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 속 삼투압 법칙 규명했더니…‘세계 첫 노벨화학상’
화학 속 삼투압 법칙 규명했더니…‘세계 첫 노벨화학상’
  • 김종현
  • 승인 2020.09.23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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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노벨상을 품자 - (32)한 인간으로 진인사대천명에 도전
네덜란드 물리화학자 ‘판트 호프’
광학 활성화로 입체화학 기반 다져
화학역학·삼투압 법칙 발견 공로
1901년 세계 최초 노벨화학상 수상
스웨덴 화학자 ‘아레니우스’
노벨상 꿈꾸며 과학아카데미 참여
5년간 해외유수대학서 인맥 형성
해리 전해이론으로 화학발전 기여
1903년 노벨화학상 단독 수상자로
노벨상-명중
운명을 걸고 노벨화학상에 도전, 결국 명중시킨다. 그림=이대영

◇ 최초 노벨화학상은 ‘김치 절이기’ 삼투압원리 규명

1960년대 시골에서 자랐을 때에 어머니가 음식에 소금을 마구 뿌리는 걸 보고 궁금한 것이 많았다. 초등학교는 단 하루도 다니지 못했던 어머니께선 “소금을 뿌리면 김치 속의 물이 빠져나와 절여지고, 소금에 절어 기생충은 물론 병원균까지도 다 죽는다”고 하셨다.

찬장 밑에 식중독을 방지한다고 언제나 소금그릇을 놓았다. 집 앞길 섶에 잡초가 무성하다고 소금을 한 주먹씩, 채소밭 달팽이가 잎을 갉아먹는다고 소금을 뿌렸다. 개울에서 주워온 다슬기는 물론이고 논 웅덩이에서 잡아온 미꾸라지에게도 소금을 아낌없이 먹여 불순물을 토하게 했다. 이를 보고 배웠는지 갯벌에 맛조개잡이를 하는 아이들도 조개구멍에다가 소금을 집어넣자 조개가 살고자 기어 나왔다.

일부 횟집에서는 가게 앞 가로수에 허드레 바닷물을 주는 바람에 나무가 고사한다. 해수욕(海水浴)하다가 물을 먹었을 때는 갈증을 몹시 느낀다. 이런 것을 보고 자랐기에 공직생활에서 업무스트레스로 만만한 부하여직원에게 화풀이로 괴성을 지르거나 결재판까지 던지는 상사의 모습을 보면 ‘미꾸라지에게 소금 쳐 놓은 꼴’을 연상하면서 웃음을 자아낼 수 있는 여유를 얻었다.

삼투압이란 ‘농도가 다른 두 액체를 반투막(semipermeable membrane)으로 막아놓았을 때 용질의 농도가 낮은 쪽에서 농도가 높은 쪽으로 용매가 옮겨가는 현상에 의해 나타나는 압력’이다. 이와 같은 원리를 1867년 독일 화학자 모리츠 트라우베(Moritz Traube, 1826~1894)가 최초 발견했다. 1877년 빌헬름 페퍼(Wilhelm Pfeffer, 1845~1920)는 페로사이안화(ferrocyanide) 구리의 침전막을 가진 질그릇(통)을 써 설탕수용액의 삼투압을 측정해서 “삼투압은 온도에 비례한다”는 결론을 맺었다.

1886년 헨리퀴스 판트 호프(1852~1911)는 “삼투압을 P(기압), 용질 n, 몰(mole)을 용해하는 용액의 부피를 V, 용액의 절대온도를 T, 기체상수를 R라 하면, 용액의 농도가 그다지 크지 않은 범위에서 PV = nRT 방정식이 성립한다”고 했다. 또한 “전해질인 수용액의 경우는 보정치 I로 가정하면 PV = inRT 관계식이 적용되며, i는 1보다 큰 상수이며, 그 값은 물질의 종류와 농도에 따라 변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이와 같은 연구로 1901년 네덜란드 물리화학자인 판트 호프(Jacobus Henricus van’t Hoff)에게 “화학역학 법칙과 삼투압 법칙을 발견한 탁월한 공로를 인정하여” 단독수상자로 최초 노벨화학상을 수여했다.

그는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문학, 미술, 자연과학을 좋아했으며, 콩트의 실증철학에 많은 감화를 받았다. 위트레흐트대학교(University of Utrecht), 본대학교(University of Bonn), 파리대학(University of Paris), 델프트공과대학교(Delft University of Technology), 레이던 대학교(University of Leiden) 등에서 아우구스트 케쿨레(1829~1896)와 샤를 아돌프 뷔르츠(1817~1884) 등의 당대 유명한 학자들로부터 배웠다. 22세때 유기화합물의 구조식을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1895)와 케쿨레(Friedrich Kekule, 1829~1896)의 연구에 기반을 두고, 입체공간으로 확장해서 탄소원자를 중심으로 탄소화물 4면체구조(carbide tetrahedron structure)를 주장했다. 또한 부정탄소원자(asymmetric carbon atom) 개념을 도입했고, 광학활성화의 관계를 규명해 입체화학의 기반을 다졌다.

1874년 위트레흐트대학교에서 에두아르드 멀더(Eduard Mulder, 1832~1924) 교수의 지도 아래 박사학위를 받았다. 1876년 위트레흐트대학 강사, 1877년 암스테르담대학(University of Amsterdam) 강사 및 1878년 암스테르담대학 정교수가 되었다. 18년 동안 교수로 물리화학적 연구에 몰두해 화학반응속도론(chemical kinetics), 화학평형이론(chemical equilibrium), 친화력 문제 등에 대해 학문적 체계를 마련했다. 특히 삼투압(osmotic pressure)의 규명으로 용액이론을 정립했다. 1884년 ‘화학역학의 연구(Studes de Dynamique chimique)’를 발표하여 삼투압의 법칙을 정립했다. 1896년엔 베를린훔볼트대학교(Humboldt-Universitat zu Berlin) 교수를 역임했다. 스타트필드의 암염층(Startfield Rock Formation)을 연구해 생성원인과 식물체 산화작용의 역학적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고전적 물리화학 분야에서 프레드릭 빌헬름 오스트발트(Friedrich Wilhelm Ostwald, 1853~1932), 스반테 아레니우스(Svante Arrhenius, 1859~1927)와 3대 학자로, 가장 독창성이 있는 그는 3인 공동으로 ‘물리화학 잡지’를 1887년에 간행했다. 1896년 베를린과학아카데미 및 베를린대학교 명예교수를 역임했다. 그의 저서로는 사후에 정리해서 출판한 2016년 ‘우주에서 원자의 배열(The Arrangement of Atoms in Space)’, 2016년 ‘과학 서비스의 물리화학(Physical Chemistry in the Service of the Sciences)’및 2018년 ‘희석, 기체 또는 용해상태에 대한 화학평형의 법칙 등이 남아 있다.

◇ 먼저, 학문의 갈라파고스(academic galapagos)에서 벗어나자

1903년 스웨덴 화학자 스반테 아우구스트 아레니우스(Svante August Arrhenius, 1859~1927)에게 “해리(解離)의 전해이론(electrolytic theory of dissociation)으로 화학발전에 기여한 탁월한 공로를 인정하여” 단독수상자로 노벨화학상이 수여되었다.

그는 스웨덴 웁살라 비크(Wik Castle, Sweden, Sweden-Norway)에서 태어나 1876년 웁살라대학(Uppsala University)에서 물리학 전공과 화학과 수학을 부전공으로 1881년에 학사학위를 받았다. E. 에들룬드(Erik Edlund, 1853~1888) 교수의 실험실에서 전해질 희석수용액의 전지전도도에 관한 연구에 참여했다. 1884년 과학아카데미에 논문을 발표해 이온화설 기초를 마련했다. 그해 웁살라대학에서 페르 테오도르 클레베(Per Teodor Cleve, 1840~1905) 교수의 지도 아래 ‘전해질의 갈바니 전도도’ 학위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빌헬름 오스트발트(Wilhelm Ostwald, 1853~1932)의 추천으로 웁살라대학 강사 자리를 얻었으나 곧 사임했다. 노벨상 수상자의 꿈을 갖고 과학아카데미 해외연구생에 참여해 5년간 해외유수대학에서 연구와 인맥을 형성하는 ‘학문의 갈라파고스로부터 자아도피여행(self-escaping tour from academic Galapagos)’을 구상하고, 추진할 밑그림을 그렸다. 1891년 독일 기센대학(Justus Liebig Universitat Gießen) 물리화학강좌 개강에 따른 강사로 지명되었으며, 스톡홀름대학(Stockholm University)에서 물리학 강사로 스웨덴에 거주했다.

그의 주요업적은 1896년 이온화설로 독일 전기화학학회 명예회원, 1897년 스톡홀름대학(Stockholm University) 학장에 임명, 1901년 스웨덴 과학아카데미(Sweden Science Academy) 회원, 1902년 영국 왕립학회(Royal Institute of Technology)의 데이비(Sir Humphry Davy, 1778~1829)상을 수상했고, 1903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1905년 노벨물리화학연구소 설립에 소장으로 임명되었다. 주요업적은 이온화설, 화학반응속도 및 면역화학의 이론, 우주물리학에서는 오로라의 기원 가설, 지학에서는 화산활동의 원인가설 등을 남겼다.

주요저서로는 1884년 박사학위 논문이었던 ‘전해질의 갈바니 전도도’, 1894년 ’대기 중 탄산 함량이 지구 표면 온도에 미치는 영향‘, 1896년 ‘지면온도에 따른 공기 중 탄산의 영향’, 1901년 ‘탄산에 의한 열 흡수 및 지구표면 온도에 미치는 영향’, 1903년 ‘세계 공간에서의 생명체의 확산(Die Verbreitung des Lebens im Weltenraum)’, 1906년 ‘기후변동의 가능한 원인(Die vermutliche Ursache der Klimaschwankungen)’, 1907년 ‘사적으로 본 우주관의 변천(Worlds In The Making : The Evolution Of The Universe)’ 및 1908년 ‘세계의 출현(Das Werden der Welten)’등이 있다.

글 = 정경은<코리아미래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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