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온의 민화이야기] 어해도,자산어보 집필 정약전과 화가 조정규가 서로 알았다면…
[박승온의 민화이야기] 어해도,자산어보 집필 정약전과 화가 조정규가 서로 알았다면…
  • 윤덕우
  • 승인 2021.06.02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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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못 믿는다”는 말에 오직 글로만 어류학서 기록한 정약전
소재 사용 등 화풍 남달랐던 조선후기 대표 어해도 화가 조정규
두 사람이 만났다면 세계생물학사 남을 책 탄생했을텐데 ‘아쉬움’
최근에 자산어보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다. 역사관련 영화를 주로 제작하는 이준익 감독이 제작했으며 제 57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분 대상을 받아 다시 번 회자된 영화이다.

정양용의 형 정약전이 1801년(순조 원년) 천주교 박해사건인 신유박해 때 전라도 흑산도에 유배되어 1814년(순조 14년)까지 생활하면서 흑산도 연안에 서식했던 한국의 토종 어류와 갑각류, 조개류에 대한 정보를 명칭, 분포, 생태, 유용성을 망라해 가며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특히나 그는 생물학자도 아니었음에도 그 시절에 당시는 구미 선진국에 있어서도 근대 과학적 동식물분류법이 확립되어 있지 않았을 때 인지라 그의 학문적 태도는 높이 평가할만하다.

오늘날에도 어족이나 자연사에 대한 정보를 찾기 위해 많은 학자들이 이 책을 참고하고 있다고 한다.

자산어보와 관련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자산어보는 어류 백과로서의 걸출함에 아쉽게도 그림이 없는 이유는 정약전이 동생 정약용과 의논하다 “그림은 믿을 게 못되니 오히려 글로 자세히 서술하는 게 더 나을 듯”이라는 충고를 따랐기 때문이란다. 아마 자산어보에 그림까지 있었으면 세계 생물학사에 남을 저서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나, 유배되어 형을 살고 있는 현실적 어려움이나 당시 기술의 한계 등을 고려해봐야 할듯하다.

어째든. 그 시절에 민화화가가 정약전 옆에 살았으면 지금 전해지고 있는 어해도(魚蟹圖)가 자산어보에 필요한 삽화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다시-어해도1
어해도 작가미상, 19세기 후기 수묵담채 가로 30cm X 세로 30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어해도2
어해도 작가미상, 19세기 후기 수묵담채 가로 30cm X 세로 30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어해도(魚蟹圖)란 물고기와 게를 그린 그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나, 넓은 의미에서 수중에 사는 생물을 소재로 한 그림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물론 동·서양의 물고기 그림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특히 물고기가 알을 많이 낳는 생태적인 특징이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인식되었고, 잉어는 ‘등용(登龍)’하여 입신출세하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많이 그려졌다. 또한 왕공사대부들은 물고기를 속세에서 벗어나 유유자적하는 존재로 환치시키기도 하였는데, 이처럼 어해도 제작의 주된 배경은 상징에서 찾을 수 있다.

물고기와 조개ㆍ새우를 그린 그림. 이 어해도(魚蟹圖)는 전통회화는 물론 민화에서도 많이 그려진 소재이다. 그림의 상단에서 하단 방향으로 차례로 조개와 두 마리의 새우, 그리고 마치 살아있는 듯 기어 다니는 게 두 마리가 그려졌고, 화면 왼쪽 부분에는 갈대처럼 보이는 풀이 바람에 나부끼듯 오른쪽으로 휘어져서 그려졌다. 전체적으로 연한 먹색과 푸른색이 주조를 이루어 담백하고 깔끔하게 표현되었다. 게는 수중군자(水中君子)를 상징하며, 한편으로는 장원급제를 상징하기도 한다. 새우는 나면서부터 허리가 굽었다 하여 바다 늙은이라는 의미로 해로(海老)라 하는데, 부부해로(夫婦偕老)의 해로와 발음이 같아 부부가 해로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또 새우[蝦]와 대합 조개[大蛤]는 합하여 화합[蝦蛤/和合]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옛사람들은 게를 전진과 후퇴가 분명하여 청렴함을 상징하며, 갑옷처럼 단단한 껍질에 쌓여있어 갑옷 갑(鉀)과 동음인 으뜸 갑(甲)의 상징으로 삼았다. 문자도의 청렴할 렴(廉)자의 한 획으로 게를 그려 넣는 것은 게가 청렴함의 상징인 때문이며, 벼루 장식이나 회화작품에 보이는 게는 보통 으뜸 갑(甲)의 의미를 가진 것이다. 여기에서의 으뜸이란 과거에 급제함을 뜻한다.

특히 회화작품에서는 게 두 마리가 갈대와 함께 도안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두 마리의 게[二甲]와 갈대[蘆]가 이갑전려(二甲傳?)를 뜻하기 때문이다. 이갑(二甲)이란 두 번의 으뜸, 즉 과거시험인 소과와 대과에 급제한다는 뜻이며, 이갑전려란 소과와 대과에 급제하여 영광스럽게 임금으로부터 음식을 하사 받는 것을 의미한다.
 

어해도2
어해도 작가미상, 19세기 후기 수묵담채 가로 각 35cm X 세로 68.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우리나라의 어해도는 조선 중기시대까지는 현전하는 작품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도외시되던 분야였다. 그 이후 19세기 이후 민화에서 어해도가 급증이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현전하는 작품이 많다. 그렇다면 왜 조선 후기에 접어들어 물고기 그림이 갑자기 급증했던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조선시대 초 중만 대의명분을 중시하던 성리학의 모순에서 벗어나 조선후기 영.정조시대 이후 실용적인 학문인 실학이 발전했고,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사고가 크게 중시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시켰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17∼18세기의 문인들의 관물인식(觀物認識) 변화와 자국(自國)에서 나고 자라는 동·식물 및 어류에 대한 관심을 증가시킴과 동시에 어해도의 성행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바다를 끼고 있지 않던 한양漢陽에서도 활어活魚의 관찰이 가능하게 된다. 앞서 언급했던 자산어보가 그냥 나온 책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조선후기 이러한 유행 속에 어해도를 능숙하게 그린 화가를 소개할까 한다.

임전(琳田) 조정규 (趙廷奎, 1791~?)의 어해도이다.

바위와 꽃나무, 물풀을 배경으로 우럭과 새우를 각각 두 마리씩 그렸다.

또한, 수중생물이 육지 밖으로 나와 있는 것처럼 비현실적인 상황을 연출하고 있어 물 속인지, 물 밖인지 혼동스럽지만 한 폭의 독립된 풍경화로서 전혀 어색하지 않다.

어해도에 거의 그려지지 않았던 우럭을 새롭게 차용하면서도 쌍어도 형식을 벗어나지 않았다. 조정규가 우럭이라는 소재를 애용한 것은 동음이의어와 관련 있는데, 우럭은 한자로 우럭 ‘록(?)’이며 이는 녹 ‘록(祿)’과 발음이 같다.

새우는 수염이 많고 등이 굽은 모양에서 해로(海老)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데, 해로(偕老)와 발음이 같으므로 부부해로를 바라는 길상적 의미로서 두 마리를 그린 것으로 보인다.
 

어해도-조정규
어해도 조정규 작 견본채색 112.0cm X58.0cm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소장

이처럼 어해도에서의 비현실적 구성은 중국 명나라시대부터 등장하는 특징이며 우리의 어해도에도 이러한 영향을 미쳐 장식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조정규는 자신의 어해도에 ‘복어, 우럭, 숭어’의 동음이어를 활용하여 삼복(三福)을 대표하는 복록수(福祿壽)의 의미를 담아 자신의 작품에 인용하였다. 복록수는 민간에서 바라는 다섯 가지 복 중에서 특히 중요한 세 가지 복인데, 복(福)은 모든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록(祿)은 관직에의 등용으로 출세를 의미하며, 수(壽)는 장수를 의미한다. 이전에 찾아볼 수 없었던 독특한 복록수 구성은 첨절제사(僉節制使)로서 해안지역에서 주로 근무했던 조정규가 수생동물들의 명칭과 생태에 대해 이미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던 결과로 보인다. 아마도 정약전과 동시대를 살았다면 자산어보가 더욱 풍성한 삽화와 그림으로 탄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다시 자산어보로 돌아가 보자. 정약전은 흑산도에 살면서 그들이 먹는 어류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정치나 종교와 같은 세상의 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백성들의 삶에 관심을 두고 자신이 세상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세상에 얼마나 필요한 사람이 될 것인지를 고민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다가올 밝은 미래가 원하는 ‘꼭 필요한 우리들’, 다음 세상을 준비하며 우리 모두가 마음을 부여잡아야 할 이유인 듯 하다.

<박승온ㆍ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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