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으로 저지르는 살인
입으로 저지르는 살인
  • 승인 2021.06.02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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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심리연구소장
성경에는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이것만큼은 하지 말라'면서 십계명을 명하셨다. 그중 여섯 번째 계명이 "살인하지 말라."라는 계명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신께서 명한 살인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있다. 돈 때문에 살인을 하고, 실연당했다고 살인하고, 화가 난다고 살인을 하고, 심지어 뚜렷한 이유도 없이 살인을 하는 경우도 있다. 참으로 안타깝다.
흔히 우리는 살인의 도구를 날카로운 흉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날카로운 흉기가 아니라도 충분히 사람을 살인할 수 있다. 칼이나 날카로운 흉기로 사람의 신체에 상해를 입히거나 목숨을 끊게 하는 행위만을 살인이라 말할 수 없다. 사람을 죽이는 건 한마디 말로도 가능하다.
몇 해 전 어느 50대 여성분과 상담을 할 때였다. 그녀는 사람의 눈을 잘 쳐다보지 못했다. 항상 무언가에 눌린 듯한 표정으로 주눅 든 모습을 하고 있었고 열정과 에너지는 거의 바닥이었다. 상담이 시작되고 몇 주가 흐르고 나서야 겨우 그녀의 진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50대 중반이니 그녀의 이야기는 거의 40년 이상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 4~5학년 때쯤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체육 시간에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둥글게 원을 만들어 함께 하는 놀이를 할 때였다. 그녀는 운동신경이 너무 없는 편이라 다른 친구와 함께 수행해야 할 과제가 걱정되었다. 혹시 자기 때문에 친구들이 피해를 볼까 싶어서 선뜻 나서서 그 대열에 끼지 못하고 소극적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 쭈뼛쭈뼛 뒤에 빠져 있던 그녀를 보고 던진 선생님의 한마디는 그녀의 심장 깊숙이 비수가 되어 꽂혀 버렸다. "이 바보 같은 게 그것도 못 해?. 다른 사람 방해하지 말고 너는 뒤로 빠져" 이때 그녀는 죽었던 것이다. 이후 선생의 그 한마디가 40년 넘는 세월 동안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50이 넘은 지금도 그 선생의 말은 그녀가 사람들 속에 있을 때 들리는 그녀만이 들을 수 있는 살아있는 목소리가 되었다. 그 소리는 여전히 지금도 살아서 그녀의 삶의 전반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흉기가 아닌 가시 돋친 한마디 말이 그녀를 죽였다. 그녀는 살아 숨 쉬고 있었지만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삶이 되어버렸다. 완전히 한 사람의 인생을 짓밟아 버린 그 선생의 말 한마디는 살인 도구가 되었다.
요즘 대한민국의 교육 현장이 아이들의 생각을 죽이는 현장이 되어가는 것 같다. 답을 정해놓고 모두가 똑같은 답을 찾고 그것을 맞추는 사람은 우등생, 공부 잘하는 사람이 되고 엉뚱한 생각을 하거나 다른 답을 이야기하면 그 학생은 문제아 내지는 적응을 못 하는 아이가 되어 버린다. 초등학교 한 학급에서 선생님이 이렇게 묻는다. "어제 선생님이 얼음이 녹으면 무엇이 된다고 그랬죠?" "물이요~~"일제히 아이들이 손을 들고 대답을 한다. 그중 한 아이가 이런 대답을 했다. "봄이요~" 순간 교실에선 웃음소리가 났다. 선생님도 틀렸다고 정정해줬다.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되는 거야. 알았지? 이번 시험에 나온다. 잘 외워둬" 과연 봄이라고 대답하면 틀린 것일까? 얼음이 녹으면 따뜻한 봄이 온다는 사실을 선생님은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잊어버린 것일까? 안타까운 교육 현장이다.
필자는 바란다. 대한민국의 교육 현장이 다시 꿈꾸는 공간이 되기를. 일제강점기 시절 영화가 상영되기 전 사전 심의하는 검열관처럼 가위를 들고 다니면서 아이들의 다양한 생각을 자르고 붙여서 똑같은 모습으로 만드는 교육이 아니라 다양한 생각이 맘껏 자라도록 하는 창의적인 곳이 되기를. 아이들의 꿈이 생생히 살아 숨 쉬는 살아있는 곳이 되기를. 친구는 경쟁 상대가 아니라 함께 즐겁게 노는 동무라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곳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살인을 넓은 의미에서 보면 우리가 저지르는 일들의 많은 부분이 살인의 행위와 같다고 느껴진다. 누군가의 꿈을 죽이는 사람도 마찬가지고, 누군가의 희망을 죽이는 사람, 누군가의 기(氣)를 죽이는 사람, 누군가의 소중한 시간을 죽이는 사람. 누군가의 믿음을 죽이는 사람. 누군가의 생각을 죽이는 사람도 모두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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