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다시
잠들려고 합니다
일몰의 그늘에서 깃발을 내리듯
순순한 육신을
꽃가지처럼 드리우고
활개 쳐 선 갈 수 없는
요요한 꿈속으로
새털같이 즐겁게 떠나려고 합니다
사실, 지금 다시 잠들지 않아도
나는 사철 잠들어 있었습니다
눈 뜬 자의 지혜에
불을 켜지 못하고
산 자의 고요가
독약보다 슬프게 퍼지는 것을
장승처럼 그냥 서서 보았습니다
이제 새삼 잠든다는 것은
우스운 일입니다
이제 거듭 잠든다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이 절정의 죄짓는 나를
흔들어 주십시오
제발,
이 막판의 어리석은 나를
매질하여 주십시오
◇이향아= 『현대문학』 추천으로 문단에 오른 후,『별들은 강으로 갔다』등 시집 23권.『불씨』등 16권의 수필집,『창작의 아름다움』등 8권의 문학이론서를 펴냄. 시문학상, 윤동주문학상, 한국문학상, 아시아기독교문학상, 신석정문학상 등을 수상함. 현재, 국제P.E.N한국본부 고문, 한국문인협회, 한국여성문학인회 자문위원. <문학의 집· 서울> 이사. 호남대학교 명예교수.
<해설> 아름다운 자책의 애감이 슬픔이 아니라 기쁨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마 승화된 육필의 기록이 있기에 그러하리라. 철학적으로 함축된 고운 시다. -제왕국(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