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먹먹한 하루
가슴 먹먹한 하루
  • 승인 2020.08.20 21:2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현숙 리스토리 결혼 정보 대표 교육학 박사
여성들이 사회진출을 하고 경제적으로 독립하면서 나홀로 라이프를 꿈꾸는 비혼족들이 늘고 있다. 대중의 관심을 받는 연에인들이 공식적으로 비혼을 선포하면서 비혼은 우리 사회의 새로운 문화로 정착되어가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 결혼을 하려는 남성들의 요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결혼을 원하는 여성들의 수요가 줄다보니 결혼은 현실적으로 더 어렵다. 초딩 여학생들도 장래의 꿈을 물으면 결혼하지 않고 미래에 큰 저택에 예쁜 강아지 한 마리 키우며 살거라고 한다하니 어이가 없다.

2~3년 전부터 삼십대 중반의 아들을 둔 아버지가 자식의 결혼 문제로 상담을 해왔다. 아들은 모범생이고, 대학원까지 졸업했다. 부모님이 물려준 재산이 수십 억 원에 이르고 자영업을 하는 성실한 청년이다. 그런데 아뿔사 키가 작아도 너무 작았다. 소개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 회원 가입을 받을 수가 없었다. 예전에는 경제적 조건이 결혼의 우선순위가 된 시절도 있었다. 미스코리아 뺨치는 친구들이 중매결혼으로 키 작고 못생긴 돈 많은 부자에게 시집 간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별탈없이 잘 사는 친구도 있고, 그 중에는 어찌어찌 하여 헤어졌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현대 여성들은 경제적 조건과 안정된 직장은 기본이고 큰 키에 외모·성격·매너까지 다 본다. 공부만 하고 연애 초년생인 모범생들은 여성에게 인기가 없다. 여자는 비오는 날 우산을 받쳐주며 다정다감하게 데이트를 할 줄 아는 감성적인 남자를 좋아하고, 첫눈이 내리면 붉은 장미 한다발을 안고 그녀의 집 골목에서 불쑥 나타나 사랑고백을 하는 로맨티스트를 좋아한다. 연애경험이 없고, 키도 작고, 숫기도 없는 그 청년이 본인도 혼기가 차니 답답한지 국제결혼이라도 하고 싶다고 했다.

코로나19로 해외를 나갈 수가 없어서 부득이하게 한국에 있는 외국여성 유학생과의 맞선을 주선했다. 유학생들은 다들 눈이 높다. 그녀들은 나름 재원이고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꿈이 있는 여성들이다.

한국에 있는 여성들이라 그런지 세련되고 당당했다. 10년 전만 해도 가난 때문에 나이차이·외모·키 등에 아랑곳 하지 않고 동남아시아 여성들이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으로 시집 왔다. 지금은 그들도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한국 남자를 선택하지 않는다. “돈, 중요하지 않아요, 사랑이 느껴져야 돼요” 그녀들도 어설픈 한국어로 자신의 감정을 이렇게 표현한다.

베트남 유학생들도 이 총각이 키가 작다는 이유로 대부분 맞선을 거절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인지 맞선에 동의한 아가씨 역시 키가 아주 작은 여성이었다. 커피숍에서 만난 두 사람은 오랜 연인처럼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통역이 필요 없었다. 한국어와 영어가 유창하고 센스가 있는 귀여운 아가씨였다. 만약에 직장을 그만두는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 총각의 질문에 아가씨는 상관없다며 자신이 일하면 된다고 답했다 한다. 총각은 그녀의 말에 감동을 받았다. 그런데 난감한 일이 발생했다.

총각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혔다. 어머니 본인과 아들이 키가 작아서 살아오면서 무시를 당했는데, 손자손녀들까지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고 강하게 거부했다. 아들이 한번만 만나보고 결정하시라고 사정해도 서로가 만나지 말아야 될 인연은 상처만 남길 뿐이라고 완강하게 거절했다.

총각의 부모님도 타인의 시선이나 선입견적인 잣대보다 내 자식의 행복이 우선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아들이 원하고 좋아하는 여성이 나타났지만, 모자는 세상을 살아오면서 ‘편견에 의한 루저’의 아픈 상처가 너무 많았다. 제3자가 모르는 그들만의 슬픔이었다. 사랑으로서 극복하라는 나의 어드바이스가 영혼 없는 언어로 느껴진 순간이었다. 외모지향주의적 가치로 사람을 차별하고 무시하는 이 사회의 익숙한 문화를 누가 감히 잘못됐다고 지적할 수 있을까? 가슴이 먹먹한 하루였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