져주기
져주기
  • 승인 2020.09.23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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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심리연구소 소장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경쟁이 너무 많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경쟁해야 할 운명으로 태어났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경쟁이 많은 세상이다. 경쟁에서 이겨야 돈을 얻고, 부와 명예도 얻는 세상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경쟁을 해왔던가? 그리고 그 경쟁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아파해야 했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야 했던가? 자연은 또 얼마나 망가져 갔던가? 이렇게 경쟁으로 가다가는 우리가 사는 이 지구도 어느 한순간 재가 되어 사라질 줄도 모를 위기에 처해있다. 더 많은 자원과 기회를 차지하기 위해 강대국은 군사력을 앞세워 서로 경쟁하고 있다. 핵개발 경쟁으로 인해 우리 지구는 거대한 시한폭탄이 되어 있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져준다는 것은 힘이 없이 지는 것과는 다르다. 지는 것이 피동적이라면 져주는 것은 능동적인 행동이며, 타인에 대한 배려가 포함된다. 져준다는 것은 마치 아버지와 어린 딸이 팔씨름을 할 때의 아버지가 취하는 행동과 비슷하다. 아버지는 가볍게 딸을 이길 수 있다. 하지만 아버지는 딸을 이기지 않고 져준다. 마치 딸이 엄청난 힘을 가진 '원더 우먼'이 된 것처럼 느끼도록 "어~어~ 우리 딸 팔 힘이 이렇게 세다니"하면서 져준다. 그러면 딸도 기쁘고, 아빠도 기쁘다. 아주 바람직한 아빠의 자세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져줄 수 있는 사람은 참 복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져줄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힘일 수도 있고, 물질일 수도 있다. 또는 기회일 수도 있다. "나는 가진 것이 없어서 져줄 수 없어요."라고 반론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본인은 사람에게는 누구나 돌아보면 나눌 수 있는 무언가가 모두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부부교육을 하면서, 혹은 부부상담을 하면서 본인을 찾아온 부부들의 공통된 모습이 서로 이기려 한다는 것이다. 절대 지려고 하지 않는다. 그 결과 이혼의 위기가 찾아오고, 갈등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서로 져주면 가볍게 싸움도 끝나고 갈등도 해결될 일을 큰 비용(돈, 에너지 낭비 등)을 들여가며 서로 이기려 하다가 서로 지고 있다.

어릴 때부터 우리가 배운 건 경쟁이었다. 양보를 배워 본 적이 없다. 늘 경쟁해서 이기는 법만 배웠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져주는 법을 잘 모른다. 져주는 법도 가르쳐야 한다.

이쯤에서 아주 훈훈한 이야기를 들려줄까 한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트라이애슬론 대회에서 결승선 앞에서 3위와 4위를 다투던 두 선수가 있었다. 경기 내내 3위로 달리던 '제임스 티글'이란 선수가 마지막 골인 지점에서 코스를 착각해 다른 길로 빠졌다. 그 선수가 급하게 원래 코스로 돌아왔지만 4위로 달리던 '디에고 멘트리다' 선수에게 역전 당하게 된다. 어찌 보면 4위를 달리던 '멘트리다'에게는 동메달을 딸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멘트리다는 달리는 것을 멈추고 길을 잘못 들어서 3위에서 4위로 밀려난 티글 선수를 기다린다. 그리고 그가 3위로 골인지점을 통과하도록 기다려 준다. 이 일이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게 되었고 할리우드 유명 배우 등을 포함해 수백만 명이 넘는 사람이 해당 영상에 댓글로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대회본부는 4위를 한 선수 멘트리다 선수에게 명예 3위 메달과 함께 동메달 상금도 수여했다.

멘트리다 선수는 SNS에서 이렇게 적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 그리고 운동 클럽에서 가르쳐 준 것이었기 때문에 양보가 당연하다"라고 적었다. 져줌으로 승자가 된 멘트리다 선수와 그의 부모에게 영광의 박수를 크게 쳐주고 싶다.

지금껏 교육이 경쟁을 잘하는 사람을 만드는데 초점이 맞춰져 왔다면 이제는 양보와 협력을 가르쳐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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