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보다는 누림
소유보다는 누림
  • 승인 2021.09.0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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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심리연구소장

사람들마다 습관이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다. 필자에게도 오랜 습관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밥 위에 반찬을 수북이 올리는 습관이다. 혼자서 밥을 먹을 때는 괜찮겠지만 식사 대접을 받는 자리이거나, 조금은 격식을 차려야 하는 식사 자리에서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밥 위에 반찬이 수북이 올려져 있는 모습을 발견하면 참으로 부끄럽다. 누가 뺏어 먹는 것도 아닌데 내 밥그릇에 반찬을 올려놓다니, 다시 생각해도 부끄럽다. 이런 나의 습관은 어릴 때 가정환경 때문이다.

필자가 어릴 적에는 먹을 것이 참 귀했던 것 같다. 필자의 부모 세대, 혹은 그 윗세대가 들으시면 콧방귀를 뀌며 웃으실지 모르겠지만 필자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늘 먹을 것이 귀했었다. 한창 자랄 때라 그런지 밥을 먹었는데도 돌아서면 배가 고팠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식탐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더 보태어 필자의 집에는 부모님의 뜨거운(?) 사랑에 의해 7명의 형제가 있었다. 그래서 늘 먹는 것을 두고 경쟁을 벌여야 했다. 맛있는 반찬이 나온 날이면 서로 더 먹기 위해 경쟁했었다. 나의 기억에는 맛있는 음식을 풍족히 먹어본 경험이 별로 없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음식을 먹을 때마다 음식의 맛을 천천히 음미(吟味) 하기보다는 그냥 배속으로 채우기 바빴다. 온전히 음식을 먹는 순간을 즐기기보다는 그냥 배속에 가득 채우려고 하였던 것이다. 입에서 음식이 머물 시간 없이 그냥 배속으로 직행이었다. 그러한 나의 행동이 하나의 습관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지금은 먹을 것이 넘쳐나고 뺏어 먹는 형제도 없는데 여전히 나는 밥 위에 반찬이 올려져 있다.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해외여행이 많이 제한되었지만 코로나 이전에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해외여행을 많이 나갔었다. 특히 젊은 층의 해외여행이 많아졌다. 이런 현상은 젊은 층이 더 이상 젊음을 비축(소유)하기보다는 젊음을 소비(누림)하려는 생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욜로(YOLO)족의 탄생도 이와 비슷한 이유에서다. 하지만 해외여행을 가보면 여전히 우리는 소유하려는 습관은 버리지 못한 모습을 많이 발견한다. 아름다운 외국의 거리와 자연, 그리고 사람들의 모습을 직접 보고 만지고 맛보고 즐기기보다는 사진기 셔터를 누르기 바쁘다. 그래서 사진기 안에는 수백, 아니 수천, 수 만장의 사진을 담기도 한다. 바로 소유하려는 습성 때문이다. 필요한 만큼만 쓰고 필요 없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 양보하면 되는데 이게 잘 안 된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필요 이상의 것을 소유하려 한다.

신(神)이 만든 좋은 성능의 눈을 두고 우리는 인간이 만든 손바닥보다 작은 카메라 액정으로 세상을 보기 바쁘다. 비싼 돈 주고, 귀한 시간을 내어서 멀리까지 갔다면 온전히 눈으로 그득 담는 게 훨씬 더 좋다. 카메라 너머 세상은 이미 나보다 누군가가 더 멋지게 찍어서 블로그에 올려뒀다. 그러니 우리는 애써 카메라에 담으려 할 필요가 없다. 여행지의 아름다운 풍경은 이미 TV 여행 프로에서 동영상으로 더 멋지게 담아 두었다. 이제 여행을 가면 내 눈과 귀, 입과 손으로 그 순간을 누려 보도록 하자.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맛보고, 느껴 보도록 하자. 그래야 여행이 진짜 여행 같아진다. 우리 몸은 최신 컴퓨터보다 더 정교해서 직접 만지고 느낀 것을 사진보다 더 정확하게 추억의 창고에 저장한다. 그러니 잊어버릴까 걱정 말고 사진으로 소유하려 하기보다는 누리려 노력하는 오감 여행을 해보자. 여행은 담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직접 느끼고 맛보아 체험하러 가는 것이다.

소유할 때보다 온전히 있는 그대로 누릴 때 세상은 훨씬 더 아름답다. 봄에는 온전히 봄의 품에 안기는 게 좋다. 봄이 당신을 안고 봄의 이야기를 들려줄 테니까. 숲에서는 온전히 숲의 품에 안기는 게 좋다. 숲이 당신을 안고 숲 속 눈 크고 겁 많은 친구들을 소개 시켜 줄 테니까. 선한 눈빛으로 보아주고 착한 몸으로 나무를 쓰다듬기만 해도 당신은 나무가 되고 솔바람이 된다.

이제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가을을 맘껏 누려보자. 우리의 젊음을,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을 맘껏 누리며 살아보자. 온전히 누릴 때 세상은 훨씬 더 아름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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