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한 번 합시다”
“운동 한 번 합시다”
  • 승인 2021.08.3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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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진-성서경찰서장
정태진 대구성서경찰서장
여름의 끝자락이다. 걷기 예찬론자인 나는 삼복더위에도 시간이 허락하는 한 많이 걸었다. 내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며 출퇴근은 가급적 걸어 다녔다. 점심시간은 구내식당에서 이른 식사 후 사무실 근처에 있는 와룡산을 자주 다녀왔다. 퇴근 후에는 두류공원, 계명대 캠퍼스를 걸어며 백일홍, 능소화를 마음껏 보았다. 신사복을 차려입고 걸을 때는 빳빳하게 다려진 셔츠 속으로 흐르는 땀이 불쾌하지만, 운동을 작정하고 간편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빠른 속도로 걸을 때는 바다가 비에 젖지 않는 것처럼 흐르는 땀이 두렵지 않고 오히려 상쾌하다.

차를 타고 몇 번을 가도 보지 못했던 풍광을 걸어가면 볼 수 있다. 같은 장소를 지나쳐도 갈 때, 올 때 그 느낌이 다르다.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의 의미를 알게 된다. 112신고빈발지역, 여성안심귀갓길을 참모들과 함께 걸어 다니며 살펴본다. 일석삼조다. 관내 범죄취약지를 파악하고 대응책을 생각한다. 직원들과 대화하며 공감대를 높인다. 자연스럽게 운동이 되는 것은 덤이다.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5,000미터와 1만미터 그리고 마라톤에서 우승한 체코슬로바키아의 육상선수 에밀 자토페크는 "물고기는 헤엄치고, 새는 날고, 인간은 달린다."고 했지만, '걷기'는 모든 운동의 기본이며, '달리기'의 선행단계로서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 인류의 조상 호모에렉투스(Homo erectus)는 직립보행인간을 뜻한다. 두 발로 걷게 되면서 손이 자유롭게 되고 도구와 불을 사용하게 되면서 인류발전사에 획기적인 도약이 가능했다. 행복의 조건으로 많은 이들이 운동을 꼽는다. 운동은 건강을 매개로 하여 행복의 조건이 되기도 하지만, 운동 자체가 행복감을 주기도 한다.

독일연방의회 의원이자 '나는 달린다'의 저자 요슈카 피셔는 사람이 일정한 거리를 규칙적으로 반복하여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전혀 힘들지 않고 헤로인이나 모르핀을 투약했을 때 나타나는 의식상태나 행복감을 느끼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경험하게 된다고 했다. 일부 학자는 운동시에 베타 엔돌핀이 5배 이상 증가하는데 진통제 효과의 수십 배에 달한다고 한다. 나는 속보로 걸으며 '워커스 하이'(walker's high)를 경험한다. 일정시간 걷기를 지속하면 근심이 사라지고 복잡했던 생각이 정리된다. 어려운 일들의 실마리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지인들이 운동 한 번 하자고 가끔 제안하는데 그때마다 나는 움츠려진다. 그들이 의미하는 운동은 대부분 '골프'인데, 나는 골프를 잘 치지 못하고 라운딩할 시간여유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60∼70년대 우리나라는 한일국교정상화에 따른 배상금, 파독 광부·간호사의 임금과 독일 차관, 월남전 파병 장병의 피땀으로 마련한 종자돈으로 경제 근대화의 초석을 다졌다. 먹고 살기 힘든 시기였지만, 외국 바이어 접대를 위해 골프장이 하나 둘씩 만들어졌다. 골프는 일부 부유층의 운동으로 시작되었지만 이제는 대중화되어 운동의 대명사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들은 노래연습장과 골프연습장 숫자에 놀라는 동시에 K팝의 기초토양과 LPGA에서 한국 낭자들이 선전하는 이유를 알게 된단다. 코로나 시대 동이족의 후예들은 음주가무를 자제하는 대신 골프 공략에 열중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명품을 좋아한다. '한정판매 명품구매에 장사진' 뉴스는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몸에 걸치는 옷·신발·가방은 물론 차, 술, 운동까지도 명품이 선호된다. SKY대학도 명품이고, 대구에서는 학군 좋은 주거지인 범사만삼(범어4동, 만촌3동)도 명품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명품운동 골프 라운딩은 짧은 스윙 시간외에는 거의 대부분 걷는 시간이라 좋은 운동이다. 명품은 물건 자체로 소장가치가 있기도 하지만, 비싸서 쉽게 가지지 못하는 만큼 명품구매에는 약간의 과시욕이 동반되기도 한다. 골프장 이용료가 지금보다 70% 이상 떨어진다면 골프인구는 늘어날까? 한국에서는 비싸야 잘 팔린다는 말도 있으니 예측이 쉽지 않다.

"주말에 저랑 같이 운동하실 분 누구 없습니까? 다만, 이번 운동은 잔디밭에서 하는 명품운동이 아니라 앞산 걷기입니다." 대구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경치 좋은 곳에서 함께 걸으며 땀 흘리고 맥박수를 높이다 보면 누구나 친구가 된다. 사전부킹이 필요없고 타수걱정, 그린피걱정 안해도 되니 얼마나 좋은가. 가는 여름을 아쉬워 하며 저와 친해질 소소한 행복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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