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적인 정신
실용적인 정신
  • 승인 2021.01.19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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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광 대구경북소비자연맹 정책실장 경제학 박사
근대 이전의 중국이 서양보다 경제, 과학, 기술 측면에서 더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 이후에는 서양보다 뒤처지게 되었는가? 이러한 질문을 통해 한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한 나라의 경제가 장기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지속적인 기술혁신이다. 전근대 시대의 기술혁신은 농부들과 수공업자들의 경험에 의한 시행착오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많은 인구를 가진 중국이 큰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영국이 주도한 산업혁명의 근간은 과학혁명이고, 이러한 과학혁명의 특징은 과학과 계획된 실험에 의한 시행착오이다. 그러므로 중국에서는 기술혁신이 경험을 기반으로 하는 형태에서 과학과 실험을 기반으로 하는 형태로 이행하지 못한 결과 근대 중국은 오랫동안 침체의 늪에 빠졌던 것이다.

그러면, 왜 중국은 기술혁신을 위한 과학 실험을 등한시 했을까? 아마도 중국의 과거제도에 기인했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중국은 과거제도를 통해 인재를 선발하므로 유능한 인재들은 입신양명을 위해 과거 시험에 올인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과거 시험에서 소외된 과학과 실험에 필요한 능력을 배울 의지가 없었고, 이로 인해 중국에서는 과학혁명이 일어나지 못했다. 과거제도의 이면에는 오랜 세월동안 농경생활 속에서 형성된 사농공상의 계급 이념이 자리 잡고 있다. 사농공상은 지식인을 필두로 부가가치 창출의 주역인 농민이 그 뒤를 잇고, 과학기술자와 상공인은 가장 하층계급으로 여겨왔다. 이처럼 농경사회에서는 마차와 여타 농기구를 만들어 내는 풀무기술과 대장간이면 충분한 자급자족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으므로 그 이상의 과학기술이나 상업 활동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사농공상의 농경사회에서는 창조적인 기업인과 기업활동 그리고 과학기술인이 대우받을 수 있는 구조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산업혁명이 이후 전개된 자본주의에서는 기업인과 과학자 그리고 기술자를 존경하고 우대하는 사회 환경이 조성된 국가일수록 발전하는 것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기업이 새로운 과학적 기술과 아이디어를 이용하여 경제적으로 유용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이를 통해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 그리고 지식기반 사회로의 이행할 수 있었다. 따라서 르네상스 이후 주식회사 형태의 기업제도가 영국으로 하여금 산업혁명을 통해 중국을 추월하고 서구의 자본주의 시대를 열 수 있게 한 원동력이다.

그렇다고 자본주의가 항상 꽃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 권력과 결탁하고 황제적 경영의 후유증으로 공황과 노동쟁의 발생으로 혹독한 사회적 비용을 치룬 적도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독과점 규제법이나 노동법 제정을 통해 공정한 경쟁질서 확립과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법적 안전장치가 만들어졌다. 최근 우리국회에서도 기업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정경제 3법과 중대재해처벌법 등을 통과시켰으며, 올 2월 국회에서는 한국판 뉴딜, 미래산업 육성을 위한 각종 규제완화 법안을 중점 처리법안으로 지정했으며, 한국판 뉴딜 관련 예산 21조원의 집행도 서두르기로 했다고 한다.

최근 일련의 입법 과정, 박근혜 전대통령의 국정농단과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 과정을 보면서 의구심을 갖고 있는 국민들이 많다. 그들이 갖는 의구심은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는 헌법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기준보다는 주관적이 판단이 앞서는 느낌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지지자들의 주관성이 오히려 객관적인 판결을 왜곡할 수도 있다. 그런데 입법 과정과 판결 내용에서 느끼지는 주관적인 징벌성은 지식인이 양반계급으로 환생한 느낌을 들게 한다.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면 기존의 법과 제도를 가지고 판단하면 될 것을 그때의 슬픔과 분노를 이용하여 징벌적인 제도를 만들어 응징하려는 접근 방법은 '빈대 한 마리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우려를 낳을 수 있다.

한 국가의 지도자라면 정책과 법안을 잘 인지하고, 이를 국민들에게 설득하고 정책을 통해 혹은 입법과정을 통해 규칙으로 제도화해 내고, 이를 일정기간 진행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국민들의 경제적 이념과 행동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평등과 경제민주화는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모든 사람들이 추구할 가치인 것만은 틀림없지만, 사회변화를 위한 만병통치약은 아닐 것이다. 현명한 국가 지도자라면 사회·경제 문제가 발생하면 국민의 분노를 이용해 통제하려고 하지 말고, 이해 관계자의 조정을 통해 사회발전을 꾀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양반계급 정신을 억누르고 과학기술의 발전과 기업가 정신을 펼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우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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