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의 사과나무와 영호의 자두나무
스피노자의 사과나무와 영호의 자두나무
  • 여인호
  • 승인 2021.10.18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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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1600년대 네덜란드의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가 한 말이라고 합니다.

유럽에서는 대부분 마르틴 루터가 한 말로 알고 있는데, 누가 처음 이 말을 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희망 없는 두려움도 없고, 두려움 없는 희망도 없다.”라고도 말한, 스피노자의 철학관에 비추어 볼 때 누가 말한 것인지 왈가왈부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그 누구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오늘 사과나무를 심는다고 합니다. 현재의 맡은 일에 충실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사과나무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사과나무는 열매를 따는 유실수입니다. 사과나무는 3년생 가지에 열매가 달리는데 제대로 수확을 하자면 십여 년은 길러야 합니다. 내일 세상이 끝나는데 사과나무를 심는 것은 긍정이자 필연의 철학이 분명합니다.

영호는 자두나무와 인연이 많습니다. 선고께서는 영호가 초등학교 다닐 때 천도복숭아나무를 심었습니다. 영호가 대구교대에 다닐 무렵에 천도복숭아나무를 벤 자리에 사과나무를 심었습니다. 봄에 꽃이 피고 가을에 수확하는 사과는 약도 자주 쳐야 해서 다른 유실수에 비해서 재배하기에 힘이 듭니다. 십여 년 뒤에 사과나무를 벤 자리에 자두나무를 심었습니다. 고향인 김천은 전국에서 대표적인 자두와 포도의 생산지입니다. 그렇게 삼십여 년이 흘렀습니다.

부모님은 자두나무를 애지중지 길렀습니다. 부모님이 연로해서 농사가 어려울 때부터 동생이 관리를 했습니다. 영호는 그저 주말에 눈농사와 입농사를 하기만 했습니다. 자두나무는 집안에 경제적인 도움도 많이 주었습니다. 가족들은 매년 자두를 풍족하게 먹었습니다. 영호의 지인들도 새콤하고 달콤한 자두맛에 익숙해졌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자주나무도 나이가 들어서 곳곳에서 신호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올해는 특히 비가 잦았습니다. 유실수는 물이 꼭 필요하지만, 뿌리에 물이 고이는 시간이 많으면 대부분 죽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름에는 어느 집이나 다른 해보다 많은 유실수가 죽었습니다. 밭 가장자리에 꽃을 잘 피웠던 해바라기도 자두나무와 마찬가지였습니다. 자두나무가 죽은 것은 많은 비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지만, 삼십여 년 동안 쉼 없이 자두를 생산한 피로도 겹쳤습니다. 몇 년 전부터 신호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자두농사를 짓는 동생과 의논을 했습니다. 올해 수확을 마치면 자두나무를 전부 베기로 했습니다. 자두나무를 베는 것은 전적으로 영호 혼자서 하기로 했습니다. 첫 작업을 하기 전에 대표 자두나무에 막걸리를 올리고 절을 했습니다. 그 동안의 노고에 대한 감사의 인사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자두나무에 막걸리를 조금씩 따르고 수고했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처음 나무를 심었던 부모님과 그 동안 가꾸었던 동생에 대한 고마움도 함께 담았습니다.

6월 말부터 자두나무를 베는 작업을 했습니다. 작업은 주말에 하고 여름방학에도 제법 시간을낼 수 있었습니다. 엔진톱과 전기톱을 번갈아 가면서 사용했습니다. 자두나무 밑에 풀이 많이 자라서 예초기도 자주 사용했습니다. 나무를 베고 쌓을 수 있을 정도의 길이로 잘라서 전동수레를 이용해 한 곳에 잘 정리를 했습니다. 잔가지는 잘라서 따로 묶었습니다. 어떤 토요일 밤에는 새벽 2시가 넘도록 자른 나무를 옮기는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엔진톱과 전기톱의 무디어진 톱날을 갈거나 새로 바꾸어 끼우는 것도 익숙해졌습니다. 8월 말에는 마무리를 하려고 한 것이 10월 초가 되어서 끝이 났습니다. 100여 그루의 자두나무를 정리하는 데 100여 일이 걸렸습니다. 손바닥에는 굳은 살이 박히고 근육통 등 약간의 부작용도 생겼습니다. 다음 작업은 포크레인으로 뿌리를 캐고 밭을 정리해야 합니다. 곧 어떤 나무를 심을 것인지도 결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어떤 나무를 심더라도 물빠짐이 잘 되도록 정리하고 흙이 부족하면 새로운 흙도 넣어야 합니다. 땅의 거름기를 보충하기 위해서 소똥 등의 퇴비를 충분히 넣는 작업도 남았습니다.

흔히 나무를 심는 것을 십년대계라고 하고,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합니다. 나무나 교육이 눈앞의 이익이나 현상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각을 해야 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문득 스피노자의 사과나무와 영호의 자두나무를 쓰면서 교육나무를 생각했습니다. 영호는 지금까지 어떤 교육나무를 길렀는지 생각해 봅니다.

그 교육나무가 영호의 수업철학이나 인생철학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지요. 영호의 수업철학이자 인생철학은 절차탁마입니다. 절차탁마를 어떻게 실천했는지 성찰을 해봅니다. 썩 만족하지는 못하지만 서운하지는 않을 정도입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다면 어떤 나무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어떤 교육나무를 키워오셨습니까?



김영호 대구교육대학교대구부설초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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