구했다. 특히 p-n 접합형 트랜지스터(p-n junction transistor)를 발명해 반도체 물리학에 기여했다. 생산성에 대해서는 작전 연구(OR)를 했으며, 베크만(Beckman Instruments) 회사의 반도체연구소(Shockley Semiconductor Laboratory)의 소장을 역임했으며, 스탠퍼드대학교(Stanford University) 교수를 지냈다.

그의 인생에 있어 1947년 12월은 벨연구소에서 그의 아이디어로 바딘과 브래튼이 공동연구로 점 접합 트랜지스터(point-contact transistor)를 발명했던 ‘기적의 달(Miracle Month)’이었다. 그리고 특허를 자신의 이름으로 등록했다. 1951년 7월 5일 접합 트랜지스터(Bipolar Junction Transistor, BJT)를 발명하고 존 바딘(John Bardeen, 1908~1991)과 월터 브래튼(Walter Houser Brattain, 1902~1987)의 공적으로 돌렸으나 결국 그들의 따돌림으로 1953년 벨연구소를 사직하고 캘리포니아공과대학(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으로 돌아왔다. 1955년 베크만(Beckman Instruments) 회사에 취직하고,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Shockley Semiconductor Laboratory)를 설치했다. “독재적 지배와 심해지는 편집증(dictatorial domination and worsening paranoia)”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그의 특허로는 1950년 ‘반도체 증폭기(Semiconductor Amplifier)’, 1951년‘반도체 재료를 이용한 회로소자(Circuit element utilizing semi conductive material)’, 1953년‘쌍안정회로(Bistable Circuits)’, 1957년‘불순물 주입을 위한 확산 공정(The diffusion process for implantation of impurities)’, 1962년‘단결정 성장 과정(Process for Growing Single Crystals)’, 1962년‘성장 실리콘 카바이드 결정의 방법(Method of Growing Silicon Carbide Crystals)’ 등이 있었다.

글·그림=이대영<코리아미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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