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진실로 사랑하게 된다 (知卽爲眞愛)
알면 진실로 사랑하게 된다 (知卽爲眞愛)
  • 승인 2021.09.0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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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대구예임회 회장 전 중리초교 교장
몇 년 전 동해시와 삼척시의 경계에 있는 두타산 아래 무릉계곡에 간 적이 있었다. 그 무릉계곡의 커다란 반석(盤石)에는 그곳을 다녀간 옛 선비들의 이름과 유명한 글씨들이 새겨져 있었다. 눈에 띄게 '유한준(兪漢雋)'의 이름도 커다랗게 음각되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유한준은 조선후기 영·정 시대의 유학자이다. 다방면에 뛰어난 그는 김광국의 그림에 발제로 '지즉위진애(知卽爲眞愛)'라는 글을 남겼다. '알면 진실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진실로 보게 되고. 진실로 보게 되면 가지게 된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지(知)'는 활에서 화살(矢)이 나가듯이 입(口)에서 나오는 말을 일컫는다. 말이란 많이 알고 있어야 화살처럼 빠르게 나온다. 또 말은 사람 마음의 아주 작은 떨림까지도 나타내는 것이므로 '알다. 알리다. 친한 친구. 슬기. 앎.' 등의 의미로 뜻이 전달되기도 한다.
'앎(知)'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그 방법이 최상의 지름길이다.
중국 위나라 동우(董遇)는 가난한 집에서 책을 많이 읽어서 조조에게 발탁되어 벼슬을 하게 되었다. 나중에 간신들의 모함으로 조조에게 쫓겨나 시골에 살게 되었다. 이 때 동우의 학문을 흠모하던 사람들이 찾아가 배움을 요청하였다. 동우는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라는 말로 그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책을 백 번 두루 읽으면 그 뜻을 저절로 알게 된다.'는 뜻이다.
유한준의 아들 흠영 유만주(兪晩柱)는 이름난 독서광이었다. 유만주는 21세부터 죽을 때까지 13년간 24권의 일기를 썼다. 바로 『흠영(欽英)』이다. 흠영의 일기는 연·월·일의 시대 순으로 나열되어 있으며 그 당시의 생활상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유만주의 일기에, 조선 동국진체(東國眞體)의 서예 최고인 원교 이광사(李匡師)에 대한 내용이다.
이광사는 유배지인 외딴 섬(薪智島)에서 박씨를 심었다. 박이 열리자 속을 파낸 다음 옻칠을 해 단단하게 만들어 두고, 비단이며 종이에 쓴 자신의 글씨 작품 하나하나에 낙관을 찍고는 돌돌 말아 그 박속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단단하고 질긴 물건으로 구멍을 봉하고 옻칠로 틈을 메워 바닷물에 띄어 보냈다. 그렇게 한 것이 수십 개였다. 바다는 천하에 통하지 않는 곳이 없으므로 이것들이 닿는 외국 각지에 자기 서법을 널리 퍼트리고자 한 것이다.(1780년 3월 34일자)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광사가 귀양을 가지 않았더라면 그의 글씨가 기이하게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북쪽(함경도 부령)으로 귀양을 간 후 비로소 기이하게 되었고 남쪽(신지도)으로 귀양을 간 후에 더욱 기이해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그의 글씨는 많지 않다. 역관들이 그의 글씨를 사들여 서화첩으로 만들어서는 청나라로 가 북경의 서화점에다 두 배의 값을 받고 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광사의 글도 몹시 기이하여 평범한 말을 쓰지 않는데 이러한 그의 글로서 세상에 전하는 것이 많다. 이를테면 '사나운 여울에 고기가 재빨리 움직이고, 위태한 가지에 새가 수선스레 깃든다.'는 등의 구절이 있다.(1782년 8월 2일)
이광사가 쓴 대흥사의 '대웅보전(大雄寶殿)' 글씨는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로 귀양 갈 때 떼어서 창고에 버렸다. 추사가 귀양에서 풀려 한양으로 돌아가다가 다시 붙인 편액이다.
이광사는 양명학을 연구하였다. 그 맥을 이어 받은 아들 이긍익(李肯翊)은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이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은 개인적인 생각이 전혀 섞이지 않은 공정한 마음으로 엮은 방대한 양의 조선 최고의 역사기록물이다.
이긍익의 호는 연려실(燃藜室)이다. 연려실이란 말은, 중국 한나라 유향이 밤늦도록 글을 읽을 때 '푸른 명아주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나타나 지팡이에 불을 붙이고 홍범오행의 글을 주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푸른 명아주 지팡이를 청려장(靑藜杖)이라 한다. 청려장은 신라시대부터 장수한 노인들에게 임금이 하사하던 지팡이이다. 명아주는 주변의 논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초등학교 교육과정에 나온 대표적 한해살이풀이다.
가을이라 새하얀 박이 익어가고, 들판의 곳곳에서 훌쩍 자란 명아주가 단단해진다. '알면 진실로 사랑하게 된다.' 독서의 계절이다. 함께 일기도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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