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챠오 레나토
[문화칼럼] 챠오 레나토
  • 승인 2021.03.17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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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대구문화예술회관장


챠오(Ciao-안녕) 레나토. 오랜만이야(이탈리아에서는 나이와 관계없이 친밀하게 느끼는 사람에게는 2인칭 즉 낮춤말을 쓸 수 있다) 레나토·일리아나 둘 다 여든에 가까운 나이인데 코로나19 피해 없이 무탈한지 걱정돼. 코로나 백신 접종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의 상황이 진정되지 않고 특히 며칠 전부터 북부 대부분의 지역과 중·남부 일부 지역에 락다운 조치가 내려졌던데 걱정이야. 그렇게 평화롭던 레나토 가족의 일상이 팬데믹으로 인해 예전 같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많이 아프고 슬퍼.

얼마 전 우리에게도 추억이 깃든 밀라노 대성당, 두오모(Duomo)에서 열린 ‘코로나19 희생자 추모의 밤’ 공연을 영상으로 봤어. 베르디 ‘레퀴엠’을 리카르도 샤이 지휘로 스칼라 극장 오케스트라·합창단과 솔리스트가 함께한 공연이었어. 혼신의 힘으로 노래하는 합창단, 대단히 진지하고 엄청난 집중력으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그리고 번득이는 샤이의 지휘 특히 솔리스트 중 소프라노(크라시미라 스토야노바)와 메조(엘리나 가란차)는 내가 듣기에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런 모든 조화로움으로 인해 더 큰 감동이 있었던 것 같아. 아마 레나토 가족도 그곳에서 TV중계로 보았으리라 짐작해. 나는 보는 내내 우리가 함께 한다는 유대감을 강하게 느꼈어.

고색창연하고 웅장한 밀라노 두오모 대성당 가득히 울려 퍼지는 베르디의 음악 정말 감동이었어.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이탈리아. 대성당에 가라앉은 암울함과 슬픔. 그런 가운데 음악이 주는 위로와 감동의 힘은 컸어. 이탈리아는 베르디라는 숭고한 정신의 소유자, 위대한 작곡가 단 한사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마저 들었어. 그가 없는 오페라의 세계는 상상조차 할 수 없지. 풍성한 베르디의 음악세계는 그가 사랑한 조국 이탈리아의 자연과 정신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져도 될 거야. 이러한 저력으로 팬데믹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기를 기원할게.

이날 연주는 솜씨 자랑이 아니라 우리의 교만과 어리석음을 통회하고, 희생자들에 대한 애틋한 추념의 정이 음악 속에 가득하다는 걸 느꼈어. 이러한 마음을 담은 진실한 소리가 대성당 구석구석에 울려 퍼지는 순간, 나도 연주자들과 같은 심정이 되었어. 그리고 변함없는 대성당의 모습과 그곳에서의 음악회는 옛날 우리 가족의 밀라노 생활동안 받은 레나토 가족의 크나큰 사랑을 떠올리게 했어. 사람이 살면서 이런 사랑을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해.

우리에게 그곳은 또 하나의 고향이야. 그것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싶은 고향. 약 10년 전인가? 내 딸이 그곳에 들르러 갔었지. 마침 그 때 다들 토스카나 지방으로 이미 여름 휴가차 가고 없었어.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밀라노에서 그곳 캠핑장까지 찾아 갔었다더군. 어둑해진 산중에서 독일부부의 도움으로 마침내 도착했고 함께 눈물의 해후를 했다고 들었어. 내 딸은 그냥 단순히 레나토 가족이 보고 싶어 그렇게 힘들게 그곳에 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그것은 돌아갈 수 없지만, 너무나 간절히 그 때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찾아 간 것이라고 봐.

옛날 우리가 옆집에 살게 된 인연으로 만나, 핏줄을 나눈 형제보다 더 진한 가족애로 지내온 것 정말 고맙고 행운으로 생각해. 우리가 준 것보다 받은 것이 훨씬 많았다고 생각해. 특히 슬픔까지도 진심으로 아파하고 함께 울어준 것 잊을 수가 없어. 재작년 아내와 딸이 갔을 때 “너무 늦게 왔어, 너무---”라는 레나토의 눈물 젖은 목소리를 전해 들었을 때 정말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어. 그렇지만 한국으로 돌아오고 난후 우리가족은 한시도 레나토 가족을 잊은 적이 없어. 우리가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한 가운데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언제나 서로의 숨결은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해.

지금의 팬데믹은 우리세대에서는 처음 겪는 일이라 모두가 힘든 상황이야. 우리가 치러야 할 희생이 너무 커. 그렇지만 우리는 이겨낼 수 있을 거야. 그래서 어서 빨리 레나토와 일리아나 그리고 두 아들 로베르토와 파올로를 만나고 싶어. 반드시 그런 날이 올 거야. 그때까지 힘든 이 상황을 잘 견디고 건강관리 잘 하길 바라. 일리아나가 만들어준 파스타가 최고였어. 같이 맛있는 음식 나누며 서로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볼 수 있는 날을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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