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아픈 손가락
[달구벌아침] 아픈 손가락
  • 승인 2022.06.0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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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심리연구소 소장
만약 내게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다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도 아프고, 반가운 비가 내려도 아플 것이다. 누가 나를 보고 반갑다고 포옹을 해 와도 아픔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느끼는 아픔은 바람 때문도 아니고, 비 때문도 아니며, 나를 두 팔로 안은 사람 때문도 아니다. 아픔의 이유는 바로 내 몸에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로 현재도 여전히 아픈 상태이기 때문이다.
아픔은 사실 외부에서 전해지는 것도 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대개는 내게서 시작된 것들이 많다. 그래서 아픔을 느끼고 싶지 않다면 내게 있는 상처부터 치료를 먼저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아픔의 이유를 외부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되면 아픔이 사라지면 참 좋으련만 아픔은 사라지지 않고 여전하다. 그리고 상처도 아물지 않는다. 외부로 원인을 돌리는 것은 그냥 가려운 것을 조금 긁은 정도의 시원함을 제공할지는 모르겠지만 근본적인 치료는 되지 못한다. 아픔을 느끼고 싶지 않다면 좀 더 적극적이고, 근본적인 해결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시선을 내부로 돌려 내부에서 아픔의 원인을 찾아보는 것이다. 내 속에 상처가 나 있지 않은지, 그 상처 때문에 더 아픈 것은 아닌지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훨씬 빠른 길이고 제대로 된 접근법이다.
어떤 분이 상담을 요청해오셨다. 평상시와는 다르게 상당히 지쳐 보였다. 긴 시간 동안 그는 아픔을 호소하셨다. 아픔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가족 때문이었다. 아플 때 가장 위로를 받고, 지칠 때 가장 많은 격려와 지지를 받아야 할 가족 때문에 그는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본인이 느끼기에도 가족이 그를 많이 아프게 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가 가족과 살아오면서 경험한 전체적인 가족사는 다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가족은 외로운 사람을 더 외롭게 하고 있었고, 아픈 사람을 더 아프게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그가 아파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긴 시간 이야기를 들으며 그에게서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은 그에게 있는 아물지 않은 상처였다. 그 상처는 오래된 것이었고 아물지도 않았다. 그리고 치료를 해준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상처는 곪아 있었고 딱지는 벗겨져 작은 외부의 자극에도 아픔을 고스란히 느낄 수밖에 없어 보였다.
아픈 상처에 소금을 부으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두 안다. 그렇듯 지금 그의 아픈 상처에 가족이 소금처럼 뿌려지고 있었다. 정말로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현상은 이제 확인되었으니 아픔을 느끼지 않기 위해 해결방법을 찾아야 한다. 하나의 방법은 그의 가족에게 부탁하여 상처에 소금을 뿌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깊이 생각해보면 가족이 과연 그가 아파하라고 정말로 소금을 뿌렸는가? 하는 문제다. 만약 소금이 아니라 그를 돕는다고 그의 손을 잡아 주는 것이었을 수도 있고, 그를 격려한다고 어깨를 토닥이는 것이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가족은 가족대로 할 말이 충분히 많을 수도 있어 보였다. 그렇다면 더 근본적인 해결방법을 찾아보아야 한다. 이제는 바깥(가족)이 아니라 안(자신)으로 눈을 돌려봐야 한다. 가령 손가락이 다친 사람이 다친 손가락으로 아픈 곳을 짚어 보라고 하니 어깨도 짚어 보니 아프고 다리도 짚어 보니 아프고, 머리도 짚어 보면 아픈 것과 같은 이유다. 즉 다친 손가락으로 짚으니 어떠한 곳을 짚더라도 아픔이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바깥으로 원인을 돌리며 산다. 사실 그게 가장 편한 방법이다. 그런데 대다수의 많은 심적 문제가 내 안에서 느끼는 감정의 문제, 미해결 된 감정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특수한 상황에서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생활 전반적인 것에서 지속적으로 느끼는 감정이라면 그것은 외부에서 찾기보다는 내부에서 찾으려 노력하면 될 듯하다.
"저 사람이 나를 아프게 해요" 보다는 "저 사람 때문에 내가 아파요." "왜 나는 이렇게 저 사람의 말에 상처가 될까"로 한번 들여다보면 분명 치료되지 않은 어떤 부분(미해결 된 감정, 다루지 못한 부분)이 분명 보일 것이다.
'그가 나를 힘들게 한다'에서 '내가 힘들다'로 주체가 그에서 나로 바꾸는 작업을 하는 지혜가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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