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손님맞이
[문화칼럼] 손님맞이
  • 승인 2020.07.22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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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대구문화예술회관장
매년 여름 휴가철이 시작되면 피서지에서 읽을 만한 책이 소개 된다. 정치인·재계 총수들 그리고 해외 저명인사가 휴가지에서 함께할 책을 선택 하면 그것으로 베스트셀러가 만들어 지기도 한다. 신문 지상에 소개되는 이런 책들은 왠지 읽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이것과는 다른 이유로 이번 여름에 읽을 책을 골랐다. 피서를 위한 것이 아니라 손님을 맞기 위한 최소한의 도리라는 생각에 고른 책이다. 이번 8월에 열릴 ‘DAC인문학 극장’ 강연자로 모신 세분의 작품들이다. 손님으로 모신 이상 최소한 그분들의 글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오신 진객들과 한 두 마디 얘기라도 나누려면 그렇게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소설가 김애란, 시인 이병률 그리고 철학자 최진석 이렇게 세분이 이번 여름에 문화예술회관을 방문한다. 최진석 교수는 여러 매체를 통하여 익히 아는(서로가 아니라 나만---) 분이지만 두 젊은 문인은 생소했다. 나의 독서 이력이 매우 얕은지라 국내 작가는 신경숙에서 멈춰있다. 고전도 읽을 것이 너무 많아 떠오르는 작가들까지 쳐다볼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설레는 마음으로 이병률의 여행 산문집 ‘내 옆에 있는 사람,’ 김애란의 소설 ‘바깥은 여름’을 구입했다.

최진석 교수의 글은 신문 기고를 통하여 접한 정도 였는데 이번 기회에 ‘경계에 흐르다.’와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함께 주문했다. 그리고 또 하나 최진석 교수가 최근 설립한 사단법인 ‘새말 새 몸짓’을 통하여 펼치는 한 달에 한권읽기. 그 첫 순서인 칠월의 책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까지 손에 넣었다. 돈키호테를 받아보곤 깜짝. 엄청 두꺼운 두 권의 책. 한 달에 한권 읽기라 했는데 반칙?^^ 이것을 이분들 만나기 전에 다 읽을 수 있을지 우려도 되지만, 호젓한 여행지에서 책을 펼치는 듯한 기분으로 읽어 나간다.

내가 몰라서 그렇지 이병률은 대단한 인기 작가였다. 그가 시인이긴 하지만 이미 몇 권의 여행 산문집을 펴낸지라 그 중 한 권을 골랐다. 두 세 페이지 짧은 글 마다 붙여 놓은 제목을 회화적으로 배치해 놓은 여행 산문집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명승고적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은 그 자체로 기적이에요.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마음 안에 그 한사람을 들여 놓는 다는 것은 더 기적이지요.” “가능하면 사람 안에서, 사람 틈에서 살려고 합니다. 사람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닐 것 같아서지요.”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한 그의 작품은 작은 이해관계에 민감한 나 같은 사람에게는 반성의 시간을 갖게 한다. 베트남 에서온 청년‘지오’의 결혼식에 갔는지 궁금하지만 지오가 보내온 편지에 “새삼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마음을 나누고 음식을 나누고 했던 것이 이토록 저릿한 일이구나 싶기도 했다.”는 대목에서는 그의 따뜻하고 넓은 마음 품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의 길을 만들기 위해 사람과 사람이 만나 술을 마신다는 그는 “이 술을 마시면 나같이 못난 사람의 마음도 전할 수 있다는 착각이 들어 그 착각의 힘으로 그 술을 마시는 것이다.” 사랑과 여행에 대해서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도 여행도 하고 나면 서투르게나마 내가 누구인지 보인다는 것이다. 이 둘이 닮은 또 하나는 사랑이 끝나고 나면 여행이 끝나고 나면 다음번엔 정말 제대로 잘하고 싶어진다는 것. 그것이다.” 표현이 잔잔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끈다. 그의 글은 좋은 사람과 한잔 술을 나누고 싶고 혼자 길을 나서고 싶게 한다.

“사람이 먼 길을 떠나는 건 ‘도달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보겠다는 작은 의지와 연결되어 있어 일상에서는 절대로 만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저기 어느 한 켠에 있을 거라고 믿거든” 여행의 단면을 잘 표현한 이 말을 듣고 길을 떠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낯선 것과 신비감은 동일시된다. 여행길에서는 모든 것이 신비롭게 보인다. 하지만 그 환상이 깨지는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도 않는다. 그러나 여행의 진정한 매력은 일상에 복귀하고 난 뒤다. 환상은 깨졌지만 신비로운 여운은 꽤 오래간다. 이렇게 간소하게나마 시인 이병률을 맞이할 준비를 했고 이제 김애란과 최진석을 영접할 준비를 하고 있다. 김애란의 글은 이병률의 느낌과는 매우 다르다. 최진석 교수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그의 글을 먼저 읽을까? 아니면 돈키호테를? 즐거운 고민이다. 새말 새 몸짓 운동도 궁금한 나로서는 돈키호테를 먼저 읽어야 할 듯도 싶다. 아무튼 미지의 책장을 하나씩 넘기는 것과 낯선 여행지를 찾는 것이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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