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기억과 화해의 비’는 어디 있는가? -코로나19 ‘낙인 효과’를 멈추자
우리의 ‘기억과 화해의 비’는 어디 있는가? -코로나19 ‘낙인 효과’를 멈추자
  • 승인 2021.08.1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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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호 대구시의사회 부회장 대경영상의학과 원장

일본 교토현 우지(宇治)시의 아마가세 구름다리 근처, 한적한 강가에 소박한 시비(詩碑)가 하나 있다. 삶 자체가 별이요 바람이었던 저항시인 윤동주의 시비가, 용서와 화해의 의미를 품고 조용히 서 있다. 이 시비는 일본 시민들이 주축이 된 기념비건립위원회(대표: 안자이 이쿠로安育郞-리쓰메이칸 대학 특명교수)의 모금으로 제작되어 '시인 윤동주 기억과 화해의 비'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시비의 건립 과정에도 한일 양국 시민들의 화해의 의미가 깃들어 있지만, 윤동주 시인이 연희전문대학 재학 시절(1941)에 쓴 시, '새로운 길'이 한국어와 일본어로 적혀 있어 '기억과 화해의 비'라는 이름에 손색없다. 이 시비는 진정한 의미의 반성과 용서, 화해가 무엇인지 큰 화두를 던져 준다.

한일 양국의 국제적인 화해와 협력이 미래를 향한 대외적인 큰 숙제라면, 우리 사회 내부에는 그에 못지않은 다른 큰 문제가 있다. 코로나19 감염자에게 찍힌 소위 '낙인 효과'가 가져온 사회적 갈등이 바로 그것이다.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는 이유만으로 평소 친했던 지인들이 피하고, 직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따가운 시선에 징계까지 받는 경우도 있어 현대판 '주홍글씨'가 따로 없다. 심지어 당사자가 진정어린 반성을 표하고 처벌을 받더라도 비난이 멈추지 않으며 사회적 증오의 대상이 되기까지 하여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과도한 인신 공격성 비난은 코로나19로 인한 피해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전가하여 화풀이하는 것에 다름 아니며, 외국에서 일어나는 동양인에 대한 증오 범죄와도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잘못을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적정선을 넘어서는 맹목적인 비난은 서로를 불신하게 하고 사회적 불평, 불만의 폭발을 가져와 결국 모두가 불행하게 된다.

작년 2월,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특정한 종교집단으로부터 그리고 특정한 시설에서 대단위로 전파되었던 때부터 우리는 특정 종교인들과 방역수칙을 어기고 유흥을 즐기다가 감염된 사람들을 비난해 왔다. 그들은 가해자이고 나는 선의의 피해자라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로 그들의 행위를 비난하던 것이 당연한 사회적 분위기로 고착되어 가고 있다. 모두가 패자가 되는 이러한 악순환은 이제 멈춰야 한다. 언제까지 서로를 범죄자로 '낙인' 찍는 바보짓을 계속 할 것인가. 일례로, 얼마 전 일부 프로야구 선수 일부가 방역수칙을 어기고 숙소에서 술자리를 하다가 적발되어 중징계를 받았다. 코로나19가 확산되어 전 국민이 고통 받는 어려운 시기에 공인인 프로야구 선수들이 방역수칙을 위반한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었다. 당사자들은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와 반성의 뜻을 밝혔으며 구단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았으나 그 이후에도 비난은 멈추지 않았다. 그 중 P 선수는 다양한 분야에서 총 8억여 원을 기부하는 등의 조용한 선행으로 '기부 천사'로 불리며 사랑복지공동모금회가 선정한 2020년 사랑의 골든글러브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으나 그 모든 선행에도 불구하고 영구 퇴출의 위기에 몰려 있다.

정부의 방역정책에 정면으로 반항하고 대면 집회를 당당하게 계속하는 일부 종교 집단이나, 방역당국의 집회 자제 요청을 무시하고 3,000명이 모여 대규모 시위로 세를 과시하는 단체는 아직도 당당히 거리를 활보하는 것에 비해 너무 대조적이다. 이들은 사회적 비난과 당국의 처벌도 무서워하지 않고 일말의 반성도 없이 또 다른 방역 위반을 예고하지만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퇴출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힘 있는 단체에 대한 무기력한 솜방망이 처벌과 그에 대비되는 개인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형평성 차원에서도 결코 용납되어선 안되는 비상식적인 행태로, 조속히 해결해야 할 우리 모두의 숙제이다.

방역 수칙을 위반하고 국가공동체에 손해를 끼친 것을 무조건 용서하자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방역 수칙을 공공연하게 위반하고 조금의 반성도 없는 이들의 행위는 관용 없이 더욱 철저하게 엄벌해야 한다. 그러나 진지한 반성을 다하고 방역 수칙 위반에 상응한 처벌을 받았다면 용서와 화해로 감싸 안아야 한다. 모두가 지쳐있는 바로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분노와 비난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 포용하는 마음일 것이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꽃피는 서로간의 동료의식과 연대가 바로 이 거대한 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큰 힘이 아닐까.

필자는 내년도 프로야구에서 P 선수가 힘차게 뛰는 모습을, 다시 기부 활동을 하는 미소를 보고 싶다. 코로나19에 감염되었던 확진자가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히 사회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코로나19에 감염되면 걱정해주고 위로해주는 따뜻한 사회 분위기를 느껴 보고 싶다. 실수를 반성하는 사람들에게 용서를, 코로나19로 피해 받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그리고 우리 서로에게 따뜻한 화해의 손을 내밀어 '위드(with) 코로나'를 넘어 '윈(win) 코로나'로 함께 나아가자. 용서하고 화해하고 단합할수록 우리는 강해진다.

오늘도 시인 윤동주는 별이 바람에 스치우는 그 시골의 고즈넉한 강가에서 '새로운 길'을 노래하고 있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과연 우리 마음속의 '기억과 화해의 비'는 어디 있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어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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