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조로운 형상서 가치 추구…30년째 ‘줄무늬 패턴’
단조로운 형상서 가치 추구…30년째 ‘줄무늬 패턴’
  • 황인옥
  • 승인 2020.11.16 2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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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신라 ‘박두영展’
작업 주안점 ‘인간 정신가치’
일상 속에서 예술 본질 발견
작품 용도 따라 새 의미 부여
차양막서 보는 일반화된 모양
삶의 태도 응집된 기표 상징
재료·그라데이션 통해 변주도
박두영
박두영 작가

박두영-작-레드줄무늬1
박두영 작

박두영작-초록줄무늬
박두영 작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 죽을 때까지 생존을 위해 사력을 다한다. 인간도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이 과제를 죽음 직전까지 수행한다. 그러나 인간은 다른 생명체에서 발현되지 않는 중요한 특질 하나를 보유하고 있다. 바로 ‘정신’이다. 인간은 ‘정신의 성취’와 ‘육체적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는 세상 유일의 존재다. 수많은 욕구 중에서 정신의 영역인 ‘자아실현’ 욕구를 최정점에 두는 것만 봐도 인간이 얼마나 정신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지는 명명백백하게 드러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삶을 살아가는 과정을 통하여 정신의 영역은 성숙되고 확장된다. 우주를 품고도 남을 혜안을 가지거나, 태어날 때의 백지 상태에서 몇 걸음 밖에 나가지 못하는 등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든 인간은 정신적으로 성장을 거듭한다. 각자의 근기(根機)에 따라 성취의 깊이가 다를 뿐.

작가 박두영은 삶을 수행하는 태도나 자세 등의 정신 가치를 작업의 중심으로 삼아왔다. 예술의 바탕을 외부에서 찾기보다 자신의 존재 현실, 특히 그가 행하는 일상의 삶 속에서 예술의 본질을 발견한다. 그는 “미술이 곧 자신”이라는 태도로 미술과 자신의 삶을 동일시하고 있다.

미술은 시각언어이며, 중심에 형상이 있다. 그런데 형상이란 곧 관념의 집이다. 모든 미술은 구체적이거나 추상적인 관념을 형상화하거나 형상에 관념을 투사해 표현한다. 미술 안에 작가의 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운 형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작가의 ’태도나 자세’도 결국 형상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작가가 추구하는 가치와 형상의 기능적 의미가 어긋나게 된다. 이점은 특히 그림의 정신성(寫意)을 중시했던 옛 선비들의 문인화에서 볼 수가 있는데 그들은 소위 사군자(四君子)나 산수 풍경을 빌려, 구현하고자 하는 드높은 정신 가치(意境)를 표현했다. 이른바 “상외지상(象外之象-형상 밖의 형상), 경외지경(景外之景-풍경 너머의 풍경)”이 그것이다.

박두영 작가는 영민한 선택을 했다. 관념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형상에 관심을 두었다. 세상에서 가장 무의미한 형상으로 치부되는 길거리의 흔한 줄무늬(스트라이프) 패턴을 사용한 것.

그는 카페나 숙박업소 등의 가림막이나 차양막 같은 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줄무늬 패턴을 특별한 가공 없이 그대로 채택한다. 워낙에 주의없이 사용하는 일반화된 이미지이기 때문에 그것을 옮긴 그림을 보는 감상자는 형상 내부에서 심오한 의미를 발견하고자 하지만 성공 가능성은 낮다. 줄무늬 패턴 그 자체에는 작가가 의미를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줄무늬 그림은 1990년대부터 시작됐다. 80년대 까지만 해도 세계를 확인하고 실존을 탐색하는 도구로써 미술을 사용하다 90년대부터 심심하고 단순한 그림을 작가의 미술로 정해 놓고 이를 수행해 왔다.

줄무늬 그림은 작가 자신에 해당된다. 그가 살아온 삶의 태도나 자세가 응집된 하나의 기표로 줄무늬가 채택됐다. 이러한 주제 의식은 ‘미술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당시 그는 미술의 본질을 형상 실현보다는 작가 내부의 실존적 문제로 인식했다.

“작가에게 미술은 화면을 만들어내는 생의 문제다. 화면 안의 기예(技藝)나 이야기로는 이 가치를 구하지 못한다. 가장 절박한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나는 제일 재미없는 화면을 선택했다. 내가 저 안에서 기대하는 것이 없어야 그것을 놓지 않고 갈 수가 있다.”

그의 화면은 그의 삶이 응축된 결정체다. 그림의 가치를 그림 안이 아닌 바깥에서 찾아야 한다는 그의 미술 철학이 반영된 결과다. 감상자는 형상보다 그 형상을 선택한 이유를 깨닫고 그것으로부터 그의 미술을 읽어내야 한다. 그가 ‘인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수단으로 미술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형상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있다. 그림의 가치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 내부에 있는 것이지 화면의 이야기가 아니다.”

“형상을 구현하는 삶의 수행을 통해 가치를 구하는 일.” 이는 그가 생각하는 미술의 본질이다. 그는 이런 생각으로 줄무늬 패턴을 1990년대부터 그려왔다. 말이 쉽지 단조롭고 무의미한 패턴을 특별한 보상 없이 30년째 그리는 삶은 고행에 가깝다. 그는 그 과정에서 “수없이 흔들렸다”고 고백했다.

단순한 규칙 안에서 분할의 비율을 달리하기도 하고 분할면을 다시 분할하거나 물감 재료를 새롭게 합성하고 색상 단계를 그라데이션처럼 채우거나 종이를 잘라 붙이고 묶으면서 스스로의 변화 욕구를 추스르고 달랬다. 그렇게 해서 다년 간 적지 않은 변주와 실험이 있어왔지만 단 한 번도 줄무늬 패턴 그 자체를 포기한 적은 없었다.

작가 스스로도 “고통이었다”며 “너무 단순하니까 솔직히 지겨울 때가 많았다”고 시인했다.

이렇듯 고행에 가까운 줄무늬 이미지를 평생의 과업으로 삼아 그가 얻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그는 “아무도 오르지 못할 산을 누군가 죽음을 무릅쓰고 올랐다면 우리는 그 성취에 대해 특별하게 생각할 수 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의지가 인간의 위대함이자 아름다움”이라고 답했다. “내게 줄무늬는 어떤 의미에서 또 다른 아름다움을 구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거리의 무늬였던 줄무늬 색띠가 미술관에 걸렸을 때 사람들은 생경함을 체험한다. 그는 현재 대구미술관 기획 ‘메이드 인 대구 Ⅱ’전에 초대되어 함께 초대된 8명의 작가와 함께 미술관 전시장에 작품을 걸었다.

그의 작품이 미술관에 걸리게 되면서 줄무늬 패턴은 놓여진 장소와 용도가 변했다. 의미가 전환된 것이다. 줄무늬 패턴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았기에 줄무늬 패턴에 새로운 가치가 부여된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지만 내가 이름을 불러주자 그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추의 시 ‘꽃’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세상에 널린 객관적 사실들이 주관적 의미로 태세 전환하기 위해서는 이름을 불러주는 특별한 의식이 필요하다. 그가 30년째 해 오고 있는 작업은 바로 ‘객관에서 주관으로의 의미 전환’을 위한 이름 불러주기에 해당한다.

그가 세계를 주관적인 경험이나 철학으로 새롭게 인식하게 된 계기는 있었다. 그는 1979년 대구 ‘리갤러리’에서 김창열 작가의 물방울 그림을 본 감상을 소개했다. 당시 그는 거친 마포에 물방을 5~6개가 그려진 김창열의 작품을 가까이에서 처음 보게 되었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영롱한 물방울이었는데 다가가 보니 치약을 짜놓은 것 같은 아주 거친 물감 덩어리였다. “금방 쏟아질 것 같은 투명한 일루전(illusion)이 거친 물질이 되는 변화 자체가 엄청난 쇼크였다”고 그는 말했다.

그때 처음으로 자신이 믿고 있던 세계가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며, 일정하지 않다는 깨달음을 가졌고 현상세계를 인식하는 태도에도 변화가 시작되었다. 그 순간, ‘일체 세계가 마음으로 지은 것’이라는 화엄경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현실에서 맞닥뜨린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날 이후 그는 주어진 세계를 다시 보기 시작했고, 미술을 대하는 생각도 변하기 시작했다. 무심하게 굳어진 생각의 틀을 벗고 자신에게 가치 있는 인생을 살겠다는 결심을 한 것. “그때부터 미술은 내게 의미 있는 세계가 되었다.”

마르셀 뒤샹은 서명을 한 기성품 소변기나 병걸이를 미술로 제시해서 미술의 역사에 큰 파란을 일으켰다. 작가의 기능적 가공 없이 산업 제품을 작품으로 명명한 혁신적인 ‘레디메이드’ 미학은 현대미술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뒤샹의 변기 작품을 보고 사람들은 미술을 규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가치를 갖게 되는지를 돌아보기 시작했고, 그 생각을 이어 오늘날의 미술은 수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게 되었다.

대다수의 작가들에게 경제적 어려움은 숙명이라고 하지만 박두영 작가에게도 그것은 예외가 아니었고 평생토록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이유를 그에게 묻자 “뒤샹의 변기에서 보듯이 작가나 감상자 모두가 익숙한 것에 매달리거나 변화를 두려워하면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려면서 “나 역시 줄무늬 그림을 선택하면서 세계와 의미를 뒤집어 본 것처럼 내 미술을 보는 모두가 스스로의 생각을 돌아보고 의미있는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면 그것이 작은 행복”이라며 웃었다. 그의 말 속에는 “스스로를 바꾸는 성찰적 행위야말로 아름다운 일”이라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 “삶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구하는 통로로 미술을 할 수 있다면 그 길은 인생을 걸만하다.” 박두영 개인전은 갤러리신라에서 30일까지.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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