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에 떠난 사람
성탄절에 떠난 사람
  • 승인 2020.12.28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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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윤 SQ힉스아카데미 대표, 경영학박사
코로나 때문에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았던 성탄절 예배를 올해는 드리지 못했다. 교회에 가지 못하고 가족과 함께 집에 있는데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져 왔다. 의사인 한 친구가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뇌사 상태에 빠졌다는 것이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이곳저곳에 연락을 해 보노라니 밤늦게 장기 기증을 위한 수술에 들어간다 한다.

친구를 보내는 성탄절의 밤은 더욱 캄캄하고 조용하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캄캄한 밤만큼이나 어두운 마음으로 아침을 맞았다. 서너 시간이면 끝날 것이라던 수술이 열 시간을 넘기고 이제 막 끝났단다. 뭔 수술이 그렇게 오래 걸리나 했더니 알고 보니 모든 장기를 다 떼어 주었기 때문이라 한다.

두 사람에게 간을 이식했고 또 다른 두 사람에게는 신장을 이식해 주었다 한다. 그리고 각막과 뼈, 피부 등을 사오십 명에게 이식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한다. 생전에 너무나 신실했던 그의 모습을 마지막까지 보여주는구나 싶어 마음이 먹먹했다.

‘친구, 자네는 죽으면서도 생명을 뿌리고 가네. 누구나 가는 길을 가면서도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가는구먼. 아빠가 살아서 전국에 계신다며 자네 딸들도 흔쾌히 찬성했다니 그 아버지에 그 딸일세. 반듯하게 자란 딸들이 참으로 의젓하더군.’

시간이 지나니 마음이 좀 안정되어서 함께 있는 가족들에게 친구의 소식을 자세히 들려주었다. 그리고 나름 간곡한 마음으로 내가 죽으면 이 친구처럼 할 수 있는 한, 모든 장기를 다 떼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증하도록 부탁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우리 가족 모두가 장기기증 서약을 하자고 제안을 했다.

사실 나와 아들은 이미 오래 전에 장기기증 서약을 한 상태였다. 처음 목회를 시작하던 해에 상징적인 의미로 장기기증 서약을 한 것이다. 먼저 목사가 된 매제는 장기기증과 아울러 자신의 시신을 의과대학 해부용으로 사용하도록 이미 서약했다지만 아직 그것은 용기가 나지 않았다. 몇 년 후에 아들과 함께 병원에 갈 일이 있어 갔다가 장기기증 서약서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아들에게 장기기증을 제안해 보았다. 아들이 바로 수긍하여 곧바로 장기기증 서약을 하고 왔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렇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장기기증 사실을 기억나게 한 사람은 의외로 주거래 은행의 직원이었다. 나의 신분증을 확인하며 은행 업무를 처리하던 은행 직원이 갑자기 나를 쳐다보더니 ‘장기 기증자이시군요’라고 웃으며 말을 건네 왔다. 그렇다고 했더니 장기 기증자에게는 이자를 좀 더 드린다면서 은행 업무를 처리해 주었다. 나도 ‘허어, 그런 것도 있군요.’라며 웃으며 말했지만 장기기증 사실은 다시 곧 내 기억에서 멀어졌다.

그런데 이번 성탄절에 친구의 장기기증을 통하여 그 필요성을 절실하게 경험하게 되었다. 친구의 장기를 기증받은 사람들은 이번 성탄절을 얼마나 기쁘게 보냈을까? 딸의 말처럼 아빠의 장기를 기증받아 새 생명을 얻은 오십 여명의 사람들은 전국에서 친구를 대신하여 새로운 세성을 살아 갈 것이다.

이번 성탄절에 가족들에게 주위 어려운 분들에게 우리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자고 제안했더니 다들 그러자며 기쁘게 찬성한다. 장기 기증한 친구 덕분이리라. 그래서 암수술하고 막 퇴원한 한 청년에게 ‘용기를 내라’며 약간의 금액을 송금했다. 그랬더니 ‘너무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힘을 내어 꼭 건강을 회복하겠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우리를 사랑하기에 자신의 목숨을 드린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 친구는 예수를 닮았다. 신실하게 살아 온 그의 삶처럼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떼어 주고 우리 곁을 떠났다. 그러나 그는 그를 대신한 오십 여명의 사람들 가운데 여전히 살고 있고, 그를 그리워하는 우리들의 마음속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 그래서인지 코로나 때문에 텅 빈 장례식장이 조금도 쓸쓸해 보이지 않고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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