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청구서가 날아올까?
어떤 청구서가 날아올까?
  • 승인 2021.08.11 20:2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석형 객원논설위원
지난 7월 27일 북한이 일방적으로 판문점 채널 등 남·북간 모든 통신연락선을 끊은 지 13개월여 만에 직통연락선이 전격적으로 복원되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통신연락선 복원은 앞으로 남북 관계 개선과 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많은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한이 우리의 연락선 복원 요구에 호응했다는 것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라기보다는 필요한 무언가를 우리에게서 얻어내기 위해 잠시 태도를 바꾼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는 지난 50여 년간 남북관계에서 북한이 일관되게 보여준 행태에 따른 학습효과이다.
남북관계에 있어 북한의 몽니는 철부지 아이가 응석을 부리는 것처럼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잠시 화해무드로 나왔다가 소기의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판단하거나, 기대가 충족되지 못할 것으로 판단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돌변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이러한 북한의 변화무쌍한 화전양면전술에 대해 정권에 따라 대응을 달리하여 남북관계가 경색 국면에 들어서거나 화해 국면을 맞이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 정부의 대응은 부처님이나 예수님 같이 한없이 인내하면서 모두 받아주는 것 같아, 범부(凡夫)의 눈에는 답답하기 그지없다. 즉 2018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문대통령은 "판문점의 봄이 평양의 가을로 이어졌다"고 하였지만, 북한은 보란 듯이 남북연락소를 폭파했고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실험하였으며, 표류중인 우리 국민을 해상에서 구조 대신 사살하였다. 심지어 우리 국민의 대표자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삶은 소대가리', '특등 머저리' 라며 조롱하는 것도 자신을 알아달라는 대화 재개를 위한 전주곡 정도의 표현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니, 국내 정적에 대해서는 냉혹하리만치 엄격하면서, 우리 국민의 안전에 최대 위협적인 존재인 북한에 대해서는 어찌 이렇게 너그러울 수 있는지 참으로 이해하기가 힘들어진다.
이번 통신선 복원에 있어서도 곧 어떤 청구서가 날아올 것이라는 우리의 예상을 실망시키지 않고, 북한은 8월 중순 예정된 한미 연합훈련에 대해 딴지를 걸고 나왔다. 즉 북한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은 한미 연합훈련에 대해 '통신선 복원은 단절됐던 것을 물리적으로 다시 연결시켜 놓은 것뿐이며, 며칠간 자신은 남조선 군과 미군과의 합동 군사 연습이 예정대로 강행될 수 있다는 기분 나쁜 소리들을 계속 듣고 있다며 이는 북남 관계의 앞길을 더욱 흐리게 하는 재미없는 전주곡이 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사실 한미연합훈련은 2018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미국과 북한의 첫 정상회담 이후 줄곧 중단되거나 축소된 형태로 실시되어 유명무실한 훈련이 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한미 연합훈련 역시 코로나와 그 외 북한과의 정치적 관계 때문에 과거에 비해 엄청 축소되어 야외 실제 기동 훈련 없이 컴퓨터 시뮬레이션(모의 훈련)으로 실시하는 지휘소 연습에 불과한 훈련이다. 그러나 훈련의 중지 및 축소문제는 연합훈련이기 때문에 한미 당국에 의해 결정될 사안으로 우리 정부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 이런 가운데 바이든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위해 먼저 '대가'를 지불하지 말아야 한다는 시각이 팽배하여 연합훈련 축소 등에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정부를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다.
북한의 연합훈련 중지 요구에 대해 통신선 복원에 환영 일색이던 정부·여당 안에서도 훈련을 연기하자는 쪽과 예정대로 해야 한다는 쪽으로 이견이 분출하기 시작하였고, 야권에서는 작년 공동연락사무소 폭파와 일방적인 통신선 단절에 대해 사과 한마디 없이 선심 쓰듯 통신선을 복원해 놓고는 내정간섭에 해당하는 연합훈련 중단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다고 비판을 하고 있어 정부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는 듯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문대통령은 지난 4일 군 지휘관회의에서 여러 가지를 고려해 미국 측과 긴밀히 협의하라고 지시하였다고 한다,
북한의 이러한 생떼는 비단 어제오늘이 일이 아니고 그들이 늘 해 오던 일이다. 이를 통해 우리 내부의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한·미간 공조의 틀에 균열을 일으키려는 책략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일이다. 이미 연기와 진행이라는 논란이 야기된 만큼 북한은 그들의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약 그들의 요구대로 훈련을 취소하지 않으면 이를 핑계로 언제든지 다시 연락망을 단절할 명분으로 삼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훈련을 취소하거나 연기한다고 하여도 북한은 늘 그래왔든 것처럼 또 다른 청구서를 내밀 것은 분명하다. 이제 훈련은 시작되었다. 북한이 어떤 청구서를 내밀까 궁금해진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