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조루의 새 - 베푸는 자에게 찾아온다
운조루의 새 - 베푸는 자에게 찾아온다
  • 승인 2021.11.11 22:1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후섭 대구문인협회장·교육학박사
‘가풍(家風)’이란 ‘한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풍습이나 범절’을 말하는 데, ‘가품(家品)’이라고도 합니다. 오늘 날 존경받는 집안에는 대개 훌륭한 가품을 지니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대구 해안현에 문화류씨(文化柳氏)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곳에 사월당(沙月堂) 류시번(柳時藩) 선생이 살고 있었는데, 사월당 선생의 아버지 연정(蓮亭) 류요신(柳堯臣) 공과, 재종(再從) 간인 귀정(龜亭) 류사온(柳思溫) 공은 모두 문집(文集)을 가질 만큼 학문이 깊었을 뿐만 아니라, 독행(篤行)을 실천하여 이웃으로부터 크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 분 모두 임진왜란 등 국난을 맞아 의병으로 나아가 싸우는 등 사회적으로도 그 책임을 다하였습니다.

이러한 집안의 분위기는 그 후손에게도 크나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전남 구례 토지면(土旨面) 오미리(五美里)에 자리 잡고 있는 운조루(雲鳥樓)를 연 류이주 선생도 이 집안 출신입니다. 류이주 선생은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전라도 바닷가를 지키는 무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776년(영조 52년)에 낙안군수로 부임하였고, 뒤이어 이곳에 정착하여 살림집으로 운조루를 세운 것입니다.

운조루라는 당호(堂號)는 ‘구름 위를 날아오르는 새가 둥지를 튼 빼어난 집’이란 뜻인데, 중국의 유명한 시인 도연명(陶淵明)이 지은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이 당호에는 새처럼 맑게 살아가겠다는 의지가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운조루가 유명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먼저 들어야 할 점은,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등 수많은 곡절을 겪으면서도, 230여 년간 전혀 손상되지 않고 온전히 보존되어 왔다는 점입니다. 전쟁이 잦았던 지리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어서 자칫 병화(兵禍)를 당할 수도 있었지만, 60여 칸의 가옥이 지금까지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그 만큼 이 집안이 둘레의 주민들로부터 인심을 얻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집안이 둘레의 인심을 얻게 된 데에는 이웃과 나누면서 함께 살아온 이타(利他)의 생활을 실천한 데에 있습니다. 그 하나의 증거가 운조루 문간채에 놓여있는 둥근 나무 뒤주입니다. 이 뒤주 아래쪽 구멍 옆에는 ‘타인능해(他人能解)’라고 새겨져 있는데, 이 말은 ‘누구나 열 수 있다’라는 뜻입니다.

이 뒤주에는 쌀이 세 가마니나 들어갔는데 쌀이 떨어지면 금방 채워놓았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땟거리가 떨어진 가난한 사람들이 누구나 이 집안 문간채에 들어와서 끼니만큼 쌀을 가져갈 수 있었는데, 바깥문만 열어놓아 아무도 모르게 가져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참으로 자상한 배려였습니다.

운조루의 주인이 마을 사람들에게 베푼 쌀은 한 해 거둔 곡식의 5분의 1이나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많은 재산을 이웃과 나누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6·25때 지리산에 숨어있는 빨치산들이 내려와 운조루를 약탈하고 불태우려고 하면, 이 동네 머슴 출신의 좌익(左翼)들이 나서서 이 집을 적극 지켰다고 합니다.

“다른 집은 다 태워도 이 집만은 안 된다! 이 집은 많은 사람들을 구한 고마운 집이다.”

그리하여 이 집안은 온전히 보전될 수 있었습니다. 이를 보면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을 증명하는 것만 같습니다.

문화류씨 세계(世系)에 따르면 연정(蓮亭)공과 귀정(龜亭)공은 시조 류차달의 24세손, 사월당 선생은 25세손인데, 운조루 류이주 선생은 31세손으로 이들이 남긴 자취를 살펴보면 그 집안의 독행(篤行)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왕대밭에 왕대가 난다.’는 말과 같이 훌륭한 가문에 훌륭한 사람이 많이 나는 법인만큼, 우리는 모두 훌륭한 가문을 이루도록 열심히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2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