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물·색 넘나든 캔버스가 내뱉은 빛…리안갤러리, 김택상 ‘談’展
바람·물·색 넘나든 캔버스가 내뱉은 빛…리안갤러리, 김택상 ‘談’展
  • 황인옥
  • 승인 2021.11.21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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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그리움이 담긴 자연 담고 싶다”
안료 섞인 물, 천에 붓고 말리기 반복
쌓인 단색 층위로 ‘생명의 공명’ 입증
‘자연-인간 순환’ 東亞 정신 기반 작업
서양 색면회화·한국 단색화와 결 달라
김택상작-Resonance
김택상 작 ‘Resonance’

유년의 김택상은 때 묻지 않은 강원도 원주의 산하(山河)를 내달리며 마냥 행복했다. 청명한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뻗으면 더 넓은 세상이 그의 품으로 달려들 것 같았고, 개울가의 물에 젖은 조약돌은 매번 그의 혼을 빼앗았다. 그는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자연의 완벽한 아름다움을 유년 시기 원주의 자연을 통해 간파했다. 자연이야말로 완벽한 스승임을 언어를 배우기 이전의 어린 그는 본능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잠재되어 있던 자연이 수면 위로 다시금 떠오른 것은 30여년 전.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참여적인 작품들로 첫 개인전을 열었지만, 알 수 없는 회의감에 혼란스러웠다. “내가 하는 사회적인 발언들이 얼마나 깊이가 있는가”에 대한 회의였다. 갈등이 깊어지자 사회로 향했던 질문이 내부로 향하기 시작했다. “과연 진정한 내 것은 무엇인가?”라는 새로운 질문이 시작된 시점이었다. 그때 개울가에서 물에 젖은 조약돌을 주우며 마냥 행복해했던 유년기의 원주에서의 기억들이 섬광처럼 스쳐갔다.

◇ 원초적인 자연의 색인 ‘물빛’을 재현하다.

사회참여적인 작업들이 단시간에 회의감으로 이끈 원흉은 ‘흔들림’ 이었다. 사회를 향한 자신의 발언들이 ‘핵심을 파고들었는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부족했고, 그는 바람 속 갈대처럼 속절없이 흔들렸다. 예술의 속성이 머리가 아닌 가슴의 영역인데, 감동의 원천을 머리에서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것. “이건 아니다”라는 자각이 드는 순간 원주의 찬란했던 자연이 흑백영화 속 필름처럼 지나갔다.

“내가 언제 감동을 받고 행복에 겨워했던가를 떠올렸을 때, 가장 완벽한 감동을 준 것은 자연이었다. 감동이 무엇인지도 모를 그 어린시절에 자연은 내게 원초적인 감동을 선사했다.”

자연이 주는 감동의 원천은 무엇일까? 작가는 “완벽한 아름다움”을 언급했다.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주어진 숙명을 따르는 자연의 운명순응적 태도가 그에게는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작가는 ‘아름답다’을 '그리움'과 연결지었다.  아름답다는 각인은 또 보고 싶은 존재로 뇌리에 각인되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따지고 보면 인간도 자연의 일부다. 작가는 “인간도 자연처럼 감동의 원천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의 눈에 비친 현실은 암울했다.  그가 보기에 인간은 자연에 위배되는 행보를 걸어왔다. 자연 파괴로 세워진 인공의 도시들은 인간을 역습하고, 그럴수록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 바이러스의 공격은 대표적인 자연의 역습에 해당된다. 작가는 지금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기 위해 자연으로 회귀할 시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간은 자연처럼 자연스럽게 살아야 행복한 존재인데, 인공적인 환경에 놓여지면서 몸과 마음이 피폐해졌다. 다시 회복하기 위해 자연에 주목해야 한다.”

“진한 그리움이 배어있는 자연을 그리겠다”는 방향성은 정해졌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가 과제였다. 수많은 고뇌가 오고갔지만 “이것!”이라는 해답은 구하지 못했다. 결정적인 힌트는 우연적인 경험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상에서 미국의 엘로스톤 국립공원 내 화산분화구에 담긴 물빛을 보자 “저 물빛을 담아보고 싶다”는 열망이 분출했다.

엘로스톤 호수의 물빛을 표현하기 위해 1년간 사투를 벌였다. 하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다양한 물성과 제작방식으로 실험을 거듭했지만, 투지만 넘쳤을 뿐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1년을 매달린 끝에 마침내 단초를 찾았다. “호수의 환경과 유사한 환경을 만들어서 물빛을 재현하면 어떨까?”하는 번뜩임이었다.

“물은 본래 색이 없다. 우리가 보는 물빛은 호수라는 거대한 그릇과 호수를 넘나드는 바람, 햇빛이 만든 창조물이다. 그런 물빛을 얻기 위해 나 역시 그런 환경을 만들어서 색을 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의 색으로 통용되는 단어는 물색이 아닌 물빛이다. 애초에 색을 배태하지 않았던 물이 빛과 호수라는 공간과 바람 그리고 중력의 공명에 의해 순간적으로 색이 생겨났고, 사람들은 다른 색들과 구분하여 물빛이라고 통칭했다. 작가는 물빛을 표현하기 위한 사투를 벌였고, 거듭된 실패 끝에 마침내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다. 발상의 전환이었다. 상식적인 방식으로 물빛 재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간파하고는 붓을 버렸다. 그는 붓 대신 캔버스에 물을 끌어들여 호수와 같은 환경을 만들어 색을 내려는 시도를 거듭했다.

물빛을 표현하기 위한 핵심은 호수와 같은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다. 먼저 물에 미량의 안료를 섞어서 수채화 캔버스 위에 붓고는 캔버스를 물이 고여 있도록 사각 모서리를 단속했다. 2~3일이 흐르자 안료 속 접착제가 물에서 용해되어 입자만 캔버스천 위에 착상했다. 중력에 의해 착상이 굳어질 때 물을 버리고 캔버스천을 벽에 걸어 말렸다. 이 공정을 20~30회 반복하자 캔버스 위에 반복된 만큼의 레이어가 형성되고, 색은 더욱 영롱해졌다. 그가 그토록 갈망했던 자연의 빛이 화폭에서 영롱해지는 순간이었다.

작가는 이렇게 얻어진 색을 “생명의 공명이 만든 빛깔”이라고 표현했다. 3차원 공간에 대한 언급이었다. 이 시기 작가가 주목한 것은 공간성이었다. 그가 인지하기에 모든 생명체는 몸이라는 공간을 전제로 했다. 사람의 피부빛은 몸의 공명이 만든 결과이며, 물빛은 호수라는 공간이 빛을 받은 결실이었다. 하늘빛이나 나무의 빛 또한 허공이라는 공간이 있어 발할 수 있었다.

그 역시 화면을 3차원 공간으로 구현해내는데 역점을 기울였다. 물을 붓고 착상하고 말리는 반복된 과정을 통해 미세한 공간을 중첩시키며 자연의 빛깔같은 색면을 만들어갔다.

◇ 순수한 색면추상은 ‘나 다움’에 대한 표현

자연과 동일한 조건을 만들어서 자연의 색을 화폭에 재현하자 분류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단색화나 색면추상으로 이름지었다. 하지만 작가는 ‘김택상의 회화’라고 명명했다. “본래적 존재로 회귀하기 위해 자연을 재현한 결과”로서의 색면이며, “서양의 색면추상이나 모노크롬과 출발선도, 귀결점도 다르다”는 논리에 의한 나름의 분류였다. 그는 “단색조의 미니멀리즘인 한국의 단색화와도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고 강조했다.

작업의 출발이 자연이듯 작업의 철학적 토대 또한 자연과 결부시켰다. 동아시아인의 정신적인 기반인 ‘생명의 순환’이라는 순환론적 자연관을 따랐다. 그는 “나의 작업은 세대와 세대, 자연과 인간이 순환하며 영원히 생명을 이어가는 동아시아의 정신에 기반하고 있어 서양미술사나 서양미술의 개념으로 분석하면 제대로 된 분석이 되지 않는다”고 전제했다. 그리고는 “동아시아의 정신에 나의 기억과 경험이 어우러져 ‘나’다운 작업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자연의 빛은 여러 조건들의 공명에 의해 생겨난다. 햇빛이나 시간, 바람, 중력, 허공이라는 여러 조건들의 관계맺음의 결과다. 그의 작업에는 작가의 행위가 더해진다. 핵심 주체들의 결속으로 완성되는 작가의 작업에서 빠트릴 수 없는 개념은 ‘관계성’이다. 다양한 조건들이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고 상호간에 관계를 주고받으며 필연적인 결과로 도출된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자연은 견고한 연결고리로 얽혀있는데 작가는 이 관계성을 “동아시아 정신의 정수”로 인식한다. 삶과 죽음의 순환, 세대와 세대의 순환이라는 동아시아 세계관의 시작과 끝에 ‘관계성’이 있음을 그는 유년시절에 이미 간파했다.

날 것의 아우라를 정제된 기운으로 수렴한 것이 작가의 색면이다. 그것은 물빛과 하늘빛, 식물빛, 얼굴빛 등 다양한 생명의 색으로 표출된다. 색은 그에게 형태를 걷어낸 본질의 다른 이름이다. 순수로의 회귀, 언어 이전의 세계, 모든 생명의 고향인 본질의 세계를 그리고 있는 그런 그의 작업에 변화가 감지된다. 형광빛을 과감하게 화면에 끌어들이고, 단색 위주에서 다채로운 변주도 포착된다. 작업에 자유분함이 새롭게 자리를 잡고 있다.

화면 속에 분출하는 자유에 대한 갈망은 작가의 환경 변화와 일치한다. 그는 지난해 봄에 청주대를 조기퇴직했다. 대학 조직은 자유분방한 예술가의 기질과는 맞지 않았고, 그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벗어던졌다. 그러자 자신을 둘러싼 규제들이 사라졌고, 화면에도 실험정신이 새롭게 자리를 잡았다.

색면 작업을 30년 정도 하자 불현 듯 고려불화와 조선의 도자기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채도나 색의 미묘함을 가장 잘 표현한 역작으로 평가되는 고려불화나 가장 자연의 색을 닮을 조선의 도자기에서 자신의 물빛을 발견한 것. 그것은 큰 틀에서 ‘나’다움의 발견이었다. 고려불화나 조선도자기 그리고 자신의 물빛이 모두 빛의 회절과 굴절을 통해 얻은 자연의 빛깔이라는 측면에서 그의 ‘물빛’은 철저하게 ‘나’다운 색이었다.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나’라는 존재를 재인식한 결과였다. 그가 ”나의 색면은 그림의 문제일 수도 있고, 선(禪) 문제일수도 있고, 교육의 문제일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세계적인 작가가 되어야 겠다”는 원을 세우지는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삶을 자족하며 잘 살아내는 것이다. 그 소박한 인생관을 그림을 통해 차근차근 실현해가고 있다. “그림을 통해 더 좋은 사회를 위한 선한 영향력 행사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김택상 ‘담(談, Daam)’전은 30일까지 리안갤러리 대구에서. 053-424-2203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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