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알의 모과, 내게로 온 그의 향은 신선했다
비닐봉지의 검은 숨결이 터질 것 같다
충동의 이끌림을 오래 가두어 생겨난 검은 반점
안 보이는 뒤쪽으로 감추기에 급급했다
각도를 달리하면 다른 면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서
목마른 외침은 딱딱한 껍질을 뚫고 켜켜이 새어 나왔다
신선한 향기의 이면에는 상처가 있기 마련
서로가 서로를 보듬던 자리 뭉클해도
열병은 오래가지 않아
미끄러지듯
손 안에서 빠져나가는 옹이
검은 수의 갈아입은 모과를
그늘 짙은 풀밭에 놓아주기로 한다
◇김정아 = 경북 상주 출생. 형상시학회, 대구시인협회, 문장작가회 회원, 시집 : 『채널의 입술』
<해설> 가을에 선물 받아 즐긴 향이 끝나자 까매진 모과를 풀밭에 버리는 것을 시로 적었다. 비록 차로 만들거나, 효소로 담그진 않았지만, 풀밭에 버리면서 시 한 편을 적어냈다는 것이 버려지는 모과의 또 다른 선물이다. 그 순간도 버리지 않고 타고난 시인의 감성으로 잽싸게 시 한편을 적어냈으니, 이제는 모과로부터 받은 것을 손꼽아 볼 일이다. -정소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