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디지털 노마드
[문화칼럼] 디지털 노마드
  • 승인 2022.03.16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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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대구문화예술회관장
일전에 TV에서 벨체아 콰르텟(Belcea Quartet)공연을 보았다. 벨체아 현악 사중주단은 우리 한국 팬들에게 특별히 많은 사랑을 받는 연주단체다. 2017년 내한 공연의 성공에 힘입어 상대적으로 비주류라고 할 수 있는 실내악단으로서 두 해만에 앙코르 공연을 국내 여러 도시에서 가졌다. 2019년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열린 조성진에 의한 ‘성진과 친구들’이라는 제목의 4회 공연이 당시 많은 인기와 화제를 모았는데 이때 벨체아 콰르텟이 조성진과 브람스 피아노 5중주를 함께하여 많은 한국 음악팬의 가슴을 촉촉이 적셨다는 후문이다.

창단한지 25년이 훌쩍 넘은 이 단체는 세계적 실내악 콩쿠르 수상과 빈 콘체르트 하우스, 독일 ‘피에르 불레즈 홀’의 상주 아티스트. 그리고 그라모폰 상, 디아파종 황금상 등의 주요 음반 상 수상 등 그야말로 실력과 대중성까지 골고루 갖춘 손꼽는 현악 사중주단이다. 믿고 보는 연주자들인데 그날 TV에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드보르작 현악사중주 ‘아메리카’를 연주했으니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보헤미안의 쓸쓸한 서정이 가득한 2악장은 현악사중주가 들려줄 수 있는 최상의 음악이었다. 그리고 이날 아름다운 연주 외에 2가지 눈에 띄는 점이 있었다.

우선 우리의 마당놀이와 같은 무대 구성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서로 마주보며 둥글게 원을 그려 자리한 연주자 가까이 관객들도 양 사방으로 빙 둘러 앉아 음악을 감상하였다. 섬세한 전달력이 중요한 실내악 연주에서 이와 같은 형태의 무대구성은 대단히 효과적이라고 본다. 그리고 또 하나 이날 4명의 연주자 공히 종이악보 대신 태블릿PC로 악보를 보며 연주하는 점이었다. 연륜 있는 전통적 연주단체들의 이런 모습이 내게는 낯설게 다가왔다.

청년 취업난은 광범위한 문제다. 예술계의 상황은 상대적으로 더 심각하다. 특히 국악전공 졸업생의 실태는 더욱 더 그러하다. 그래서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는 작년부터 졸업한지 10년 이내의 국악전공생을 대상으로 공개경쟁 하에 스무 명 가까이 모집하여 ‘나봄’이라는 이름의 국악실내악단을 꾸려 운영하고 있다. 연간 수십 회의 찾아가는 공연, 초청공연과 정기연주회 등을 통하여 상품성을 쌓아가고 있다. 사실 그들 대다수는 시립국악단원을 꿈꾸고 있으나 진입은 어쩌면 요원하다. 그래서 그 꿈을 포기하지 않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나봄’을 만들게 되었다.

유네스코음악창의도시 사업의 권리이자 의무는 창의도시들 간의 교류다. 그래서 작년의 ‘창의도시 디지털 포럼’을 비롯한 많은 사업들이 전개되고 있다. 특히 문화예술회관에서는 ‘유네스코 네트워크 뮤직 페스티벌’을 열어 창의도시들 간의 교류 사업을 구체화 시켜나가고 있다. 그러나 음악창의도시 사업은 창의도시다운 음악적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것이 가장 우선되고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음악 즉 국악의 전통 보존과 더불어 동시대성을 담아내는 작업이 더 활발해야 한다. 이러한 작업의 근간이 되는 미래 국악계의 동량을 키우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여러가지 뜻을 담은 ‘나봄’의 첫 걸음은 어설펐다. 그러나 이들을 지도하는 시립국악단 수석단원들의 헌신으로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 했다. 작년 많은 무대에서 박수갈채를 받았고 첫 정기연주회를 통하여 가능성을 입증했다. 올해 조직을 일부 재정비해서 새로이 출발했다. 세계가스총회를 위한 프린지 무대에서도 작은 역할을 하리라 기대한다. ‘나봄’의 연습장면 때 역시 조금 낯선 모습. 이들도 다들 태블릿PC로 악보를 본다. 가야금과 해금, 아쟁과 장구소리가 울려 퍼지는데 떡하니 전자기기 모니터가 보면대에 자리하고 있는 모습은 색다르면서도 이들의 음악에 동시대성을 담는 작업에 묘한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세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 때 사람들은 대체로 종이로 된 책, 신문 그리고 악보를 본다. 왜냐하면 모니터로 읽는 글은 가독률과 집중력이 종이 매체와는 다른 것 같다. 전자책을 읽으면 줄거리는 남지만 종이책과 같은 영감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책을 한 장씩 넘기며, 때로는 밑줄도 치고 한 줄 한 줄 읽는 재미는 전자책이 따라올 수 없다는 생각이다. 악보 역시 그렇다. 손때 묻은 악보에서 느낄 수 있는 정서를 전자기기가 대신할 수 있을까. 종이악보와 모니터로 악보를 보며 연주하는 것에 미묘한 차이는 없을까하는 궁금증도 있다. 그러나 시대는 바뀌었다. 문명의 이기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 앞서 갈 확률이 높을 것이다. 젊은 국악인의 이러한 모습에서 한국음악의 확장성에 대한 단초를 발견한 듯한 느낌은 오버 센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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