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어두워지면 꼬리표가 가벼워지는 옷이 있다
그런 옷은 세탁소 공중이 거처다
어둠과 햇볕 번갈아 들락거려도
데리러 올 주인 기다리는 그의 운명
하루하루 사는 일이 얼마나 버겁길래
옷의 주인 발길 뚝 끊어진 걸까
어쩌면 상가 세탁소 폐업하는 그날까지
그대로 걸려 있을지도 모를 일
당신의 어제와 오늘이 고스란히 스며든 채로
세탁소 행거에 맡겨져
오래도록 당신 살 내음 놓지 않는 옷
오랜 방치로 흰 꼬리표 글씨조차 희미해져
어두운 문밖 걸어올
당신 기다리느라 눈자위 찐득해진 옷
◇김정아 = 경북 상주 출생. 형상시학회, 대구시인협회, 문장작가회 회원, 시집 : 『채널의 입술』.
<해설> 어느 세탁소에 맡겼는지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아 나름 돈을 좀 주고 산 재킷을 끝내 찾지 못하고 지나왔다. 가끔씩 생각을 해 봐도 어느 세탁소에 맡겼는지 지금도 역시 생각이 나지 않는다. 시인의 글을 읽으니, 애타게 주인을 기다리는 셔츠는 오는 길이 어딘지조차 모르는 주인이 된 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어느새 조금은 남아 있을 것 같은 주인의 살내음도 옅어져 그 유통기한이 다 되어 간다. 남겨진 옷은 새로운 주인이 나타나도 그 감흥이 없어져 그야말로 무생물이 되어 벌린 팔에 걸쳐질 것 같다. 세탁소 안의 풍경을 생각하다보니, 다시금 기다려지는 주인의 발걸음 소리를 기다리는 무수한 옷들이 즐비한 것이 마치 알맹이가 빠진 허수아비들 같다. 찾아가지 않는 세탁물에 대한 주인의 애타는 경고인 것 같기도 하고 갖은 감상을 내밀게 한다. -정소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