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편리한 대로 억지로 끌어 붙여 유리하게 한다(편복구실)
자기 편리한 대로 억지로 끌어 붙여 유리하게 한다(편복구실)
  • 승인 2020.07.02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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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대경예임회 회장·전 중리초등학교 교장
며칠 전 경주 양남에 가서 초등학교를 다니는 2학년 손자의 방에 들어갔다. 책꽂이에 교과서와 함께 ‘국어교과서도 탐내는 맛있는 우리말’이라는 책이 꽂혀있었다. 책장을 펼치다가 ‘박쥐구실’을 읽어 보았다. 이 글은 숙종 때 홍만종이 열흘 만에 썼다는 순오지(旬五志)에 나오는 글이다.

박쥐는 한자로는 ‘편복’이다. ‘구실(口實)’은 핑계할 밑천이나 변명할 거리이다. 즉 핑계를 삼을만한 재료들이라는 뜻이다. 읽으면서도 ‘박쥐구실’보다는 ‘박쥐의 변명’이 아이들에겐 이해하기에 더 좋을듯하였다.

새들의 우두머리인 봉황이 잔치를 열었다. 박쥐는 참석하지 않았다. 뭇 새들이 “박쥐야 왜 참석하지 않았니?”하고 물었다. 박쥐는 날개를 접어 땅바닥에 대고 걸으면서 “아, 나는 엄연히 네발 달린 짐승이다. 내가 왜 참석해!”하였다.

키가 큰 기린의 생일잔치가 열렸다. 박쥐는 참석하지 않았다. 짐승들이 모두 박쥐에게 참석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박쥐는 의기양양하게 어깨 날개를 들썩이며 “나는 이렇게 날개가 있잖아. 내가 그 잔치에 왜 가니?”하였다. 박쥐는 돌아가는 상황에 따라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편복구실’은 ‘자기 편리한 대로 억지로 끌어 붙여 유리하게 한다.’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박쥐는 날짐승들과 길짐승들 모두에게 미움을 받았다.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었다. 결국 갈 곳이라고는 어두컴컴한 동굴밖에 없었다. 낮에는 동굴에서 꼼짝 못하고 밤에만 바깥으로 나오게 되었다. ‘편복구실’은 줏대 없이 흔들리는 사람들을 빗대어 이르는 속담이기도 하다.

서거정은 ‘쥐 몸에 새의 날개로 그 형상이 기괴하다. 낮 아닌 밤에만 나다니니 그 발자취가 음침하고 흐릿하고 멍청하구나.’라고 박쥐를 평하였다.

저녁 뉴스(6월 29일)에서 21대 국회는 거대 여당이 ‘상임위원장’을 모두 독식했다고 한다. 여야의 협상이 어쩐지 불안 불안하더니 ‘결국 협치가 이루어지지 못하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회의원들의 활동이 ‘박쥐구실’인듯하다. 국회의원을 다르게는 ‘선량(選良)’이라고도 일컫는다. 선량(選良)은 뛰어난 인물로 뽑힌 사람들이다. 국민들로부터 선출된 사람들이다. 헌법과 국회법에 ‘국회의원은 양심(良心)에 따라~’라는 조항이 여러 곳에 나온다. 천자문에도 ‘남효재량(男效才良)’이라는 말이 있다. ‘남자는 재능을 닦고 어진 것을 본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 ‘어질 량(良)’은 곡식의 여러 종류 중에서 특히 좋은 것만을 골라내기 위한 기구의 모양을 본떠 만든 글자이다. 그래서 ‘좋다. 훌륭하다. 어질다. 아름답다. 곧다. 착하다. 길하다.’는 의미를 가졌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양심(良心)을 마음속의 삼각형이라 하였다. 그들은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 짓을 하면 삼각형이 돌아가며 마음을 아프게 한다고 믿었다. 가책 없는 양심(良心)을 계속 돌리면 모서리가 무디어져서 나중엔 아픔을 느끼지 않게 된다고 하였다. 그들에게 양심은 도덕적인 의무이기도 하였다. 선량(選良)들이 마음에 새겨 둘만한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가 양심이리라.

초등학교 저학년에서는 학년이 바뀌면 반드시 서열다툼이 일어난다. 그 와중에 따돌림 당하는 아이가 나온다. 그 아이는 ‘미운 오리새끼’처럼 된다. 학교 가기 싫어지고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아이들의 발달 단계가 그렇다. 순위가 정해지면 학급 분위기는 잠잠해진다. 동물적 본능인 서열다툼은 고학년이 되면서 아이들은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돌아가는 상황에 따라서 처신하게 되고 휩쓸리는 방법도 차이를 보인다. ‘편복구실(??口實)’을 하는 것이다. 집단 따돌림이 되고 피해자가 생긴다. 가끔 청소년들이 숨어 지내며 두려움에 떠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성인들의 서열다툼은 부의 축척에 있다. 재산이 많으면 만사형통으로 생각한다. 선량(選良)들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그기에 명예욕이 더해진다. 어떻든 21대 국회의원들은 ‘자기 편리한 대로 억지로 끌어 붙여 유리하게 하려고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도 ‘박쥐구실’을 읽고 있다.

‘박쥐가 스스로를 보지 못하고, 들보 위에 있는 제비를 비웃는다.’는 속담이 있다. 자기의 못남은 모르고, 남의 추함만 비웃음을 은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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