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삶의 이유와 목적
[대구논단] 삶의 이유와 목적
  • 승인 2022.06.16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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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석 대구보건대 임상병리과 교수
배움은 삶을 펼치기 위함이다.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현재를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영적 성장의 출발이다. 나는 지금 현재의 삶에 만족한가?

만족한다면 더 이상의 펼침은 필요 없다. 아니, 만족스러우면 이 땅에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 이 땅에 있는 이상, 나는 마음으로 모자란다고 믿음을 주었기에 태어난 것이다. ‘나’라는 의식체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해보기 위한 결핍상태로 존재한다. 그래서 수천 번의 삶을 통해 불만족을 계속 쌓아왔기에 절대 불만족이 내 삶이다. 그 불만족을 해소하기 위해 다시 몸을 받아 여기, 이곳에서 살아가므로 불가에서는 그 원리를 잘 설명하고 있다. 생사순환 이치를 깨달은 고다마 싯다르타라는 현자는 삶 자체가 괴로움이라고 피력했다. 싯다르타는 누구인가? ‘스스로 깨달은 자’라고 하여 ‘붓다’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는 삶이 고(苦), 언제나 괴로움으로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물론 절대의식의 영역을 ‘마음’이라고 하여 순수 그 자체라고 하는 전제가 있지만, 삶 그 자체만을 이야기할 때는 괴로움으로부터 출발한다고 설파했다. 이의 원인은 집착, 즉 자신이 스스로 원하는 욕망을 설정하여 놓았으니, 이가 곧 ‘탐진치(탐욕과 진애와 우치)’다. 삶의 이유와 목적을 설명함에 이토록 명쾌하게 원인과 결과를 설명한 종교는 불교가 유일하다. 무의식과 절대의식을 연결하여 삶 그 자체를 마음으로 설명했으니 대단한 진리다. 싯다르타가 살았던 시기는 오천 년 전이었으니 그 당시의 인류의식은 지금까지 한 발짝도 진화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먼저 가본 현자의 논리가 지금까지도 진리 그 자체로 우리 의식의 성장을 위한 섭리로 교육되고 있다.

‘탐’은 원하는 마음이다. 가지고 싶고, 하고 싶고, 되고 싶은 강렬한 욕망을 ‘탐’이라는 한 단어로 말했다. 이것은 마음의 껍데기, 표면의식이다. 강하게 원하는 그 무엇이 탐이다. 삶을 펼치는 내면의 흐름은 일차 욕망, 몸이 요구하는 욕망이다.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해 이 하나밖에 없는 몸을 사용하고 있는가? 생존을 위한 먹이 활동에 모든 의식을 써서 삶을 펼치는가? 아니면 종족보전의 영역, 쉽게 말해 가족을 위해 삶 전체를 펼치고 있는가? ‘직업’이라고 불리는 나의 일 자체가 먹이와 유전자 보존 그 자체만을 위해 활동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내가 추구하는 영혼의 성장을 위해 일 그 자체에서 목적을 이룰 수 있는지 자문해보아야 할 것이다. ‘진’은 성질내고 분노하는 마음이다. 내 안에서 답을 찾지 못하고 외부서 원하는 그 무엇을 끌어당길 때,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나타나는 의식의 폭발이다. 분노는 어디서 나오는가? 자기 방어를 위한 보호의식이기도 하지만, 탐하는 것이 이뤄지지 않을 때 일어난다. 탐의 다른 형태가 진이다. ‘치’는 부끄러움과 모욕감이다. 나 자신이 다른 존재들과 동화되지 못할 때 일어나는 내면의 파동이다. 이 세가지가 어우러져 스스로를 동물적 몸에만 집착하는 저진동으로 틀 지워진다. 말하자면 하격 인간이 되는 것이다.

지구표면의식, 대기권 아래에서 정해진 프로그램을 ‘명(命)’이라고 한다. 운명, 수명, 등 삶의 흐름을 이야기하는 단어이지만, 이 명을 아는 것이야말로 내 삶 전체를 탄생과 죽음, 그리고 그 이후까지도 알 수 있는 핵심단어다. 오죽하면 수련과 도인이 되는 길의 중간과정을 지명(知命), 즉 ‘명을 안다’라고 까지 했을까? 삶을 이해함에 있어서 명을 말하지 않고서는 이해가 불가능하다. 살아오는 과정 동안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선택 권능, 신의 무한영역을 가지고 자신만의 삶을 꾸려간다. 여기서 선택 권능이라는 말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부모를 내가 선택했다는 내 의식의 권능은 그대로 신의 권능이다. 이는 영적 능력뿐만 아니라 현재 삶의 영역에서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매순간이 선택이고, 삶 자체가 선택한 대로 흘러가는 권능의 사용이다. 나 자신의 위대함은 선택의 권능대로 살아간다는 신의 속성이다. 나는 그렇게 위대한 존재다. 다만 잊고 있을 뿐이다. 인생의 중요한 세가지 선택이 있다. 직업선택이 첫 번째요, 배우자 선택이 두 번째이며, 삶의 가치실현 선택이 세 번째다. 직업이나 배우자의 선택 시 내면의 프로그램이 작동한다. 소위 몇 천 생 삶의 경험 동안 기록된 전생과 환생의 기억들이 잣대가 되어 현생의 삶에 있어서 선택의 기준점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불가에서는 이를 ‘인연’으로 이야기 하지만, 엄밀하게 따져보면 내가 선택하여 경험한 기록들이 누적된 습일 뿐이다. 그 누적된 기록이 화석화되어 내가 하는 행위가 아무 의심 없이 자연스런 결과로 다가올 뿐이다. 삶의 이유와 목적은 바로 ‘탐진치(탐욕과 진애와 우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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