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비범과 평범 사이
[문화칼럼] 비범과 평범 사이
  • 승인 2020.12.2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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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대구문화예술회관장
A는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사내다. 마흔은 넘어 보인다. 그리고 옷도 늘 수수하게 입고 다닌다. 그런데 연습과 무대에서의 그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흔히 말하는 ‘사자후’를 토해낸다. 대구 시립극단 단원인 그의 내공은 멀리서 스쳐 지나듯 보면 잘 알 수 없다. 가까이서 봐야 그의 진가를 알 수 있다. 연습에 임할 때의 그는 아우라가 뿜어져 나와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물론 그 하나만이 아니다. 가끔씩 극단 연습장면을 보게 되면 이런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 하나 둘이 아니다. 그래서 그들이 연습하는 공간에는 이런 기가 응축되어 있는 것 같다. 뜨겁다.

B는 이미 이름난 무용수다. 꽤 많은 사람이 그의 팬임을 자처한다. 이름 정도 알던 그를 가까이 볼 기회가 지금은 상대적으로 많다. 대구시립무용단 여자단원인 그의 동작은 손끝하나 의미 없이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 아직도 현대무용을 어려워하는 나 같은 문외한에게도 그의 움직임은 설득력이 매우 강하다. 그게 뭐였어? 라고 물으면 딱히 설명할 말이 궁하긴 하지만 그 동작과 표정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물론 그 만이 아니라 시립무용단 단원들의 칼 같은 동작과 반짝이는 눈빛은 아름답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그들의 경지는 나 같은 보통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C는 대구를 대표하는 국악연주자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상급이라 부르기에 전혀 손색없다. 서양음악을 사랑하는 음악애호가나, 국악을 처음 접하는 벽안이라 할지라도 그의 연주는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런 장면을 지켜보며 드는 생각. “역시 고수는 뭔가 다르다” 그 뿐만이 아니라 시립국악단원 중에는 정말 뛰어난 연주자들이 많다. 국악 장르의 특징상, 주 전공 악기 외에도 다들 다양한 악기를 다루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그 솜씨들이 놀랍다. 정말 재주꾼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D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조용한 성품의 사람이다. 시립국악단 한국무용단원인 그는 늘 차분한 모습이지만 공연이나 연습에서는 빛이 난다. 작품에 녹아든 표정과 때로는 우아한 곡선으로 때로는 역동적으로 뿜어내는 춤사위는 아! 무용수였지 라는 자각을 준다. 그리고 최근 한국무용단 공연에서 모두들 정말 멋진 공연을 보여줬다. 한국무용의 확장과 더불어 한국무용단의 새로운 모습을 유감없이 뽐냈다.

여기에 언급한 우리의 아티스트들은 특정한 개인일 수도 있고 단원 전체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언급한 장면들을 바라보며 이들의 뛰어난 예술성을 우리의 시스템이 다 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특히 각 개인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제대로 담기에는 제도상 한계점이 있다고 본다. 미안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그런 한편 이들의 멋진 에너지를 한번 제대로 분출시켜보자 하는 도전의식이 강하게 생기기도 한다. 우리의 시스템이 존재할 수 있는 근본은 사람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래서 사람을 키우는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이 시스템을 살리는 선순환구조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지역 예술인의 가치를 제대로 조명할 수 있는 프로젝트는 다양한 장르와 채널을 통해서 이미 많이 시행하고 있지만 조금 더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즉 그 사람이 가진 장점을 어떻게 하면 극대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틀 속에 사람을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에 대한 성찰이 먼저라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맞춤형 개인 조명 사업은 장르별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즉 그 장르에 맞는 환경조성에 대한 연구가 매우 깊어야 한다. 예를 들어 기계음향을 쓸 것인지 말 것인지, 반드시 큰 극장 무대를 고집할 것인지 아니면 작은 무대를 선택할지 또는 공간을 바깥으로 끄집어내는 것이 더 효과적일지에 대하여 아티스트와 대화를 통하여 도출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술가가 가진 특성과 장점을 극대화 시키는 작업의 반복과 축적을 통해서 우리의 역량을 키울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런 프로젝트를 만들어 가기에는 마음의 부담이 따른다. 무대에 올라 조명을 받는 한 명의 예술가 뒤에는 상대적 상실감을 느끼는 아홉 명의 아티스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비범한 우리의 아티스트들을 더 빛나게 할 의무를 미룰 수가 없다. 아니면 흐르는 세월 따라 비범과 평범의 간격은 매우 좁혀 질 수 밖에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것도 평범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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