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꽃
웃음꽃
  • 승인 2020.08.3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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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밤늦도록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던 나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던 딸아이가 불쑥 ‘엄마는 웃음꽃 피우고 있네. 나는 울음꽃 피우는 중인데…’라며 소나기처럼 한 자락 퍼 붙더니 지나간다. 그 질문에 질세라 나는 딸아이의 뒤통수에다 대고 “그라면 우짤꼬, 마냥 앉아 울까”라며 땡삐처럼 쏘아붙였다. 다음 달이면 딸아이는 시월의 신부가 된다. 더군다나 유치원 교사다. 코로나 19가 시작되던 2월 이후 수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오래도록 힘겨운 시간을 잘 견뎌오며 이제 겨우 한숨 돌리는가 싶었는데 또다시 깜깜이 환자들로 인해 기약 없는 터널 속이다.

역대 최장기간 장마와 태풍을 지나 식을 줄 모르는 폭염에 더해 시들어가던 꽃에 물을 뿌린 듯 다시 생기를 되찾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의 여파까지 더해진다. 처서도 지나고 백로를 눈앞에 둔 9월, 또다시 태풍 9호인 ‘마이삭’이 몰려오고 있다고 한다. 결실의 계절은커녕 눈가에 이슬 맺히는 날이 쉬이 그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예전 코미디 프로그램의 대명사처럼 군림했던 ‘웃으면 복이 와요’가 생각난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에겐 생소한 이름이겠지만 주말 저녁만 되면 모든 식구를 TV 앞에 모여 앉게 했다. 그중 대표적 개그맨으로 비실비실 배삼룡이 있었다. 생각만 해도 웃음을 끄집어내게 해주던 그는 지금까지도 잊히질 않는다.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라는 말이 있듯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그 프로를 보며 크게 한 번 웃고 나면 세상 모든 시름이 사라지며 왠지 모를 희망으로 가득 차오르던 것으로 내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다. 찡그리지 않으면 화가 달아난다는 것을 경험하게 해 준 프로였다. 요즘 들어 간혹 주변 사람들의 표정을 찬찬히 살펴보게 될 때가 있다. 인생의 희로애락이 그대로 새겨진 것처럼 온화한 미소 가득한 사람이 있고, 근심과 걱정에 시달려 찡그린 얼굴 그대로 자리 잡은 사람도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데 점점 웃을 일이 줄어드는 것만 같아 불안한 이때 내 인생의 이력은 내 얼굴 위, 어떠한 표정으로 새겨져 있을까 떠올려본다.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만들어 신화를 만든 사람들이 있다. 웃음 하면 떠오르는 찰리채플린이 그중 한 사람이다. 살기 위해 무대에 섰지만 무대 공포증이 있었던 그는 많은 고민 끝에 무대에 등장할 때 등을 보이며 나왔다고 한다. 옷의 앞뒤를 바꿔 뒷모습이 앞모습으로 보이게 등장하자 그의 기발한 표현에 감탄한 관객들이 박수와 웃음으로 그를 맞이해 주었다고 한다. 어려움에 부딪힐수록 거기로부터 다시 유턴할 수 있는 용기와 언제 어디서나 돌파구는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길 바라본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그의 말처럼 지금의 시간을 되돌아볼 때 조금이라도 덜 후회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어느 시인의 말을 빌려 ‘지구만큼 슬프다’고 해도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 테니 그저 웃어보기라도 하는 것이다. 울 날 많은 세상 ‘즐거운 일이 있어야 웃지’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하지만 감정이 표정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표정이 감정을 유도한다는데, 억지로라도 웃어보면 즐거움은 따라오지 않을까 싶다.

찡그린 얼굴은 화를 부르고 온화한 미소는 복을 불러들인다고 한다. 한 번을 웃기기 위해 백 번 이상을 연습했다는 찰리채플린의 말을 다시금 떠올려 본다. ‘다른 사람의 웃음으로 인해 내가 고통받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나의 웃음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고통받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라던.

가끔 셀카를 찍을 때면 웃음기 사라진 무표정의 얼굴이 나조차 내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볼펜을 위아래 어금니 사이에 문 채 거울 앞에 서서 일부러라도 웃는 연습을 해 본다. 억지웃음이라고 해도, 웃는 얼굴이 좋아 보인다. 입꼬리가 양미간 사이로 살짝 올라가 웃는 얼굴은 함지박을 연상케 한다. 그 속엔 행복이라는 미래를 담을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입꼬리가 아래로 내려가 고봉밥을 엎어놓은 듯 무덤 같은 얼굴에는 그 어떤 것도 담을 수가 없다. 웃음꽃 한 송이조차 피워낼 수 없기에. 우린 모두 삶이라는 무대 위의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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