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 살아야 지방이 산다] 지역 아카이브의 실천, 고향 의성을 기억하고 기록한 ‘송파만필’
[마을이 살아야 지방이 산다] 지역 아카이브의 실천, 고향 의성을 기억하고 기록한 ‘송파만필’
  • 김종현
  • 승인 2022.06.2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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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추억 속에 남은 공간, 기억하고 기록해야”
저자 김광호씨, 고향 추억 회상
어린시절을 글·그림·사진으로
해방 직후 의성 분열상도 남겨
읍 일대 주요 장소들 꼼꼼히 채워
어디에도 없을 소중한 기록물
아카이브 프로젝트 활성화 기대
구봉산에서본의성읍-1960년대
구봉산에서 본 의성읍-1960년대.

한평생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경험을 하고 그 경험은 기억의 형태로 쌓여간다. 그런데 기억이라는 것은 애써 꺼내놓지 않으면 한 개인의 죽음과 함께 결국 소멸한다. 우리가 일기를 쓰고, 블로그에 글을 남기고, 사진을 찍어 앨범을 만들어 보관하거나 SNS에 업로드 하는 것은 언젠가 사라지게 될 기억을 어떻게 해서라도 붙잡아 두고자 하는 마음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경북 의성에서 만난 ‘송파만필’은 이런 마음을 조금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실천한 기록물이다. 저자 김광호씨는 1926년생으로 의성읍 도동리에서 태어나 성장했으며 군청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퇴직한 의성 사람이다. 이 책은 생의 말년을 타지에서 보내며 그리운 고향에 대한 기억을 하나둘 풀어놓은 일종의 자서전이자 회고록이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워져 가난을 면치 못했던 아버지의 사연과 마을 교회를 지을 때 행주치마에 직접 벽돌을 나르며 솔선수범한 할머니의 독실했던 신앙심에 대한 이야기부터 마을 뒷동산과 남대천 한다리에서 썰매를 타고 수영시합을 하던 어린 시절 소소한 추억들까지, 고향마을에 대한 그리운 기억을 글과 그림, 사진들과 함께 펼쳐놓고 있다.
 

송파만필
송파만필 표지.
저자는 유년 시절 30년 동안 살았던 집과 동네 풍경을 ‘살구꽃과 진달래가 아름답게 피던 곳’으로 묘사하면서 손수 그린 그림과 함께 남겨놓아 그 시절 그 장소로 우리를 안내한다. 또 마을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과 거기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을 현장감 있게 전해주고 있으며, 해방 전후 혼란스러웠던 상황을 지역민의 관점에서 기록하고 있는 부분은 역사 증언 자료로서의 가치도 지닌다.

“우리 집은 동산향교에서 약 200m 아래(서쪽)이고 읍교회와는 100m 거리인 곳이다. 서쪽에는 구봉산(일명 구정산)이요, 남쪽 약 2㎞ 거리에는 남대천(한다리라고 했다)이, 멀리는 금정산이 웅장하게 보이는 곳이다. 봄에는 살구꽃과 진달래가 아름답게 피는 곳이다.”

“학교를 마치면 구봉산 밑 꿩매 끝 및 한다리(남대천)에 목욕하러 다녔고 겨울에는 동산 기슭 아사천 상류와 구봉산 밑 개천에서 앉은뱅이 썰매를 즐기기도 했다. 여름에 수영 차 한다리까지의 거리는 2㎞나 되는데도 거의 매일 백낙필, 오상곤, 강호진, 김필수, 김진명 등 친구들과 다녔는데 다리가 아픈 줄도 몰랐다.”

“1945년 8월 15일은 한창 더운 날이었다. 이때는 전쟁의 상황이 심각할 때이다. 이날 정오에 일왕(日王)의 중대 방송이 있다고 하였다. (…) 그날 출장업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한 아주머니가 자기 집 앞에서 춤을 추면서 탑리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지 않은가. 사연인즉 그의 아들이 아침에 영천으로 군입영 차 갔는데 해방이 되어서 곧 영천에서 탑리역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라디오의 오늘 12시 방송을 듣지 못한 나는 이날 오후 4시경에 세기의 변환점인 해방을 이 시점에서 알게 되었던 것이다.”

“(1945년) 8월 16일 정오에 해방기념 군민대회가 구 관아(舊 官衙)인 남부초교 터(현 의성경찰서) 마당에서 개최되었는데 많은 사람 속에 나도 참석했다(20세때 일). 먼저 애국지사로 오랜 감옥생활에서 풀려나온 어느 목사께서 단상에서 유명한 연설을 하였음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 해방되자마자 좌우익사상으로 우리 의성지역에도 분열이 나타났다. 위 행사 중 애국가 제창 때에도 후렴 가사 중 한쪽에서는 ‘대한사람 대한으로’라고 부르고 한쪽에서는 ‘조선사람 조선으로’라고 각각 가사를 달리 부르는 안타까운 일이 생겨났다.”

김광호씨가 그린 의성읍지도 일부. "부기 : 도면은 60년 살든 고향의 상황을 안양에 이사 와서도 20년간 기억에 남겨 만든 것인데 여기 나타난 주민은 거의가 이주 및 작고했고 다문 누대를 직혀온(지켜온) 집은 해주 오씨 장로 오○○씨의 손자, 김해 김씨 대방가 김○○ 씨 손자 ○○(도동리) 및 해주 오씨 환산 오○○씨 손자(포석리)만이 조상의 집터에 신축해서 살고 있을 뿐이다"
김광호씨가 그린 의성읍지도 일부. "부기 : 도면은 60년 살든 고향의 상황을 안양에 이사 와서도 20년간 기억에 남겨 만든 것인데 여기 나타난 주민은 거의가 이주 및 작고했고 다문 누대를 직혀온(지켜온) 집은 해주 오씨 장로 오○○씨의 손자, 김해 김씨 대방가 김○○ 씨 손자 ○○(도동리) 및 해주 오씨 환산 오○○씨 손자(포석리)만이 조상의 집터에 신축해서 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특히 주목되었던 부분은 마지막 페이지에 수록된 <의성읍 시가지도>이다. 도동리를 포함해 의성읍 일대 공간의 배치와 주요 장소들을 기억을 더듬어 하나하나 꼼꼼하게 채우고 있다. 지도를 보고 있으면 이제는 대부분 사라지고 없을 그리운 고향 마을에 대한 기억의 편린을 조금이라도 잡고 싶었을 저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너무 많이 변해버려서 사람들의 추억 속에만 남아 있는 1950~60년대 의성 읍내 신작로와 골목길 그리고 주요 장소들을 그려 넣고 이웃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정성껏 지도에 표시해준 저자 김광호씨의 작업으로 인해 의성 지역은 어디에도 없는 소중한 역사 기록물 하나를 가지게 되었다. 이는 최근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발굴하고 기록하는 프로젝트인 지역 아카이브(archive)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예산을 배정하고 관련 전문가들이 시간을 들여 연구·조사해야만 얻을 수 있는 내용과 자료를 이 책이 대신해주고 있는 것이다.

‘송파만필’ 이라는 저서를 접하면서 “모든 사유가 기억으로 시작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어떠한 기억도 그것이 지속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개념적 사유의 틀에 압축되고 정제되지 않을 경우에는 안전하게 유지되지 못한다”라는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언설이 떠올랐다. 이는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이 세계를 어떤 형식에 담아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실체로 만들어 기억하고 기록하고 또 공유하는 행위의 역할과 가치에 대해 말한다. 어쩌면 ‘송파만필’은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알타미라 동굴 벽화와 울주 반구대 암각화 같이 수백만 년 전 누군가가 남긴 그림을 통해 우리는 그 먼 과거를 조금이나마 유추하고 상상해 볼 수 있다. 인간은 이렇게 그림이나 글, 몸짓과 선율 같은 무언가를 창작하고 제작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경험을 공유하고 지식을 전달해 왔다. 누군가가 공들여 만들어 낸 이러한 작품들은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이자 예술품으로 공유되고 전승되면서 우리의 삶을 더욱더 풍요롭고 가치 있게 만들어준다. ‘송파만필’도 의성이라는 지역 차원에서 보자면 문화유산만큼의 가치를 지닌다고 말하고 싶다. 자칫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지도 모를 그때 그 시절 그 공간과 장소들에 대한 기억들을 성실하고 섬세하게 기록해준 덕분에 의성읍 도동리 사람들의 삶이 역사의 한 부분이 되어 앞으로도 계속 전해지고 보존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역사적 가치 혹은 장기 보존의 가치를 가진 기록이나 문서들의 컬렉션’을 의미하는 아카이브이라는 전문적인 용어를 굳이 사용하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는 이러한 소중한 기록들이 여기저기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지역 공무원의 업무수첩, 거친 손으로 써 내려간 농부의 영농일기, 지역의 사건·사고 기사를 놓치지 않고 하나둘 모아 둔 스크랩북 등, 누군가의 일상적인 기록 작업이 지역의 역사를 더 풍요롭고 의미 있게 해준다. 우리 이웃들의 역사·문화·일상을 기록한 이러한 자료를 발굴하고 재조명해 함께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지역 아카이브 프로젝트가 지역마다 더욱더 활발하게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정유진 경북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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