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시론> 화해와 용서로 분노와 저주의 불을 끄자
<팔공시론> 화해와 용서로 분노와 저주의 불을 끄자
  • 승인 2009.02.12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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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로 (계명대학교 국제학대학 중국학과 교수)

나라가 온통 불난리다. 용산 재개발정책에 저항하던 시민들의 시위현장에서 발생한 불로 참사가 발생하였다. 진압하던 경찰관의 희생도 있었다. 국민들의 분노 속에 책임자가 물러났다. 분노와 억울함을 호소하던 과정에서 발생한 화재 참사는 불이 꺼진 뒤에도 여전하여 또 다른 분노와 저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한 해 우리는 뜨거운 불길 속에서 살았다. 처음에는 촛불이라는 작은 불에서 시작되었다. 미국의 광우병쇠고기 수입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시작된 촛불시위는 국민들의 마음에 분노의 불을 질렀고 거리를 온통 불꽃으로 뒤덮이게 하였다.

촛불시위에서 시작된 마음의 불꽃은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 속에서 대지의 가뭄으로 더욱 국민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여름 내내 비가 거의 오지 않아 대지가 불 타들어갔다. 한 해에 서너 차례 꼭 다녀가던 태풍조차도 지난해는 없었다. 지금도 우리는 물 부족과 가뭄으로 괴로움을 당하고 있다.

석유류 가격이 급등하면서 유가에 불이 붙었다.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이 2천원을 넘나들고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을 넘어서기까지 하였다. 게다가 외환시장에도 불이 났다. 미국의 금융위기로 시작된 환율위기는 수출 위주의 우리 경제에 큰 타격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내수경기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세계경제위기의 불길 속에서 국민들의 마음이 검게 타들어가는 마당에 국회에서 일어난 불은 국민들을 더욱 암담하게 하였다. 여당과 야당은 세계경제의 위기 속에서도 대화의 물길을 끊어버리고 끝없이 대치하였다. 결국 지난 연말에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렸으며 아직도 그 불씨는 꺼지지 않고 있다. 북한 김정일까지 남한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엄포를 계속하고 있다.

세상을 태우던 불꽃이 마침내 국민들의 마음속으로 옮겨 붙었다. 주부들은 시장경제가 어려워 불이 나고 직장인들은 다니던 직장에서 쫓겨나서 불이 나고 대학졸업생들은 취직이 되지 않아 불이 난다. 우리 국민들의 마음속에서 세상을 향한 분노의 불꽃이 무섭게 일어나 온통 불바다로 만들 기세이다.

불타는 세상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 것인가? 맨몸으로 불길에 뛰어들어 맞서 싸울 것인가? 불길은 애초에 잡지 못하면 감당할 수 없이 거세진다. 거센 불길에 뛰어들어 끄겠다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다 탈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무모하게 불을 맞서서 싸우다가는 내가 불탄다.

일단은 안전한 곳으로 피하고 난 뒤에 그 불이 어디로 타고 있는지 어떻게 꺼야 할 것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우선 끄기 쉬운 곳부터 불길이 약한 곳부터 꺼들어 가야 한다. 불이 왜 일어났는지 누구의 잘못인지는 불을 끄고 난 뒤에 알아봐야 할 것이다.

세상의 불은 물로 끌 수 있다. 아무리 거센 산불도 비가 오면 순식간에 꺼지기 마련이다. 물만 있으면 얼마든지 끌 수 있다. 문제는 세상의 불보다 더 무서운 것이 사람 마음의 불이다. 우리들의 마음에서 솟구쳐 오르고 있는 분노와 저주의 불길을 무엇으로 끌 수 있겠는가?

마음의 불은 남이 아닌 나를 먼저 불태워 버리기에 더 무섭다. 불은 우리를 온통 재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서두르다가는 오히려 불에게 희생될 수가 있다. 좌충우돌 하다가는 그나마 남는 것 없이 자신을 태워버릴 수도 있다. 이럴 때 일수록 냉정하고 차분하게 불길을 살펴야 할 것이다. 불은 언젠가 꺼지고 우리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불을 끄는 것이 물이라면 마음의 불을 끄는 것은 화해와 용서이다. 불같은 분노로 불에 맞서 싸우다가는 결국 자신이 희생될 수밖에 없다. 화해와 용서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타오르는 분노와 저주의 불을 꺼야 한다.

분노와 저주라는 거센 불길과 맞서 싸우다가 허무하게 죽을 것인지 아니면 화해와 용서라는 비가 오기를 기다려 다시 새로운 삶을 도모할 것인지 우리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물처럼 냉정하면서도 얼음처럼 차가운 지혜를 가지고 불이 꺼지기를 기다리자. 지금은 불이 너무 거세게 타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좌절과 절망 때문에 포기한다면 불이 꺼지고 난 뒤 무엇으로 다시 시작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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