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 분쟁’ 박정현 작가, 7년 만에 억울한 누명 벗었다
‘표절 분쟁’ 박정현 작가, 7년 만에 억울한 누명 벗었다
  • 황인옥
  • 승인 2021.08.1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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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몽주 작가, 박 작가作 ‘방해’ 두고 표현 방식 같다며 표절 주장
재판부 “창작성 있는 표현만 본다면 실질적으로 유사하지 않아”
미술계 “외관상 비슷해 보인다고 해서 표절이라 말해선 안돼”
박 “과거 대구지법 결정으로 작품 철거…잘못된 결정 책임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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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현 작가의 대구미술관 전시작인 ‘방해(disturbing)’. 박정현 제공

‘표절 작가’로 낙인 찍혔던 박정현 작가가 억울한 누명을 벗게 됐다. 지난 6월 24일 부산고등법원 민사6부(부장판사 박준용)는 부산 출신 손몽주 작가가 대구의 박정현 작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했고, 손몽주가 상고를 포기하여 판결이 확정됐다. 가처분 등 소송이 제기된 지 7년 만에 박정현의 승소가 최종 확정된 것이다.

◇ 손몽주와 박정현의 미술 작품을 둘러싼 저작권 소송 과정

소송의 발단은 대구미술관 전시 ‘Y아티스트 프로젝트’다. 대구미술관이 유망한 신진 작가를 발굴, 지원하는 프로젝트에 박 작가가 최종적으로 선정되어 2014년 3월부터 작품을 전시하게 됐다.

그 이전부터 ‘불편함’을 주제로 작업해 오던 박 작가는 육체적 불편함과 정신적 불편함을 표현한 두 개의 설치 작품을 대구미술관에 전시했다. 손 작가는 SNS, 언론 등을 통해 고무줄을 이용한 대구미술관 전시 작품 ‘방해(disturbing)’가 자신의 작품을 표절했다고 문제를 제기했고, 이후 ‘미술저작물 전시 금지 가처분 신청’ 등 소송을 제기했다.

손 작가가 제기한 가처분신청을 대구지법이 인용하면서 박 작가의 작품 ‘방해(disturbing)’가 전시 도중에 철거되는 미술계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박 작가는 가처분 결정에 대해 불복하여 이의신청을 했지만 번복되지 않았다.

그 무렵 부산의 한 언론사에 박 작가가 손 작가에게 연락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는 기사가 실리면서 박 작가의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다. 박 작가는 “대구미술관이 불필요한 사건의 확산을 방지하고자 미술관 관계자와 저와 함께 손 작가를 만났다. 어찌됐던 이런 일이 생겨서 안타깝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사과 했다’는 기사가 실려 더욱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한편, ‘미술저작물 전시 금지 가처분 신청’ 소송은 판결 확정 후에 상대방의 취하로 종결된 상태다.

손 작가는 가처분신청에 이어 2014년 6월 16일에 박 작가를 상대로 부산지방법원에 저작권침해로 인한 5천만 원의 손해배상 등을 청구하는 소송도 제기했다.

박 작가는 “손몽주가 자신의 표현형식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설치미술작가들이 설치하는 과정에 나오는 통상적인 방법일 뿐만 아니라 보편적인 기본적 형태로 손몽주의 독창적 기법이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으나, 부산지방법원은 법원은 2017년 2월에 “피고(박정현)는 원고(손몽주)에게 1,251만여 원을 배상하고 고무줄을 이용한 설치미술작품의 제작·공표를 금지하라”는 판결을 선고했다.

이에 두 작가 모두 항소했다. 박 작가는 법원의 판단이 전부 잘못되었다는 것이, 손 작가는 배상액이 적다는 것이 각각의 이유였다.

이후 4년이 경과한 2021년 7월에 부산고등법원은 박 작가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는 판결을 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고와 피고 사이의 작품에서 ‘외관상’나타나는 표현형식은 유사한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원고(손몽주) 작품의 표현형식 중 저작권법으로 보호되지 않는 아이디어나 공유에 속하는 것을 제외한, 창작성 있는 표현만을 놓고 볼 때, 양자 모두 각자가 공간을 나름대로 독창적으로 해석한 다음, 각자의 해석을 형상화한 것으로서 관람객이 받게 되는 심미감에서 차이가 있다”고 하면서 “각 작품별로 설치공간을 해석한 방식에 차이가 있고 표현이 다르게 나타나 실질적으로 유사하지 않다”고 판시했다.

박 작가는 이번 판결을 이끌어 낸 김인석 변호사에게 “미술작품 표절과 관련된 저작권분쟁은 특수한 분야여서 어려움이 많았을 것인데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내 주어 고맙다”며 감사를 표했다.

◇ 국내 미술계의 반응들

작품 표절과 관련한 박 작가와 손 작가의 법적 공방은 국내 미술계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가수 조영남의 대작 사건과 함께 국내에서 미술작품을 둘러싼 저작권 침해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하면서, 박 작가와 손 작가의 작품 표절 공방에도 미술계가 예의주시했다. 법원의 가처분 결정 및 본안 1심 판결과 달리 미술계에서 박 작가의 표절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미술이론을 전공한 오은실 박사는 국민대학교 박사학위 논문과 한국미술이론학회지 ‘미술이론과 현장’에 게재된 “현대미술의 표절 논쟁에 관한 연구: 손몽주와 박정현의 사례를 중심으로”에서 두 작가 사이의 표절 공방을 적극 다루면서 논문 말미에 “재료와 표현 형태의 유사성만을 강조한다면 손몽주 역시 이수진, 닉 블레어(Nic Blair), 시모다이라치나쯔 등과 비교할 때 자신이 박정현에게 제기한 것과 같은 주장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며 “동시대미술인에게 같은 재료와 비슷한 표현 형태가 만날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한다. 표절 의혹을 제기할 때는 상대 작가 및 작품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고 신중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이정 미술평론가 역시 “고무줄은 너무 흔한 재료여서 누가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없으며, 고무줄이 공간을 점유한 유사한 외형의 설치 작품은 해외에도 이미 선례가 많고, 신축성을 띤 재료를 사용한 설치 작품은 외형이 대동소이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견해를 피력했으며, 부산고등법원의 판결 선고 후에는 시사저널 등을 통하여 “외관상 비슷해 보인다고 해서 함부로 표절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냈다.

◇ 가처분결정이 남긴 과제

비록 박 작가가 본안에서 최종 승소했지만, 그 과정에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후 영국으로 건너가 공간 및 설치미술을 공부하고 돌아와 작품 활동을 본격화 하면서 장래가 유망하던 박 작가에게 가처분 및 소송 사건은 무려 7년 이상이나 작가로서의 불명예와 작품제작 및 전시의 중단, 그리고 그로 인한 경제적인 손실을 안겼다.

박 작가는 특히 가처분 신청에 대해서 “SNS 등을 통한 비난으로도 충분했을 텐데, 같은 분야에서 활동하는 작가로써 가처분이라는 법적인 절차를 밟았어야만 했는지, 그 과정에서 대구시장에게 투서를 넣으면서까지 신속한 철거를 요구했어야만 했는지, 또 법원은 가처분 결정을 그렇게 속전속결로 판단을 해서 철거결정을 했어야 했는지 묻고 싶다”면서, “최종적으로 나의 작품이 저작권침해가 아니라는 판정이 난 것을 생각하면 법원이 그러한 잘못된 가처분 결정에 대해서 무언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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