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學而時習)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學而時習)
  • 승인 2022.02.24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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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대구예임회 회장 전 중리초교 교장
지난 10일, 달성군북부노인복지관에선 자서전 출판기념식를 가졌다. 다섯 명(필자포함)이 간난의 신고 끝에 결실을 맺은 것이 더 없이 기뻤다. 매년 복지관에선 '자서전교실(강사 예재호)'을 개설하여 많은 지원을 해 준다.
소견세월(消遣歲月)이라는 말이 있다. 하는 일 없이 허둥지둥 세월을 보내는 일을 뜻한다. 한편으로는 어떤 것에 마음을 붙이고 세월을 보내는 일도 함의하고 있다. 보낸 세월과 남은 세월을 함께 의미하는 말이 소견세월이다.
자서전이란 글 쓴 사람이 보낸 세월을 적은 글이다. 어떤 형식을 갖추고 있을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주로 살아온 삶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년·월·일의 편년체(編年體)형식이 좋을 것 같다.
종손인 할아버지는 동네 아이들을 모아서 사랑방에서 글을 가르쳤다. 사랑방엔 할아버지가 붓으로 써서 붙여 놓은 '학이시습(學而時習)'이라는 글이 있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즐겁다.'는 뜻이다.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할아버지는 '학(學)'을 '본받을 학(學)'이라고 학동들에게 가르쳤다.
아버지는 학동들에게 '학(學)'을 '배워서 본받는 학(學)'이라 했다. 나는 교직에 있으면서 '학(學)'을 '배우고 익힐 학(學)'으로 생각했다. 교육에선 학습(學習)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이시습(學而時習)'은 집안대대로 하나의 가르침이 되었다. 자서전의 제목을 '배우고(學而) 때때로(時) 익히니(習)'로 정했다. 방황하던 삶을, 마음으로 고뇌를 했던 기억을 되살려 보기로 했다.
자서전은 사실을 날짜순으로 서술한다는 점에선 일기와 비슷하다. 그렇지만 일기에는 내면의 느낌이나 생각의 서술이 많다. 일상생활의 사실만 발췌해서 쓴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글이 자서전이다. 대부분은 자신의 좋은 점만 나열하여 자랑만 늘어놓기 때문이다. 자서전을 쓰기가 어려운 이유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서전 쓰기를 망설이게 된다.
조선 영·정조 때 학자 유만주(兪晩柱)는 스물 네 권의 일기장 『흠영(欽英)』을 남겼다. 『흠영(欽英)』은 '꽃과 같이 아름다운 사람의 정신을 흠모한다.'는 뜻이며 자신의 호(號)이기도 하다. 만 스무 살부터 쓰기 시작하여 서른네 살 임종할 때까지의 일기이다. 특히 그는 정사, 야사, 소설 등 책읽기에 몰두하여 읽고 논평한 열정적인 독서가이기도 하였다. 주로 자신을 위한 책읽기를 하였다.
뛰어난 문장가인 아버지(유한준)을 모시고 연암 박지원의 『방경각외전』을 읽고는 "이것은 하나의 기이한 글입니다. 독자를 움직이는 힘이 넉넉합니다. 이런 분을 저의 글쓰기 주인공으로 끌어들일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유만주는 아버지의 친구인 연암을 기이한 재주나 재능을 가진 행동거지가 특이한 선비인 기사(奇士)로 존경하고 본받고자 했다.
『흠영(欽英)』에는 '인인아아(人人我我)'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너는 너답게 나는 나답게'라는 뜻이다. 공자가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고 한 말과 형성(形聲)이 닮아있다.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자식은 자식답게'라는 뜻이다.
평생 맛있는 음식 먹고, 좋은 옷 입고, 생활이 고관대작보다 나은 사람이 있다. 또 자신을 즐겁게 해주는 처자식이 있고, 누릴 수 있는 취미를 행하며, 근심걱정은 한 가지도 없는 사람. 그런데 책은 평생 한 권도 읽지 않는다.
반면에 어디에 있던 책이란 책은 다 읽는 사람이 있다. 기이하고 희귀한 서적, 사라지고 없다고 알려진 책, 감춰진 책, 공적으로 보관되어 있는 도서, 개인이 가진 문집, 이웃 나라의 옛 기록물 등등을 맘껏 다 읽는 사람. 그러나 생활은 찢어지게 가난하여 온갖 어려움을 다 겪는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전자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후자를 택할 것인가? 물론 '너는 너답게 나는 나답게' 선택할 권리가 있다.
필자는 남은 세월을 '고독(古讀)'으로 보내고 싶다. 고독은 '고전을 읽는다.'는 뜻이다. 아버지는 생전 '앎을 머리에 넣어두라.'고 하였다. 재산은 없어지지만 머리에 든 지식은 아무도 훔쳐가지 않는다고 했다. 세월이란 실존공간은 장소와 방향과 영역이다. 그 실존공간에 과거, 지금, 훗날에도 '앎의 기쁨'은 존재한다. 어떻든 '배우고 때때로 익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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