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를 어루만지면 상객으로 생각하라(撫額上客)
이마를 어루만지면 상객으로 생각하라(撫額上客)
  • 승인 2020.08.13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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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대구예임회 회장
전 중리초등학교 교장
지난 수요일 대경예임회에서 지리산 뱀사골을 탐방했다. 코로나19로 6개월 만에 이루어지는 첫모임이자 산행탐방 행사였다. 유난히 길었던 장마로 뱀사골 계곡의 물은 폭포를 이루며 흘렀다. 물은 맑고 깨끗했다. 잘 다듬어진 탐방로로 접어드니 아름다운 여러 종류의 수목들과 풀들이 있었다. 그 중 노각나무가 무늬에 윤기를 내고 신비한 모습으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여러 사람들과 쉬엄쉬엄 걷다가 보니 와운마을 뒷산의 천년송(千年松) 앞에 도착하였다. 일명 할매소나무로 불리는 이 천년송은 약 500년이 넘는 수령으로 천연기념물 424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금 떨어진 거리에 한아시(할배소나무)로 불리는 소나무와 함께 있다. 우산을 펼친듯한 수형의 두 소나무는 반송으로 매우 아름다웠다. 마침 비가 내려 동네 수호신으로 받들어지는 두 소나무가 ‘누운 구름마을(와운리)’에 살포시 엷게 가리어져 더욱 운치를 자아냈다. 한 폭의 동양화이며, 비 내리는 날의 수채화였다. ‘이무기가 죽은 골짜기’라는 뱀사골 전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멋진 골짜기였다. 일행은 ‘뱀사골’이라는 이름 때문에 탐방을 시답잖게 생각하였었다. 더러는 ‘천년송 보러간다고 하였으면 더 많은 회원이 참석하였을 텐데….’하고 아쉬워하였다. 안내나 알림은 일종의 신호(암호)이다. 그것에 따라 일은 추진된다.

대구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다음 행선지를 기장의 ‘아홉산숲’으로 안내하였다. 이 숲은 아홉산(361m) 자락에 한 집안에서 400년 가까이 가꾸고 지켜온 숲이다. 차 뒤쪽에서 회원 한 분이 살짝 손을 들고 ‘다섯 손가락을 펼쳤다 오므렸다.’하였다. 이것은 분명 신호이고 의미가 있을듯하다. 그 산은 개인의 숲이기 때문에 입장료가 5,000원 있다는 신호일 게다. ‘이심전심’의 매우 유익한 정보이다. 눈치 채지 않게 도움을 받는 입장에선 고마운 일이다.

필자의 교사 시절에는 아이들과 약속이 많았다. 손바닥을 펼치고 손을 들면 교사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고, 주먹을 쥐고 들면 학생의 질문이다. 학부모 참관 수업 때는 모든 학생이 무조건 손을 들게 한다. 교사의 지명은 손바닥과 손등을 보고 가려서 한다. 약속된 신호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신있게 대답하고 참관 학부모들은 모두 만족해했다. 체육시간엔 호루라기와 수신호를 많이 사용했다. 신호가 유독 많은 것은 ‘보이·걸스카우트’의 단체 활동이었다. 모든 신호는 너와 나와의 약속이고 암호이다.

어떤 암호엔 비유가 풍유적으로 들어있다. 홍만종의 순호지에 나오는 ‘무액암호(撫額暗號)’가 그렇다. ‘무액(撫額)’은 ‘이마를 어루만진다.’는 뜻이다. ‘무액상객(撫額上客)’은 ‘이마를 어루만지면 상객으로 생각하라.’는 신호이다.

한 고을에 성격이 괴팍하고 비루하고 인색한 원님이 있었다. 하루는 아전을 불러 미리 약속을 하였다. “손님이 오면 아전은 내가 어디를 어루만지는지 보아라. 이마를 어루만지면 상객으로 생각하라(撫額上客). 내가 코를 어루만지면 중객으로 생각하고, 수염을 어루만지면 하객으로 생각하라.”하고 일렀다. 이렇게 함으로써 음식 접대를 풍성하게 하거나 아주 하찮게 하였다.

어느 날 무액암호를 아는 나그네가 원님을 찾아왔다. 방안에 들어선 나그네는 원님과 맞절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곤 아주 천천히 허리를 펴면서 원님의 이마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나그네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원님 이마위에 조그마한 벌레가 있습니다.”하고 말했다. 그러자 원님은 즉시 손으로 이마를 만졌다.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본 아전은 그 나그네를 상객으로 생각하였다. 부랴부랴 음식을 진수성찬으로 차려서 성대하게 대접하였다.

아주 통쾌한 이야기였다. 홍만종은 ‘내가 잔꾀를 부려 다른 사람을 대하면, 그 사람도 머리를 써서 나를 속일 것이다. 그러니 남을 대하는 데 정성을 다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하였다.

마침 TV뉴스에서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들이 일괄 사표를 냈다고 한다. 대통령과 참모들과의 ‘주택정책’에 대한 암호(?)들이 맞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혹시 잔꾀를 부린 것, 서로를 속인 것, 정성을 덜한 것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이마를 어루만지면 상객으로 생각하라.’는 암호는 반전의 이야기이다. 돌이켜 반성하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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