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규 박사, 대한민국 화학 위상 세계에 알리다
이태규 박사, 대한민국 화학 위상 세계에 알리다
  • 김종현
  • 승인 2020.09.16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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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노벨상을 품자 - (31)우리 한민족의 화학적 DNA
한국인 첫 노벨화학상 후보 ‘이태규’
양자화학 분야 선구자들과 연구
1965년 노벨화학상 수상 후보
1969년 두번째 후보 올랐지만
‘인류최대기여’ 항목서 낮은 평점

노벨상-우리민족DNA
우리민족의 화학적 DNA는 얼마나 될까.

옛날 시골에서 어른들로부터 헛소리라고 생각하면서 들었던 “천둥과 번개가 많은 해는 풍년이 든다.”는 말이 있었다.

성경(욥기36:30~33)에서도 “번개는 바다 밑바닥까지 들어가서 훤히 비취게 하고, 이렇게 온 누리를 다스려 풍년을 들게 하나니.”라는 구절에 1785년 영국 과학자 헨리 캐번디시(Henry Cavendish,1731~1810)는 대기 속 번개의 방전으로 질소가 질산(질산비료)으로, 벼락이 인광석(燐鑛石)을 때려 인산칼륨((燐酸加里)을 만들어줌으로써 풍년이 든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와 같이 공중 속의 질소가 빗물로 씻겨 고착화되는 과정은 공중질소고정(fixation of atmospheric nitrogen)이다. 공기 속 질소의 인위적인 방전을 통해서 질소비료(nitrogenous manure)를 생산하는 마술은 쉽게 말하면 ‘공기로 빵을 만들기(making bread in the Air)’였다.

물론 일본제국은 1927년 흥남질소비료공장 건설로 연간 44만 톤 생산기반을 마련했다가 1932년 만주사변을 계기로 헤이룽장 성(黑龍江省) 하얼빈 인근에 관동군 방역급수부를 설치하고 부대명칭을 731부대(Unit 731)라고 했다. 이곳에서 일제는인간생체실험을 통한 생물화학무기개발을 비밀리 추진했다. 40만여 명의 항일독립군 및 포로 등에게 암호명 마루타(まるた,통나무) 프로젝트로 i) 탄저병, 흑사병 등의 미생물 인체전염실험, ii) 염소가스와 방사능 인체피폭실험, iii) 산 사람을 대상으로 총검술, 총상, 동상을 입히는 각종생체실험을 했다.

1932년 육군전염병예방연구소라는 명칭을 달고 군의관 중좌 이시이 시로(石井四郞, いしい しろう, 1892~1959)가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특수임무를 띤 부대였고 또 히로히토(裕仁) 천황 칙령에 의거해 설립된 특수부대이기에 천황의 막대동생(三笠宮崇仁, みかさのみや たかひとしんのう, 1915~2016)이 고등관으로 나와 있었다. 주변은 종마요새(種馬要塞)로 100킬로미터 이내는 접근을 할 수 없었다. 물론 이외에도 516부대(齊齊哈爾), 543부대, 773부대(Songo), 100부대(長春), 1644부대(南京), 1855부대(北京), 8604부대(廣州), 200부대(滿洲), 9420부대(Singapore) 등에서 헌병대 관리 아래 생화학무기개발을 위한 극비실험을 했다. 이렇게 잔인하게 731부대 등에서 생체실험으로 연구했던 군의관 중 24명이나 의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오사카 경도대학(京都大學)에서 23명과 1945년 9월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 오늘날 서울대학)에서도 1명이 의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제국은 생화학무기개발을 위해 1937년 수풍수력발전소를 건설했다. 즉 충분한 전력공급으로 흥남비료공장을 생화학무기생산체제로 전환했고, 석회암 지대로 우라늄이 많았던 용천(龍泉)에다가 우라늄 농축 기지를 비밀리 운영했다. 이와 같은 사실은 2004년 4월 22일 용천역 열차폭발사건으로 알려졌다. 당시 질산암모늄(ammonium nitrate) 화물차량과 유조차량의 교체작업을 하던 중 열차충돌로 폭파했다고 국내에서 보도되었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샤브(Moshav)가 시리아로 이동 중인 핵물질을 폭파시켰다고 보도했다.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지금 생각해도 일본이 무기개발에서 한 발 늦은 게 하늘의 축복이다. 미국과 영국이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를 추진해 1945년 7월 16일 5시 30분경 앨라모고도(Alamogordo) 인근사막에서 트리니티(Trinity)실험 성공으로 원자폭탄을 일본보다 먼저 제조했다. 이를 기반으로 제조한 원자폭탄 2개를 1945년 8월 6일 08:15 일본 히로시마(廣島)에 꼬마소년(little boy)을, 그리고 8월 9일 나가사키(長崎)에 뚱뚱보(fat man)를 살포시 일본제국의 품안으로 안겨다주었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광복이란 행운을 얻었다.

북한의 지난 태양절(4월 15일)에 김정은이 불참하자 각종추측이 난무하더니 5월 3일 20일간 잠복을 끝내고 나타나자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의 “김정은이 건강하게 돌아와 기쁘다.”는 메이저신문 보도기사가 나왔다. 평남 순천(順川) 인공비료공장에 모습을 보임으로 COVID19 질병환란 속에서 건재함을 드러냈고, 동시에 식량안보를 강조했다. 그곳은 암모니아(NH3)로 질산칼륨(potassium nitrate, KNO3)과 질산칼슘(calcium nitrate, Ca(NO3)2)이라는 비료를 생산한다. 그런데 최근 북·미 비핵화협상에 연관해서 조금만 의심하면 우라늄에게 수산화나트륨을 더하여 중(重)우라늄산 나트륨(sodium diuranate: Na2U2O7·6H2O)을 만들거나 암모니아를 첨가해 중(重)우라늄산 암모니아(ammonium diuranate:(NH4)2U2O7) 등 속칭 핵물질인 옐로우케이크(yellow cake)를 생산하지 않을까 상상할 수도 있다.

◇ 한국태생 노벨화학상 수상자 찰스 피더슨과 물망에 올랐던 이태규 박사

 

한국 출생 노벨화학상 수상자 ‘피더슨’
1904년 대한제국 시절 부산 출생
금광 운영 아버지 슬하에서 자라

분자개발 활용 공로 1987년 수상

먼저 노벨화학상에 대해서 살펴보면 1901년부터 2019년까지 184명의 수상자에게 111번을 시상했으며, 같은 사람이 동일한 노벨화학상을 두 번 받은 건 영국 캠브리지대학교(University of Cambridge) 생화학자(biochemist) 프레더릭 생어(Frederick Sanger, 1918~2013) 한 사람 뿐이다. 그는 1958년도 51개의 단백질로 이뤄진 인슐린(structure of proteins, especially that of insulin)을 발견하고 1980년에 DNA 염기서열 해석법(sequences in nucleic acids)을 규명한 공적으로 2회 수상했다. 그를 제외하면 결국 183명의 수상자에게 한 번씩만 시상되었다.

남녀성비론 비교적 차별이 없으나 5명에 이르는 여성수상자를 배출한 연도를 보면 1911년, 1935년, 1964년, 2001년 및 2018년에 나왔다. 최연소자는 1935년 수상자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Frederic Joliot-Curie, 1900~1958)가 35세이고, 최고 연장자는 2019년 수상자 존 굿이너프(John B. Goodenough, 1922년생)가 97세다. 다른 노벨상과 2번이나 중복 수상한 사람은 2명이나 되었다. 1903년 물리학상과 1911년 화학상을 수상한 마리 퀴리(Marie Curie, 1867~1934), 1954년 물리학상과 1962년 평화상을 수상한 라이너스 폴링(Linus Pauling, 1901~1994)이 있다.

수상공적의 윤곽을 살펴보면, 1990년대 이후엔 생화학(biochemistry) 분야 강세현상이 두드려졌다. 왜냐하면 생물학(biology), 화학(chemistry) 및 의학(medicine)의 교집합 학문(intersected science)으로 노벨화학상, 노벨생리의학상으로도 수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 전자현미경(electron microscope) 관련연구로 물리학자가 화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국 출생으로 최초 노벨상 수상자로는 1987년 “다른 분자와 구조맞춤 상호작용(결합)을 수 있는 분자개발과 활용에 대한 공로(for their development and use of molecules with structure-specific interactions of high selectivity)”로 노벨화학상을 공동 수상한 찰스 존 피더슨(Charles John Pedersen,1904~1989)이 있다. 그의 국적은 미국인이지만, 노벨재단 데이터베이스에는 한국(Korea) 출생으로 등록되어 있다. 사실 그는 1904년 10월 3일 대한제국 시절에 부산에서 출생(노르웨이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해 북한 운산금광을 운영하는 아버지 슬하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오늘까지 우리나라 화학자 가운데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가장 가깝게 다가갔다고 평가받았던 분은 이태규(李泰奎, Ree Taikyue,1902~1992) 박사다. 그는 1973년 한국과학원(KAIST) 석좌교수를 역임했던 분으로, 경성고등보통학교,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 교토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 화학과를 졸업하고, 1931년에 ‘촉매에 관한 연구’학위논문으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37년에 모교 교토대학교 조교수, 1938년 미국 프린스턴대학(Princeton University)으로 옮겨 스코트 테일러(Hugh Stott Taylor, 1890~1974)와 아이링(Henry Eyring, 1901~1981) 등 양자화학의 선구자들과 ‘유기화학의 중요성과 치환벤젠의 질화비율에서 쌍극자 모멘트 계산’ 논문을 1940년에 발표했다. 1941년에 쿄토대학(京都大學)에서 양자화학을 강의하였고, 1943년 정교수가 되었다.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 서울대학의 전신) 이공학부장의 직책을 받았고 국립서울대학교 출범과 문리과대학 초대학장을 역임했다.

그러나 좌우익투쟁에 환멸을 느껴 1948년 도미(渡美)해 유타대학(University of Utah) 교수로 옮겨 연구에만 몰입하여 1965년 노벨화학상 추천위원회에 수상후보자로 선정되었다. 또한 1969년 ‘이-아이링 이론(Ree-Eyring Theory)’으로 노벨화학상 물망에 두 번째 올랐으나, ‘몇 명에게 기여 했는지’라는 인류최대기여(the greatest benefit to human being) 평가항목에서 아쉽게도 경쟁후보자보다 낮은 평점을 받았다.

글·그림 = 이대영<코리아미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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