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와 가중치
삶의 무게와 가중치
  • 승인 2020.08.2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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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복 영진전문대학교 명예교수, 지방자치연구소장
대구 삼덕동, 다이제스트 강의로 이름 날렸던 전 경북대 K교수의 집이 있었다. 적산 가옥은 손댄 곳이 없는 일본 집 그대로였다. 대학생, 외국 유학준비생들이 오리지널 다이제스트 공부를 위해 늘 만원이었다. 퇴근 후 곧 바로 달려가 일본식 다다미방에 쪼그리고 앉아 2년 여 년 간 학습한 일이 있다. K교수에게 받은 감명 중 하나는 학문을 끝까지 파고드는 선비정신이다. 다이제스트 해석이 애매하면 그때 중앙통에 있던 미 공보원에 가서 확인하고 가르치는 열성을 보였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자기 학문에 대한 열정과 학자로서의 양심을 읽을 수 있었다. 수강생은 늘 넘쳤고 수입금으로 장학생을 키운다는 말을 들었다.

어느 날 강의 시간에 “비싼 소고기를 먹을 이유가 없다. 영양은 닭고기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한 닭고기 예찬론이 떠오른다. K교수가 신사복 정장을 한 것을 본 적이 없다. 검정 고무신을 신고 경북대까지 걸어 출근하고 있었다. 좀 이른 연세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꽤 많다. 영문학자로 대구의 기인으로 이름을 남긴 K교수의 삶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사람은 각기 사는 법이 다르다. 목표를 정하든 않든 나름의 가치를 창조해 나간다. 연세대 K명예교수는 100세 시대의 아이콘이다. 어렸을 때 잔병치레를 많이 했다고 하는데도 말이다. 인명의 길고 짧음은 사람 몫이 아닌 것 같다. 그 나이에도 강의 요청이 밀리고 원고 청탁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그의 능력이요 축복이다.

그의 칼럼은 경험철학에 근거하면서 몇 줄의 글로 독자의 마음을 한데 묶어 놓는다. 흔히 글 쓰는 이가 터치에 빠지기 쉬운 정치얘기를 멀리하고 누구나 공감하는 삶의 경륜을 쉽게 풀어 놓음으로써 독자와 친근 한다. 100세를 살고 있는 그의 삶의 무게는 어떠하며 가중치는 무엇일까.

또 한분 빼 놓을 수 없는 연세대 명예교수가 있다. 행정대학원장을 지낸 Y교수는 나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 Y교수의 형이 내 고교시절 영어교사였다. 세브란스에 관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서 그 때 선생님의 별명이 세브란스로 통했다. 나중 미국에 가서 정신과 의사를 지내셨다. Y교수는 내 학위논문도 지도하셨다. 90의 나이에도 쟁쟁하고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학원에 다닌 지가 수년이 되더니 중국어 구사가 대단하다. 죽을 때까지 배우고 죽을 때까지 활동한다는 그의 삶의 신조인 學到老와 活到老는 내 삶의 방향이 되었다. Y교수의 삶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창밖을 보니 여기 저기 흩어져 있던 구름이 엉키더니 하늘이 어두워진다. 장마가 시작되는 신호다. 늘 봐 온 여름날의 하늘이지만 순간 변화는 인생의 그것과 닮았다. 누구에게나 삶의 무게가 있을 것인데 사람들은 그런 것을 생각지도 않고 덤덤히 산다. 삶의 무게를 달수는 없지만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자신의 삶의 저울 눈금으로 측정이 가능할 것이다. 삶의 무게는 어떻게 잴 수 있을까. 그저 눈대중으로 남의 삶 무게를 어림잡을 수는 있지만 정확한 측정은 자신만이 할 수 있다.

요즘 나는 내 삶의 무게는 어느 정도이며 어디에 가중치를 두고 살아 왔는지 생각할 때가 있다. 거짓 없는 양심의 눈으로 삶의 무게를 측정 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 나는 나의 의지에 따라 앞만 보고 쫓기듯 살아 온 터라 좋은 삶과 그렇지 못한 삶이 뒤범벅이다. 관조의 세계에 들어가 조용히 내 삶을 조명해 보니 그래도 좋은 삶을 살아 왔다고 자위해 온 것들이 가식적이고 이기적이다. 자신의 삶에 충실한 것을 미덕으로 알고 거기에 가중치를 둔 것이다. 삶의 백지에 차근차근 채워 온 흔적들이 뚜렷이 보인다. 굴곡이 많았음이 확인되고 있다. 겸손은 고사하고 매사가 억지투성이다. 부끄러운 삶은 아닌 것 같지만 무게 있는 삶을 살았다는 확신이 없다. 다행인 것은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국가와 사회, 학문분야에 작은 힘이라도 보탠 흔적이 지방자치 역사 기록 한 모퉁이에 남아있을 것이라는 안위감이다.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은 생의 축복이다. 남은 인생을 다듬어 가면서 살고 싶다. 어제는 오늘이었고 내일은 또 다른 오늘이다. 항상 오는 오늘은 새날로 받아들이면서 살고자 한다. 장대비가 잠시 그친 모양이다. 눌러 있던 햇살이 얼굴을 내민다. 새로운 오늘을 채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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