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내내 아내는 집 앞 텃밭을 일구었다.
쇠스랑, 괭이 만을 가지고 할매 주름살같은 고랑
열댓개를 만들었다.
양발로 비닐을 밟고 괭이로 흙을 끌어
그 긴 고랑에 멀칭을 혼자서 다했다.
괭이질하고 고추모종 심으며 아내는 뭘 생각했을까?
안락했던 도시의 옛 생활을 그리워했을까?
아니지 태양초 100근 만들어 보험료 내겠다고
농담처럼 내 뱉은 말이 현실이 다 된 것 같아
속으로는 즐거웁겠지.
아내는 감자를 지 새끼처럼 생각한다.
비닐 멀칭 안으로 감자순 뻗은 걸 털어 내며
‘에고, 요놈 자슥’을 혼잣말로 연신 읊어댄다.
지 발길 제대로 짚지 못하고 갓 돌 지나
비틀비틀 걸음마하던 지 새끼 보듯해서 고런 말 했겠지.
20년 농사지었다는 엉터리 농부 아저씨는
말끝마다 ‘벼 이삭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 한다.
그런데 왜 맨날 트랙터만 몰고 다니나.
2년 째 농사짓고 있는 내 아내는 그런 말 할 줄 모른다.
하지만 감자싹도 고추모종도 죄다 지 새끼들이다.
벙거지 모자 덮어쓰고 텃밭 고랑에 쪼그려 앉아
오늘도 내내 ‘에고, 요놈 자슥’을 연발하는
아내의 뒷모습에서 나는 문득 부처를 보았다.
◇김연창= 1964년 경북 상주 출생. 시인 및 생태운동가, 초암논술아카데미 대표역임. 경남 함양 녹색대학 교수역임. 낙동강문학 심사위원.
<해설> 인간은 무작위(無作爲)의 일상을 살아야 하지만, 어느 순간에도 중심을 잃지 않고 두려움으로 위축되지만 않는다면 감당하지 못할 문제가 없다.
그 찰나적으로 흐르는 삶의 순간순간에도 인간은 영원성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으로 우리의 눈빛을 꺼뜨리는 무의미 속에서도 영원성을 담은 의미의 빛을 찾아야 한다.
나비는 애벌레를 거쳐 고치집을 빠져나오는 시간이 필요하다.
변화는 고통을 의미하지만 봉오리 속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더 고통스럽다.
어둠 같고 길 없는 길 같아도 우리 삶에서 기다리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 송이 피어난 꽃으로 피어나는 신비의 아름다움에서 우리의 가능성을 찾는다.
자연이 일깨워 주는 가장 큰 것은 바로 기다림과 인내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름다운 수고로 변화는 있으되 변함은 없어야 할 그 무엇(본질)을 찾아 작게는 내가 변하고, 크게는 세상을 변화 시키는 동력을 만들어 가는 인생의 여로를 일구어야 한다.
삶의 의미란 저 높이 있고, 많은 돈에서 나오고, 많이 배우고, 권력과 힘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소한 곳에서, 작고 조용한 곳에서도 얼마든지 샘솟는다.
살아있다는 것을 먼 데서 찾을 필요 없다.
지금 행하는 모든 일이 다 삶의 의미이고 행복임을 알고 느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이 제일 행복함을 알아차려야 한다.
새로운 에너지는 자신의 내면에서 생성된 평안의 힘으로 만들어진다.
-성군경(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