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준 개인전, 국제갤러리 부산
이희준 개인전, 국제갤러리 부산
  • 황인옥
  • 승인 2022.07.07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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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조로운 도시 풍경에 흩뿌린 다채로운 미감
아트부산 개막 5분 만에 출품작 완판
‘image architect’ 등 회화·조각 선봬
풍경 드로잉→추상회화로 바꾸거나
건축물 사진 위 물감 쌓아 재질 구현
모사서 회화의 건축 기능 모색 ‘도약’
“일상 낯설어질 때, 공간은 새로워져”
이희준작
이희준 작 ‘On Board a Ship’. 국제갤러리 제공

이희준 작가가 영국 유학을 끝내고 귀국하여 홍대 거리로 나섰을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거리의 다채로운 색채였다. 화려하게 치장한 상점들을 지나치며 익숙한 듯 낯선 감정에 사로잡혔다. 오래된 건물에 동시대의 색채나 구조 등의 새로운 트렌드가 장착된 풍경들은 그가 유학 전 본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그 낯선 느낌에서 받은 새로운 예술적 영감이 이후 작업의 원동력으로 자리하고 있다.

도시 풍경이나 건축물에 의식을 사로잡힌 배경에 그의 삶에서 그러한 대상들에 일상적으로 노출된 환경이 자리한다. 도시에서 태어나 성장한 대다수의 MZ 세대는 도시나 건축물에 무시로 노출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에게 단조로운 도시 풍경은 다양한 생명들이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자연 풍경과 다른 집중도를 제공한다. 매순간 의식하지 않아도 공기처럼 삶을 지탱하는 소중한 일상으로 도시풍경이 의식에 각인되는 것. 그가 도시 풍경이나 건축물을 작업의 소재로 끌고 온 저변에도 도시를 고향으로 두고 성장한 작가의 환경적 요인이 있다.

이희준 개인전이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개막했다. 그는 지난 5월 열린 아트페어 ‘아트부산’에 출품한 작품 일곱 점을 개막 5분 만에 ‘완판’하며 관심의 중심에 섰던 작가여서 이번 국제갤러리 전시에 높은 기대감이 반영되어 있다. 전시에는 2018년부터 서울 풍경을 주제로 그리기 시작한 색면추상 ‘A Shape of Taste(취향의 형태)’ 연작과 지난해부터 시작한 포토콜라주 ‘Image Architect(이미지 건축가)’ 연작 등 회화 20점과 조각 4점을 소개한다.

이희준작가
이희준 작가가 국제갤러리 부산점에 전시된 작품 ‘’Image Architect‘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색면추상으로 제안된 도시풍경

작업의 기반은 도시 풍경이다. 서울 한남동이나 제주 카페 등 MZ세대가 즐겨찾는 문화소비 공간들을 사진으로 찍어 작업에 활용한다. 포착한 풍경 사진은 색면으로 번안하거나 풍경과 색면을 병치하는 방식으로 활용된다.

첫 시작은 색면 추상인 ‘A Shape of Taste’ 연작이다. 캔버스 화면에 풍경 사진을 깔고, 드로잉 과정을 통해 단순화된 기하학적 추상으로 도식화한 후 색을 올렸다. 색에 의해 바탕에 깔렸던 풍경의 흔적은 드러나지 않는다. 작가는 “밑에 형태가 깔려 있지만 결과적으로 추상으로 보여 지니 ‘이게 뭐야?’ 하는 반응을 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모두 현실에 기반하고 있는 형태들”이라고 설명했다. 개념이나 판단이 아닌 실물을 추종한다는 점에서 그의 색면추상은 독자 노선을 달린다.

“저는 반대로 거리에서 찾을 수 있는 기하학적 형태들과 색감들에서 추상적인 면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을 미술적인 추상언어로 구현하고 있어 과거 추상작가들과 반대의 길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어요.”

◇ 사진콜라주와 기하학적 형상으로 병치된 건축물

‘Image Architect’ 연작에선 도시 풍경에서 건축물로 대상을 전환했다. 사진을 직접 콜라주로 활용한다. 사진을 색면으로 완전히 덮었던 전작과는 결이 다르다. 풍경 사진을 화면에 깔고 그 위에 기하학적 형태들을 부가하지만, 사진 이미지와 기하학적 형태는 공존의 방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이때의 기학학적 형상은 철저하게 작가의 감정과 결부된다. 공간을 경험했던 순간의 감정 상태를 적극 반영한 기하학 형태를 통해 새로운 차원의 공간으로 번안하는 것이다.

그가 “주말에 친구들과 와인을 마시거나 햇살이 유난히 빛나게 내리쬐는 날에 느꼈던 특별한 감성이 평범한 공간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여행지에서 느낀 감정도 포함된다”고 언급했다. “도시 풍경에서 건축 공간으로 시선을 옮겨 저의 시각적 경험을 추상회화로 전환하는 것은 물론이고 회화의 건축적 기능까지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어요.”

그가 풍경에 새로운 차원을 제시하기 위해 부가한 다양한 크기의 점이나 선, 면 등은 두터운 물감의 재질(마티에르)의 추상색면으로 드러난다. ‘Image Architect’ 연작에서 실재하는 풍경과 추상색면의 공존을 모색한 이유는 다양하지만 그 중 하나는 그가 새로운 풍경으로 제시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지가 꼽힌다. 시각적인 형상 이면에 존재하는 공간의 실체와 공간을 경험한 작가의 감정 변화들을 한 화면에 중첩해가며 풍경이 회화로 거듭나기까지의 역사를 오롯이 드러낸다. ‘Image Architect’ 에 아치형태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 또한 공간을 경험했던 작가의 감수성이 반영된 결과다. “아치형 건축물에서 재미있다는 느낌을 받아 이번 전시에 표현하게 되었어요.”

그는 ‘Image Architect’ 연작에서 “회화라는 매체가 어떻게 건축과 만나서 건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심화”시켰다. 그가 얼마나 건축적으로 접근하는 태도를 취하는지는 색을 칠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물감칠을 건설현장에서 벽 표면에 시멘트를 미장하듯 캔버스 화면 위에 시공한다.

“‘A Shape of Taste’에서 건축 구조를 그대로 모사했다면, ‘Image Architect’ 연작에서는 사진 위에 제가 자의적으로 어떤 환경을 새롭게 건축하는 회화로서 인식해요. 새로운 공간을 다시 읽어내는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것이죠.” 아치형 건축양식 외에도 건축적인 요소는 또 있다. 건축현장에서 수평과 수직을 맞출 때 사용하는 먹선에서 착안한 직선이나 점을 공간의 구성요소로 적극 끌어들이며 긴장감이나 균형감 등의 정서를 이끌어낸다. “점이나 선은 공사장에서 공사를 할 수 있도록 설치한 가설물이나, 안과 밖을 구분해 주는 경계 역할도 합니다.”

◇ 색으로 표현된 현실풍경에 대한 감정들

그림에서 색은 형상 못지않은 지분을 차지한다. 색의 기능은 그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는 색채를 자신의 감정을 대변하는 매개로 활용한다. 지배적인 감정선에 해당하는 중심색과 부가적인 감정선을 표현하는 주변색으로 화면을 구축하며 풍경에 자신의 감정을 쌓아간다. 그가 주변색을 건축의 관절에 비유했다. “신체에 다양한 관절들이 있듯 감정이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큰 감정 외에도 다양한 감정이 존재하죠. 제가 가장 주력으로 쓰고 있는 색들은 그 장소에서 크게 인상 받았던 색이고, 주변부는 또 다른 느낌들에 대한 표현으로 쓰고 있어요.”

일상 속에서 보았던 건축물로부터 작업이 출발한다. 그런데 건축물이라는 것이 단순하게 형상으로만 접근할 수 있는 대상일 순 없다. 인간과 가장 밀착된 대상인 까닭에 인간사회가 노출하고 있는 수많은 사회적인 문제들과 결부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작가 역시 인터뷰 중에 ‘부동산’이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하며, 우리사회의 부동산 문제를 환기했다. “유학 중 경험했던 작업실의 높았던 월세나 귀국 후 경험하고 있는 우리사회의 부동산 문제가 건축물에 주목한 이유 중의 하나임은 부정할 수 없다”는 언급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요즘 부동산이 큰 이슈이고, 그런 문제를 눈으로 지켜보는 입장에서 부동산 얘기를 에둘러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이번 전시에는 장난감같은 작은 미니어처 조각도 선보인다. 평면에 대한 탐구에서 더 나아가 입체에 대한 열망이 엿보이는 작품이자 그가 표현하는 세계가 보다 확장적일 수 있다는 선언같은 작품이다. 하지만 당분간은 대형 조각으로 만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가 “조각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을지 아직은 엄두가 안난다”며 고개를 저었기 때문이다.

◇ 회화 매체의 본질 탐구가 궁극적 과제

일상 풍경이나 일상 속 건축물을 소재로 회화 매체의 본질을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그. 조형이 선사하는 균형과 리듬감, 삶의 과정에서 부지불식간에 학습된 미감 그리고 작업 과정에서 체득한 색감, 형태감, 비례감 등을 본질 탐구 과정에 개입시키며 예술적인 과제를 탐구해왔다. 특히 소소한 일상과 도시의 풍경을 자유로운 구성과 색감, 그리고 고유한 조형언어로 표현하며 회화라는 매체를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이자 세계를 구성하는 작가 자신의 삶 그 자체로 받아들인다.

그가 “나는 회화라는 매체에 대해서 계속 고민을 하고 연구를 할 것 같다”며 회화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디지털이라는 매체로 확장되는 추세이긴 하지만 저는 오히려 회화의 매력과 장점, 그리고 가능성에 더 주목하고 싶어요. 캔버스 틀 안에서 내가 어떤 이야기를 담을 수 있고, 어떤 변주와 시각 언어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계속 고민하며 작업해 갈 겁니다.” 그의 예술세계가 압축적으로 드러난 국제갤러리 부산점 전시는 8월 14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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